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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문화/전시ㆍ강연

검은 울림展 이완 작가, 먹물이 종이위에 음악처럼 흐른다


꽤 일찍부터 전시를 알리는 현수막이 서구문화원 벽면에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전시기간이 되자, 근사한 화환도 여럿 설치되고 관람객도 많았습니다. ‘초대 작가전이라더니 유명한 작가인가?’ 무엇이 그리 바쁜지 눈으로만 훑으며 지나쳤는데, 마지막 날에야 이곳에 들렀습니다.

 

 

아! 조금 더 부지런할 걸. 참 좋았습니다. 어떠한 색도 더하지 않고, 오직 하얀 종이 위에 검은 먹만으로 쓰여 진 글들이 화두처럼 다가옵니다. 하루만이라도 일찍 왔더라면 이리 좋은 곳을, 여러분께서도 발걸음하실 수 있게 소개할 수 있었을 텐데 뒤늦은 후회가 밀려옵니다.

“나에게 있어 검정은 그야말로 완벽하다.
그리고 그 완벽함은 깊고 은은한 울림을 번져낸다. 가장 단순하며 가장 농밀하고 현묘한 빛을 담고 있다.
무심한 듯 퍼지고 얼핏 무표정해 보이지만 들여다 볼수록 무한한 공간을 보여주는 우주의 색이다. " 
- 작품집에서 작가의 말 ‘검은 울림’

‘검은 울림’이라는 전시제목처럼, 먹빛이 번진 글들은 그 형태 그대로 가슴에 퍼집니다. 미천한 한문 실력 탓에 읽어내지 못한 작품과 한글로 풀어놓은 제목을 맞춰보며 천천히 둘러보고 있자니, 따듯한 녹차 한 잔을 건네줍니다.

“혹시 작가님이세요?”
“예.”

[누굴 위하여 시들고 누굴 위하여 피는가][누굴 위하여 시들고 누굴 위하여 피는가] [鬰玄 울현 - 검고 울창함] [엄마걱정] [聽心 청심 - 마음에 귀 기울이다]

 

감히 인터뷰를 청했습니다. 이마에 드리워진 머리카락, 콧잔등에 거뭇거뭇한 수염자국, 수수한 옷차림의 작가는 천상 예인일 수 밖에 없겠다는 인상을 줍니다. 귀 기울여 듣는 나직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젊은 서예작가 이완입니다.

 

 

Q. <검은 울림>은 무슨 뜻인가요? 종이 위에 먹이 번진다는 뜻인가요?
"그것도 맞습니다. 지금 전시장에 잔잔한 음악이 울려 퍼지듯, 먹물이 종이 위에 퍼지는 것을 ‘울린다’고 소리처럼 표현한 것입니다."

Q. 제가 서예전에는 한 손에 꼽을 만큼 밖에 가보지 못했지만, 서체가 다른 것 같습니다. 작가님께서도 서예를 오랫동안 공부하셨을 텐데, 자신만의 서체를 만드신 건가요?
"보통의 서예전에서 보시는 작품에서처럼, 단정하게 써 내려간 글씨는 재미가 없잖아요(웃음). 제 작품들 중에는 바로 서서 보는 것만 있지 않고, 90도로 몸을 숙여야 읽을 수 있는 작품도 있습니다. (그 와중에 나이 지긋한 관람객께서도 그 작품을 그 자세로 보고 계셨습니다. 저 역시 그렇게 열심히 보았지요.)"

Q. <無思무사-아무 생각 없이>는 먹의 번짐으로 표현되는데, 천상병 시인의 시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는 메마른 갈필로 쓴 이유가 뭔가요? 작품을 대하는 느낌이 다른가요?
"예, 서예는 글을 쓰는 자체가 ‘서사’입니다. 이야기를 쓰듯이 때로는 강하고 진하게 때로는 연하고 흐리게 표현했습니다."

 

[無思 무사 - 아무 생각 없이 /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無思 무사 - 아무 생각 없이]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Q. 대전에서 활동하고 계신가요?
"아니요. 서울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Q. 아, 서울에서 활동하고 계신데, 서구문화원 초대로 오셨군요. 저는 전시 마지막 날에야 들렀지만, 그동안 오가면서 보니 관람객들이 많으셨어요. 때로는 작품 앞에서 삼삼오오 담소를 나누는 분들도 보았습니다. 저는 잘 모르지만, 유명한 작가신가 봅니다.
"하하. 지금은 강원도에 사시지만 제 어머니 고향이 대전입니다. 이모들을 비롯하여 가족 분들이 많이 찾아주셨지요. 가족 잔치였습니다."

