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이 역사입니다. 민초의 횃불을 기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역사적인 순간의 포착에 함께 하고 싶습니다. 수고에 감사드립니다."
"지역의 역사를 남기는 일.. 꼭 필요한 그리고 중요한 일을 해주셔서 너무 고맙습니다."
▲ 大田大戰, 봄으로 간 촛불(대전 퇴진 행동 61차, 131일 간의 기록사진집)
사진집의 첫 장을 여는 순간, 따뜻한 초록빛 글자들이 가지런하고 숙연하게 눈을 맞춥니다. 대전 퇴진 행동 61차, 131일 간의 기록사진집 『大田 大戰, 봄으로 간 촛불』을 응원하는 시민들의 마음이 감사의 언어로 새겨져 눈 앞에 일렁입니다.
▲ 추운공기를 데웠던 그 겨울의 촛불 거리
수많은 대전시민들이 일어선 둔산동 타임월드 앞 거리. 2016년 11월 1일부터 2017년 3월 11일까지, 총 131일간의 여정동안 그 곳은, 대전 시민의 마음을 밝히는 거리였습니다.
단 한가지 이유로 절실해진 마음들이 각기 다른 몸을 장착하고 거리에 꽉 들어찬 순간들을 결코 잊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쏟아지는 어둠속에서 묵묵히 촛불을 밝히고 추운 겨울을 횡단할 수 밖에 없던, 어떤 당위의 행동. 그것은 대전 시민 모두가 대전의 역사를 새로 쓰는 일이었습니다.
연인원 30만명으로 추산되는 대전 촛불 거리의 주인공들. 30만명의 울분이 거리로 터져 나와 빛을 뿜어내던 와중에, 두 손으로 촛불을 감싸지 않고 카메라를 든 두 남자가 있었습니다.
촛불현장을 진행했던 무대 뒷 편, 밤에는 엘리베이터도 작동하지 않는 한 10층 건물 옥상을 두 발로 뛰어 오르던 찰나에 마주친 두 남자. 가쁜 숨을 동시에 내쉬며 마주했을 때, 각자의 시선이 상대에게 저절로 가 닿더랍니다.
칼바람이 날 세우던 건물 옥상에서 촛불거리를 향해 셔터를 누르며 두 남자가 동시에 품었던 것. 그것은 카메라에 투영되어 있는 자신들의 염원이었습니다. 그 끈질기고 눈물겨운 염원으로 시민들의 열망을 담았습니다. 한 공간에서 같은 곳을 향해 다른 찰나를 담아내는 기록적 예술로 승화되었습니다.
▲무수히 모인 촛불의 의미
사진은 또 다른 언어이다
장대비가 자동차 앞 유리를 매섭게 때리던 날, 이상호 작가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반짝이는 눈빛이 다섯 살 소년의 호기심을 보는 듯 했습니다. '소년스럽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그는 평범한 직장인 입니다. 취미로 예쁜 이미지를 찍고자 시작하게 된 사진. 다소 가볍게 느껴지는 그 시작이 어느 시기에 어떤 동력을 만나 지금의 역사적 기록 결과물로까지 발전할 수 있게 된건지 궁금했습니다.
본디 '사람'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는 이상호 작가가 제대로 카메라를 쥐고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된 계기는 결혼입니다. 4년 전 결혼하며 아내에게 선물받은 카메라. 아내에게 지지받은 자신의 취미를 세상과 연결 시켜야겠다 마음먹었던 거죠. 그 것이 다시금 사진을 독학하게 된 계기였다고 하네요. 자기 안의 어떤 무언가를 표현하고 싶은 수단으로 스스로에게 꼭 맞는다는 사진. 그는 사진에 대해 조금 특별한 말을 전했습니다.
▲'사진은 말이나 글이 가진 한계를 극복하죠.' - 이상호 작가
누구나 사진을 찍을 수 있고, 무수히 많은 이미지가 쏟아지는 '이미지 범람의 시대'에서 가져야 할 사진기록물의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왔습니다. 그것은 촛불 현장에서 타오를 수 있었던 '사진의 힘'으로도 연결되죠.
"사진집은 편안하게 책꽂이에서 빼고 둘러볼 수 있는 느낌이 있잖아요. 역사현장을 회상하는 것에 있어서 글과 다른 임팩트가 있지 않나. 일반인들의 기억자료로 생각했을 때, 사진만이 가진 힘이 있지 않나. 글은 글대로 사진은 사진대로 말이죠. 그런데 사진에 대한 요즘 가치관이....이미지 범람의 시대에서 쉽게 흘러간다고 해야 할까요? 많이 찍지만 그냥 기록되지 못하고 파편으로 남는, 그런 부분들이 아쉬워요."
