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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일상/장터ㆍ골목길

시 읽는 골목 '대전 중동', 보통의 시간을 새기다

 

 

비구름이 지나는 날, 물기 가득 머금은 공기를 마시며 골목을 찾아 헤맸습니다. 추위도 가신 날씨인데 동네엔 함께 걷는 이가 드물었죠. 습기찬 도로의 이물질들을 가르며 조용히 달리는 차들, 고소한 기름 냄새를 풍기는 옛 느낌 진득한 방앗간도 지나고, 문틈으로 좁은 실내가 보이는 여인숙도 지났습니다. 건물마다 유심히 들여다보게 되는 낡은 문과 광택을 잃은 창들. 그리고 쉬이 보이지 않는 골목의 선물.

 

 

중동 시읽는골목

▲ 중동, '시 읽는 골목' ⓒ 그림 권순지


사실 특별한 선물이 있는 골목을 찾는 일이 그리 오래 걸릴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작은 동네 골목들은 어디로든 문이 열려 있으니까요. 걷고 있는 골목이 아니면 그대로 뚜벅뚜벅 걸어나와 방향을 틀어 또 다른 골목을 마주하면 되는 일이죠. 열려있는 골목 문을 이리 저리 통과하다 보니 어느새 느낌이 오는 길 위에 서 있었습니다. 


갑작스런 인기척에 놀라 조르르 숨더니, 다시 호기심 반짝이는 눈으로 낯선 이를 하염없이 바라보던 아기 고양이. 골목을 찾은 낯선 이의 호기심과 어린 고양이의 호기심이 맞닿는 일순간, 곳곳에서 숨바꼭질하고 있는 '詩'가 은은한 빛으로 시야에 들어옵니다.


조금 특별한 생명체들은 골목의 빳빳한 기운에 온기를 뒤섞어주며 각자 제 자리에 있었습니다. 마치 아주 오래전부터 이 골목이 '문확의 숲' 이었다고 착각할 정도로 익숙하게 자리 잡고 있는 예쁜 선물들. 내심 초조했을 눈빛이 카메라 렌즈와 함께 활짝 열렸습니다. 


대전의 시인들과 학생, 일반 시민들이 '중동'에 머물며 써 내려간 시들은, 작은 골목에서 숨 쉬고 있습니다. 욕심부려 치장하지 않은 보통의 집들이 소박하게 내려 앉은 골목은 애정어린 손글씨로 쓰여진 '시'로 인해 '시 읽는 골목'이 되었습니다.



보통의중동

▲ <보통의 중동> 프로젝트



'중동 작은 미술관'과 함께 진행된 <보통의 중동> 프로젝트. 시와 만나는 골목에서의 행복한 작업으로 기억된다는 프로젝트 참가자들의 이야기. 

 

수많은 시간 안에서 중동의 풍경을 담고, 이곳을 찾는 이의 표정을 비추고, 이제는 '시'의 언어를 새긴 창은, 그렇게 살아왔노라고 보통의 품을 보입니다.


보통의중동

▲ 골목 시 한 구절 '가슴에 핀 꽃은 간직하는 것이다'



보통의중동

▲ 골목 시 한 구절 '같은 몸에서 몇 번이나 죽을 수 있다는 걸'



보통의중동

▲ 골목 시 한 구절 '그것은 어쩌면 심해로부터 이끌려온 것'



문학 역시 예술이죠. 예술의 결이 미술이 되었든 문학이 되었든, 그 것이 삶 안으로 스며드는 것을 온 몸으로 환영한다면 일상이 좀 더 풍요로워집니다.

 

오후 해가 저물어가는 시간, 집 구석 어딘가에 있을 시 한 편을 읊조리는 삶. 동 트기 직전 새벽녘, 달빛도 까무러진 사위에 스산해지는 마음을 '시'가 다독이는 작은 일상. 무거운 어깨를 짊어지고 걷는 골목에서 '시'를 목전에 두고 무연하게 서 있을 수 있는 시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에 파문이 이는, 예술로 인한 삶의 작은 변화는 제 일생 꾸준하고도 소박한 꿈 이기도 합니다.

언어의 무게가 곧바로 느껴지지 않는 얇은 시집의 무게를 손으로 내내 어루만지고, 시를 읽으며 골목을 오래도록 걸었습니다. 골목의 틈으로 소리없이 부서져 내리는 언어의 꽃. 선물같은 골목의 어귀에서 그 끝으로 향하는 내내 간질거리던 발끝은 아쉬움을 말하던 것이겠지요. 

 

어쩌면 좋을까요. 중동의 '시 읽는 골목'은  제 그림과 사진과 속엣말들을 여과없이 쏟아낸 글로도 다 채워지지 않는 기분이 듭니다. 비워진 듯한 한 줄기를 <보통의 중동> 프로젝트 중, '보통의 만남'과 '보통의 헤어짐'을 구상하여 쓴 시로 마음을 달랩니다. 


보통의 시간을 새긴 중동, '시 읽는 골목' 이었습니다.



 <숲의 시계>


시간을 새긴다

계절 쌓이는 소리를

숲이 기억한다

나이테는 울림을 머금는다


어릴 적 눈 밟는 소리

점점 아늑해지는 난로 옆

장작 타는 소리로 변하고

시간 또한 다르게 새겨진다

시간 너와 함께 기억된다


함께 눈 밟는 소리

서로에게 공명된다

그 때

겨울소리 예쁘다 외쳤다


이제는 다른 숲

다른 겨울나기를 하고 있을 너에게


시간 새기는 숲

다시 무언가 새긴다면

우린 둘이라는 것만 기억하겠다

 

 

<보통의 중동> 프로젝트 

<보통의 중동
>은 특별한 것도 모난 것도 없는 '보통'을 발견하기 위한 중동작은미술관의 첫번째 프로젝트다. 특별할 것 없지만 특별한 언어인 시어(詩語)로 대전 동구 중동의 일상을 이야기했다. 20여명의 사람들이 모여 중동을 담은 시(詩)를 쓰고 시인들과 합평한 후 골목길에 시를 전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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