Q. 아이고, 겸손하십니다. 전시 공간 구성이 멋집니다. 작가께서 직접 하신 건가요?
"예. 먼저 서구문화원 전시실을 둘러보고 작품을 배치했습니다. 이곳은 구획을 크게 나눌 수 있는 파티션도 자유롭게 설치할 수 있어서 이에 맞게 구상했습니다. 천장에서부터 바닥까지 이르는 큰 작품이 걸려있으니 오가면서 들르는 관람객들도 계셨습니다."

Q. (필자가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 곁에서 사진을 찍고 싶다고 청했더니 이 작품 앞에 섰다.)이 작품은 특이하게도 한자를 한 글자 한 글자 각각 쓰고 액자도 없이 배치하셨는데 이유가 있나요?
"나희덕 시인의 시 한 구절 <나의 울음 누군가의 가슴 속에 노래일 수 있을까>를 한문으로 풀고 나름 해석한 작품입니다. 작품을 액자로 만드는 것을 표구(이는 일본에서 온 말이고, 원래 우리는 ‘장황’ 또는 ‘배첩’이라 했답니다.)라고 하지요? 그 과정에서 처음 하는 것이 작품에 얇고 질긴 종이인 배지를 덧대고 나무판에 붙이는 것인데, 아직 미완인 그 상태가 좋았고 벽에 걸지 않고 기대어 놓은 느낌 역시 좋아서 이대로 전시하고 있습니다."

Q. 한 작품 안에서도 한문과 한글이 함께 있고 그 서체도 다른데, 이렇게 표현한 이유가 있나요?
"서예는 종이라는 평면 위에 표현되지만, 저는 그림과 같이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知無涯 지무애 - 끊임없는 앎 / 꽃은 산 속의 달력이요 바람은 고요 속의 손님이네 / 훔치지 못한 달][知無涯 지무애 - 끊임없는 앎] [꽃은 산 속의 달력이요 바람은 고요 속의 손님이네] [훔치지 못한 달]

 

Q. <苦心志고심지-마음과 뜻을 고통스럽게 하다>는 큰 작품도 작은 작품도 있던데, 두 작품을 만들고 싶을 만큼 이 글귀를 좋아하시나요?
"아, 맹자가 하신 말씀입니다. 서예는 회화에서도 가장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장르입니다. 거의 수입이 되지 않지요. 그럼에도 스스로를 고단하게 만들고 스스로 몰입하다 보면 무엇 하나는 깨닫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歳寒然後知松柏之後凋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 - 날씨가 추워진 후에야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늦게 시듦을 안다][歳寒然後知松柏之後凋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 - 날씨가 추워진 후에야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늦게 시듦을 안다] [苦心志 고심지 - 마음과 뜻을 고통스럽게 하다] [四海春 사해춘 - 온 세상이 봄]

 

선물로 받은 작품집을 한 장 한 장 넘겨보니 작품마다 작가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유행은 돌고 돌아온다는데 내가 붓을 들기 시작한 이래로 점점 세상과 멀어졌으면 멀어졌지 서예가 유행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왜 붓을 꺾어 버리지 못할까. 알아봐 주는 이 없고 하소연 할 곳 조차 없으니 나 혼자 즐기지 않으면 어찌 이어가겠는가.
어떤 때는 서예를 한다고 남들 앞에서 이야기하기가 창피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이 외로운 길을 걷는 것이 대견스러울 때도 있다. 이따금 외롭고 괴로움은 술잔으로 비워냈다.“
- 작품집에서 ‘나는 단 술보다 쓴 술이 좋아’

 

집에 돌아와 찾아보니 <苦心志 고심지>는 맹자가 남기신 명언에서 따온 구절이랍니다. 이 글은 조선시대 선비들이 유배지에서 스스로를 달랬고, 등소평이 항상 몸에 지녔다고도 합니다. 젊은 작가의 고통과 고난이 곧 끝나기를, 그의 앞날이 꽃길이길 바랍니다.

 

“天將降大任於斯人也(천장강대임어사인야) 하늘이 장차 그 사람에게 큰 일을 맡기려고 하면
必先勞其心志(필선노기심지) 반드시 먼저 그 마음과 뜻을 괴롭히고
苦其筋骨(고기근골) 근육과 뼈를 깎는 고통을 주고
餓其體膚(아기체부) 몸을 굶주리게 하고
窮乏其身行(궁핍기신행) 생활은 빈궁에 빠뜨려
拂亂其所爲(불란기소위) 하는 일마다 어지럽게 하느니라.
是故動心忍性(시고동심인성) 그 이유는 그의 마음을 흔들어 참을성을 기르게 하기 위함이며
增益其所不能(증익기소불능) 지금까지 할 수 없었던 그 어떤 사명도 감당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라.“

- 맹자「告子章(고자장)」

[踏雪 답설 -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踏雪 답설 -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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