사진 한 장으로 많은 걸 이야기 할 수 있고, 또 한 장이 아니라 여러장을 연결해서 한 문장으로도 표현할 수 있다고 말하는 이상호 작가. 또 한 문장으로 엮어졌을 때 그 문장이 표현하는 의미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다며 덧붙였습니다. 사진집 역시 단순히 사진을 모아 놓은 것이 아니라 스토리가 있는 기록이라는 거죠. 한 장의 사진을 낱말이라고 생각해서 엮어낸 책.
"그래서 보통 사진집도 '본다'는 표현보다 '읽는다'는 표현을 쓰거든요. 한 장, 그 안의 한 장면 속에서 디테일하게 구석구석 쳐다보면 안보이는게 보이기도 하고요. 또 큰 틀에서 쭉 훑다보면 그 큰 틀과 연결되는 상징적 의미들까지... 다양하게 볼 수 있거든요."
사진은 역사의 기록이다
▲ '사진, 그야말로 직관적인 거죠.'- 임재근 작가
전시장에서 만난 임재근 작가의 눈빛에 묻어나던 감격스러움. 인터뷰 내내 제게도 고스란히 스며드는 느낌이었습니다. 2004년부터 평화통일운동단체에서 활동하며 지역의 현장을 사진으로 기록해오는 일을 꾸준히 해온 임재근 작가. 대전 지역 역사적 현장의 순간에 카메라를 들고 오래도록 함께 해왔던 그 꾸준한 의지가 존경스럽게 여겨집니다. 결코 쉬운 여정은 아니었겠죠. 그럼에도 특유의 때묻지 않은 웃음으로 일관하는 그에겐 이번 사진집 출간과 전시가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요?
"작년 11월부터 넉달간 진행되었던 촛불현장들을 많이 찍었었는데요. 그것을 빠른 시일 내에 정리하는게 중요하겠다 생각 했어요. 매일 그리고 매주 진행되었던 촛불현장에서 사진을 찍어서 그날 그날 SNS에는 올렸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 정리되지 않은 자료들은 다시 보기가 어렵거든요. 그래서 이것을 역사에 남겨 놓는 일을 해야 겠다. 그러려면 빨리 정리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고요. 그렇게 사진전시와 사진집이라는 책자로 기록이 나온 걸 보니, 넉달간의 촛불시민들의 수고스러움들을 더욱 느낄 수 있어서 감격스럽습니다."
꾸준히 지역의 역사성을 담고 있는 사진들을 찍고 싶다는 임재근 작가. 그러나 그 역사라는 것이 특정한 시기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으로도 진행되는 일이기 때문에, 일상적으로 계속 현장을 찾아다니며 기록을 남기고 싶다는 마음을 내비쳤습니다.
역사적 현장의 기록 수단으로써 '사진'이 가진 장점에 대해서도 덧붙였습니다.
"사진은,...아름다움이죠. 아름다운 그 장면의 순간을 오랫동안 남길 수 있다는 거. 여기서 아름다움 이라는 것은 미적 아름다움이 아니라 그 시대, 순간을 볼 수 있는 한 폭의 그림과 같은 거죠. 그래서 어떤 사람은 그 사진을 보고 여러 가지 감정들이 생겨나는 거고, 또 어떤 사람들은 그 시대를 추억할 수도 있는거고. 직관적이라는 거죠. 글은 한참을 읽어보고 되새겨보고 해야 하는데, 사진은 되새기기 보다는 보는 순간에 느낌이 바로 드는 특징이 있어요. 어쩌면 아주 강력한 전달자라고 볼 수 있죠."
대전, 지역 최초로 촛불기록을 이뤄내다
작년 12월 3일이었습니다. 그 날 대전 둔산동 타임월드 앞 촛불거리에 주최측 추산으로 6만명이 모였습니다. 6만명이라는 숫자는 대전 민주운동사에서 가장 많은 인원이었다고 합니다. 87년 6월 항쟁을 겪으셨던 분들도 이렇게 많이 모인 적은 처음봤다며 놀랄정도로 말이죠. 기적 과도 같은 일 이었죠.
대전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촛불시민들. 시민들 스스로가 그 현장에 있었고 사진들이 그 현장을 나타냅니다. 사진을 보며 어떤 사람은 승리감을 느끼고, 어떤 사람은 그날의 추위를 회상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역사적 기록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합니다. 시민의 열망을 담은, 가장 강력한 전달자인 '사진'을 통해 131일간의 여정을 비춥니다.
