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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일상/대전사람들

붓으로 맺어진 인연, 제2회 전민서연회전

안녕하세요?

어느덧 11월의 마지막 금요일입니다. 어제 오늘이 올해 들어 가장 추운 날이라죠?

발길 닿는 곳마다 눈길 가는 곳마다 노랗게 또 빨갛게 물들었습니다. 그 거리는 아직 가을이라 말하는데, 부쩍 쌀쌀해진 날씨는 겨울을 재촉합니다.

이제는 정신없이 살아온 한 해를 뒤돌아보며 슬슬 정리하고 마무리해야겠죠?리고 나름 열심히 살았노라 저만의 결실을 수확할 때이기도 하고요.

 

 

이렇게 한 해동안 기울인 노력을 혼자만이 아니라 여러 대전시민들 앞에 자랑스럽게 선보이는 분들을 만났습니다. 대전시민대학 1층 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전민서연회(田民書緣會展)'에서 말이지요.

 

 

'전민? 전민동?' 예, 맞습니다. 제가 사는 만년동에서는 지척인 동네입니다.

전민동 주민센터가 처음 문을 열었을 때부터 주민을 위한 문화교육강좌가 마련되었대요. 그 강좌 중에 서예교실이 있었고, 그 때부터 지금까지 이십 년 가까운 세월동안 주민센터의 터줏대감으로 자리잡아 오셨답니다.

여기서 스승으로서 제자로서 인연을 맺은 분들이 '전민서연회'라는 근사한 이름을 지으셨대요.

 

 

전민동에서 날아온 축하 화분이 전시실 입구에서 곱게 맞아 주었습니다.

 

 

書(글 서) 緣(인연 연). 한자 한자 뜻을 음미하니, 은은한 묵향이 풍겨오는 듯 합니다.

 

 

전시실 입구에는 전시 작품과 출품 작가님들을 소개한 도록과 방명록이 놓여 있습니다. 다행히도 도록 뒤에는 작품에 대한 해설이 있어, 한자를 잘 모르는 저도 이해할 수 있었답니다.

 

 

우와! 이 곳을 찾는 분들의 솜씨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방명록 옆에 무지개색 리본이 놓아있길래 여쭤봤더니, 제가 찾은 바로 그날이 개막일이었습니다.

 

 

아, 그러고보니 전시실 한 켠에서 둥글게 모여 앉아 담소를 나누는 분들이 바로 '전민서연회' 회원분들이셨네요. 쑥스럽지만 양해를 구하고 자연스럽게 몇 장면 담았습니다.

 

 

이 중에는 열심히 실력을 갈고 닦아 초대작가의 반열에 오른 분이 두 분이나 있답니다. 서예교실이 처음 문을 열었을 때부터 꾸준히 참여하고 계신 주부들이시래요.

김애영 작가님의 <봄꽃편지> 읽어보실래요?

 

 

실은 전시회에 초대받았다고 '초대작가'는 아니겠지 싶어, 제대로 알고 가려고 그 뜻을 여쭈었습니다. '초대작가'는 권위있는 기관에서 여러 번 수상을 하고 상격에 따라 점수가 매겨지는데, 그 점수가 일정수준에 이르렀을 때야 붙일 수 있는 명칭이래요. 개인전도 열 수 있고, 심사위원 자격도 갖추셨답니다. 정말 대단한 분들이죠?

 

 

전시실 사면에는, 서예교실 선생님을 비롯한 열 일곱 분의 작품이 정갈하게 걸려 있습니다. 

 

 

작가님들과 작품들을 하나하나 소개하지 못해 아쉽네요.

 

 

이 곳을 찾은 지인들에게 조목조목 작품설명을 하고 같이 기념사진을 남기는 모습들이 참 정겨웠습니다.

 

 

이 날의 초대작가이자 '전민서연회'의 선생님이신 김용길 서예가님의 작품입니다. 문외한인 제가 보기에도, <기산심해>라는 서체가 기운찹니다.

 

 

 ‘대나무 그림자가 섬돌을 쓸어도 티끌은 움직이지 아니하고 달빛이 연못을 꿰뚫어도 물에는 흔적이 없네'라는 뜻을 가진 채근담 한 구절도 깊습니다. 작품마다 그 이름과 작가 사진이 함께 있어, 품은 뜻을 헤아리려 더 눈 여겨 보았습니다.

 

 

전민서연회에서 가장 어린 회원은 서른 일곱살 주부신데, 크리스마스에 넷째를 출산할 예정이래요. 그리고 최고 노익장을 과시하시는 분은 올해 여든여덟이신 최준철 님이십니다.

 

 

<동지>라는 시와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아버지께 올라가지 못하리라'라는 성경구절을 쓰셨는데, 정말 푸근한 인상이시죠?

 

 

처음 서예교실이 문을 열었을 때는 대부분이 주부들이셨고 남성 회원은 딱 두 명이었는데, 살림과 육아 때문에 여성분들께서는 병행하기 어려우셨대요.

그래서 지금은 은퇴한 분들 주축이시랍니다.  그래서 「전민서연회」 회원분들 중에는 40년대 생들부터 60대와 50대가 많으시대요. 게다가 만65세 이상이면 월 1만원이라는 회비도 경로우대 차원에서 면제된다며 김용욱 님께서 살짝 귀뜸해 주셨어요.

 

 

6개월만에 이렇게 근사한 작품이! 김순석 작가님의 열정과 노력이 그대로 느껴집니다.

 

 

농사짓고 글쓰고 하루하루 바쁘게 사시는 이수열 작가님 작품입니다. 한글 서체도 독학으로 익히셨대요.

 

 

전시실 입구에서 손님 맞으랴 요것저것 궁금한 제게 대답해 주시랴 바쁘셨던 이금주 님의 작품입니다. 다들 두 작품씩 내셨는데 왜 한 작품만 내셨냐고 여쭈니, 스승님 격려가 없었다면 아예 출품하지 않으려 하셨대요. 서예에 입문한 지는 오래되었지만 배우자 따라 여기저기 이사 다니다보니 연습량이 부족하다고 겸손하게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서예에 관심이 있다면,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시작하라시네요. 한 획 한 획 숨을 멈추고 써내려가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힘이 많이 드는 작업이래요. 친구분들은 프랑스 자수 등을 배우지만, 본인은 서예가 더 좋으시답니다.

먹을 가는 일부터 수행의 시작이라 글을 써 내려갈 때마다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신대요. 붓을 든 엄마의 뒷모습을 보며 자라는 아이들에게도 좋은 기운이 퍼진다며, 제게 적극 추천하셨답니다.

 

 

향기롭고 멋있게 사시는 '전민서연회' 회원분들을 보며, 저도 그렇게 나이들리라 다짐하며 전시실을 나섰습니다. 이번 전시는 주말까지 계속되니, 원도심 나들이 가시는 길에 들러보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