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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소식/이츠대전 소식지

[대전생활] 제1편, 20년전의 대전은 어떤모습이었을까? "둔산,대전역,대전광역시"







 


 
달라진 대전
제1편, 20년전 대전의 모습은 어떤모습이었을까?








도시의 변화 속도는 상당히 느리다.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로 아주 서서히 변한다. 그러나 세월을 뛰어넘는 20년 전 대전의 모습과 현재의 모습을 하눈에 보면 너무 많은 변화에 놀라게 된다. 변화된 모습은 바로 대전의 역사이며, 또한 미래를 향한 기대이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20년 전과 후의 모습을 5회에 걸쳐 연재한다.








☞ 둔산 신도시


둔산지구는 오늘날 대전지역 신도시의 대명사다.
1988년 당시 노태우 대통령의 주택 200만호 건설공약 이행을 위한 대상지로 포함되면서 시작된 개발은 공군비행장이 있던 공군교육사령부와 향토사단인 육군 제32사단 사령부, 육군통신학교가 있던 자리인 둔산, 월평, 탄방, 갈마, 옛 삼천동 등지에서 이루어졌다.


군부대가 이전한 허허벌판에 아파트 공사가 시작되었다. 처음 골격을 드러낸 아파트 건물이 옛 삼천동 보라아파트다. 뒤이어 국화, 가람, 한가람, 청솔 아파트가 들어섰고, 1992년부터 입주가 시작됐다. 둔산 신도시는 그렇게 탄생됐다. 당시의 유일한 산림이자 녹지인 남선공원은 지금도 변함없이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후 둔산신도시는 단순 주거지역을 넘어 대전 행정의 중심지로 발돋움 한다. 1993년 대전시교육청의 입주를 시작으로 1997년 정부대전청사, 1999년 대전광역시청 등 대전지역의 행정, 금융, 유통, 교육, 의료 등 거의 모든 중요 시설이 둔산신도시로 이전했다. 공군교육사령부의 활주로가 있던 자리엔 대전시청이, 육군 32사단 주둔지에는 갤러리아 타임월드 백화점이, 육군통신학교의 자리에는 갈마동 경성큰마을 아파트가 들어섰다.




⊙ 왼쪽 사진에서 가운데 높은 굴뚝과 긴 건물은 유신연와 벽돌공장이다. 하단의 도로가 구도심과 유성을 잇는 도로로 현재의 8차선 도로와 거의 일치한다. 당시 도로변 담장 안에는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군사시설들이 들어서 있었다. 도로변에는 270년 수령의 느티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그 느티나무는 1992년 12월 현재 서구청 옆 샘머리공원으로 옮겨 심어져 매년 목신제가 열리는 등 둔산신도시의 역사를 알려주는 상징물로 자리잡았다.












☞ 대전역 광장


‘대전발 0시 50분’이라는 노랫말처럼 역은 시간의 늦고 빠름에 관계없이 늘 사람들로 붐비는 장소다. 대전역은 105년
전 경부선이 개통한 이래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와 추억을 싣고 내린 중부권 중심역이다.


1895년 경부선이 개통될 때의 역사(驛舍)는 안타깝게도 한국전쟁 때 불탔다. 이후 전후 복구기였던 1955년 12월 28일, 현대식 철근콘크리트 구조의 신 역사가 그 자리에 들어섰고 신 역사는 2004년 현재의 초현대식 건물로 바뀌었다. 반세기 동안 사통팔달의 교통편과 넓은 면적을 자랑했던 대전역 광장은 정치행사∙선거유세∙캠페인 등 각종 행사의 단골 장소였다.







2004년 KTX개통과 동시에 들어선 신청사와 2005년 12월 개통된 동서관 통도로 등 대전역 르네상스 개발이 추진되면서 대전역은 변화의 전환기를 맞는다. 2006년 12월, 대전역 동광장 옆에서 첫 삽을 떠 2009년 9월 완공되어 철도시설관리공단과 철도공사가 입주한 철도공동사옥 쌍둥이 타워인 철도타운은 대전의 새로운 상징물로 각광받고 있다.


예전에 비하면 규모가 많이 줄어든 대전역 광장의 화려했던 과거는 이제 옛 사진 속에 추억으로 숨쉬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변함없는 것은 대전역은 대한민국 철도의 중심지이며, 늘 그래왔듯이 수많은 사람들의 추억과 삶을 보듬고 있다는 사실이다.








※ 원문 : 대전광역시 소식지 It's Daejeon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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