▲ 『 大田大戰, 봄으로 간 촛불 』 사진전 - 계룡문고 전시실 내부
촛불현장에 있던 대전시민의 힘으로 지역 최초로 촛불사진 전시 기획과 사진집 출간을 이뤄낸 성과는 자랑스럽기까지 합니다. 많은 시선과 관심이 중앙으로 집중되는 현실. 전국적으로 촛불을 들고 일어선 역사적 순간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많은 이들이 '광화문촛불'만을 기억합니다.
대전에서 수없이 촛불을 밝혔던 대전 시민들은, 대전에서도 치열한 민주행동이 있었다는 사실을 쉽게 잊고 싶지 않습니다. 그 마음이 모여 시민펀딩의 성과를 얻을 수 있었고, 두 작가는 대전 역사를 기록하자는 시민과의 약속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했습니다.
풀들이 꽃 피운 기적
▲ '이 사진집은 풀들이 꽃 피운 기적의 여정이며 환희의 순간들이다.'
'봄'이란 단어는 여러가지 의미를 움트게 하죠. 추운 겨울을 지나고 맞는 새싹의 움직임을 떠올리는 게 가장 일반적인데요. 촛불현장에서의 '봄'은 차가운 계절을 넘어서 국민이 승리한 새로운 계절을 의미합니다. 추운 계절을 버티고 다시 시작하는 생명의 움직임처럼, 아스팔트 도로 위 찬 기운을 꿋꿋이 딛고 봄을 향해 걸어간 국민. 촛불이 '봄'을 향해 갈 수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두 작가의 사진은, 어떤 과정을 거쳐 봄을 향해 걸어갈 수 있었는지 낱낱히 실토합니다. 전시장을 찾는 대전 시민의 대부분은, 승리의 봄, 그 결과물을 함께 공유할 수 있어서 행복하고 고맙다며 두 작가에게 마음을 전했다고 하네요.
▲ 카메라 렌즈를 통해 소통한 두 남자- 이상호 임재근
'이 사진집은 풀들이 꽃 피운 기적의 여정이며 환희의 순간들이다.' 저희 작가의 말 마지막 표현이에요. 풀은 김수영 시인의 '풀'을 상징해요. 그 '풀'은 가난하고 억눌려 사는 민중의 상징이죠. 꽃 피우지 못하는 풀들이 모여 기어코 꽃을 피워낸 기적은, 환희로 다가옵니다. 할 수 없을 것만 같던 승리를 일궈낸 시민들을 위한 기쁨의 헌정입니다.
이상호 작가가 고심하여 썼다고 전한, 작가의 말 마지막 한 문장이 통렬하게 가슴을 칩니다. 풀들의 기적, 그리고 환희의 순간들. 모든 순간은 봄날을 기다리는 풀들의 염원이었고, 풀들의 입장에서 같은 곳을 바라보며 카메라를 든 두 남자는 사진예술의 힘으로 그 메세지를 전합니다.
▲ 『 大田大戰, 봄으로 간 촛불 』 사진전 - 계룡문고 전시실 내부
두 작가가 넉 달여 동안 담은 사진들 중 350여점을 모아 기록사진집으로 출간하게 되었고, 이중 61점을 선정해 사진전을 기획하였습니다. 게다가 4월 22일(토) 오후 5시 30분에 계룡문고에서 사진집 출간 기념 북콘서트가 열린다고 하는데요. 한 마음으로 촛불을 들었던 시민여러분과 두 저자가 기쁜 마음으로 나눌 수 있는 소통에 기대를 걸게 됩니다. 많이 오셔서 자리를 빛내주세요.
『大田 大戰, 봄으로 간 촛불』사진집은 현재 모든 인터넷서점에서 구입할 수 있고, 오프라인 서점으로는 대전 계룡문고에서 구입할 수 있다고 합니다.
또한 현재 전국의 각 공공도서관에 비치될 수 있도록 애쓰고 있는 중인데요. 광화문 뿐 아니라 전국 어디서나 들불처럼 일었던 촛불의 현장을 알리는 것에 의의가 있는 사진집. 그리고 지역의 촛불문화를 사진으로 기록한 것으로는 유일한 자료라는 타이틀 만으로도 공공도서관에 비치될 자격이 충분하다 여겨집니다.
대전을 기점으로 타 지역에서도 이런 기록사업들이 활발히 진행되어 모든 국민이 역사의 주인공으로써, 민주주의의 주체로써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긴 글을 마무리 짓습니다.
▲大田大戰 봄으로 간 촛불 (이상호, 임재근 공저, 도서출판 대장간)
▲사전전시: 4월 16일(일)~28일(금) 오전 10:00~21:00, 계룡문고 전시실(중구 중앙로 119, 삼성생명빌딩 B1)
▲사진집 북콘서트
- 일시: 4월 22일(토) 오후 5시 30분,
- 장소: 계룡문고 전시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