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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문화/전시ㆍ강연

계룡문고 사노요코 그림책 <태어난 아이>특별전

사노요코 특별전

 

일본의 동화작가 사노요코. 그녀는 자신의 일상적인 치부를 아무렇지 않게 드러내죠. 그녀의 수필을 읽는 동시에 아무렇지 않은 그녀의 질문에 대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꾸만 사색의 바구니에 일상을 집어 넣게 만들죠. 


'난 이렇게 살아. 너의 치부도 좀 드러내봐.' '대단할 거 없어. 그런데 오늘 점심에 남긴 소면을 개에게 줄지 고양이에게 줄지 고민하는 일상도 나쁘진 않아. 결국 개에게 남겨주기로 결정하고 다시 저녁엔 미트소스스파게티를 해 먹을까 싶은 고민도 그렇고.'


봄이 되어 전시소식이 여기저기 들립니다. 애정하는 작가의 전시 소식이 있어 냉큼 다녀왔는데요. 일본의 그림책 작가이자 에세이 작가로 유명한 '사노요코'. 그녀의 인생을 고스란히 들여다 볼 수 있는 그림책인 <태어난 아이>가 수많은 사람들의 염원으로 재출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미 2010년에 숨을 거둔 작가는 그 이외에도 많은 작품을 남겼지만, 재출간하게 된 '태어난 아이'는 그녀의 시크한 철학을 톡톡히 맛볼 수 있는 그림책임에 틀림없죠.


대전의 대표 로컬서점인 계룡문고가 봄을 맞아 '사노요코'의 인생과 작품을 빌려 특별전을 열었습니다. 그간 찾아 읽던 사노요코의 에세이 만큼이나 독특한 분위기를 물씬 풍길 그림책을 만나러 가던 길! 


 

 

사노요코의 그림책<태어난 아이>를 함께 읽어볼까요?

 

「태어나고 싶지 않아서 태어나지 않은 아이가 있었습니다. 태어나지 않은 아이는 날마다 이리저리 돌아다녔습니다. 우주 한 가운데에서 별 사이를 걸어 다녔습니다. 별에 부딪혀도 아프지 않았습니다. 태양 가까이 다가가도 뜨겁지 않았습니다. 태어나지 않았으니 아무 상관이 없었습니다.」- 사노요코<태어난 아이> 中



사노요코 태어난아이

▲ 재출간된 사노요코 작가의 그림책 '태어난 아이'



「어느 날, 태어나지 않은 아이가 지구에 왔습니다. 태어나지 않은 아이는 성큼성큼 걸었습니다. 산을 넘고 들을 건너 계속 걸었습니다. "어흥!" 사자가 나타났습니다. 무섭지 않았습니다. "애애앵." 모기가 물었습니다. 가렵지 않았습니다. 태어나지 않았으니 아무 상관이 없었습니다. 태어나지 않은 아이는 토마토밭을 지나 물고기가 사는 강을 건너 계속 걸었습니다.」


「태어나지 않은 아이가 마을에 닿았습니다. 사람들이 바쁘게 걷고 있었습니다 소방차가 달리고, 경찰이 도둑을 쫓고 있었습니다. 빵 가게에서는 구수한 빵 냄새가 났습니다. 하지만 태어나지 않은 아이는 먹고 싶지 않았습니다. 태어나지 않았으니 아무 상관이 없었습니다. 태어나지 않은 아이는 공원에 오도카니 앉아서 아무 상관이 없는 것들을 바라보았습니다.」- 사노요코<태어난 아이> 中



태어난아이 원화

▲ 사노요코 <태어난 아이> 원화 전시



「한 여자아이가 강아지를 데리고 공원에 왔습니다. "안녕?" 여자아이가 태어나지 않은 아이한테 인사를 했습니다. 태어나지 않은 아이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태어나지 않았으니 아무 상관이 없었습니다.」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따라온 강아지가 여자아이의 강아지를 보고 "멍멍!" 짖었습니다. "하지 마, 하지 마!" 여자아이가 소리쳤습니다.」


「강아지 두 마리는 컹컹 짖으며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태어나지 않은 아이는 물끄러미 바라만 보았습니다. 태어나지 않았으니 아무런 상관이 없었습니다.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따라온 강아지가 여자아이 엉덩이를 물었습니다. 다리도 물었습니다.」


「여자아이의 강아지도 태어나지 않은 아이의 팔과 다리를 물었습니다. 태어나지 않은 아이는 하나도 아프지 않았습니다. 태어나지 않았으니 아무 상관이 없었습니다.」- 사노요코<태어난 아이> 中



태어난아이 원화

▲ 사노요코 <태어난 아이> 원화 전시



「"엄마! 엄마!" 여자아이의 엄마가 달려왔습니다. "아파! 아파!" 여자아이가 울먹였습니다. "괜찮아, 괜찮아." 엄마가 여자아이를 달랬습니다. 그러고는 막대기로 강아지를 혼내 주었습니다. 강아지는 슬금슬금 태어나지 않은 아이 곁으로 가서 꼬리를 엉덩이에 말아 넣고 힘없이 앉았습니다.」


「태어나지 않았으니 아무 상관이 없었지만, 태어나지 않은 아이는 여자아이를 총총 따라갔습니다.」


「엄마는 여자아이를 깨끗이 씻기고, 약을 바른 다음 엉덩이에 반창고를 딱 붙여 주었습니다.」


「태어나지 않은 아이도 반창고가 붙이고 싶어졌습니다. 태어나지 않은 아이는 "반창고, 반창고!" 하고 외쳤습니다.」


「"엄마!" 태어나지 않은 아이는 마침내 태어났습니다.」- 사노요코<태어난 아이> 中



사노요코 작품들

▲ '태어난 아이'를 비롯한 사노요코의 역작들



「"엄마, 아파!" 태어난 아이는 팔과 다리가 아파서 울었습니다. "괜찮아, 괜찮아!" 엄마가 달려와서 태어난 아이를 품에 안아 주었습니다. 엄마는 태어난 아이를 깨끗이 씻기고, 약을 바른 다음 팔에 반창고를 딱 붙여 주었습니다. "야호!" 태어난 아이는 엄마한테 안겼습니다. 부드럽고 좋은 엄마 냄새!」

「그리고 어디선가 풍겨 오는 빵 냄새를 맡았습니다. "배고파요, 엄마." 태어난 아이는 빵을 오물오물 맛있게 먹었습니다.」

「태어난 아이는 물고기를 보면 잡으러 가고 모기한테 물리면 가려워 했습니다. 바람이 불면 깔깔깔 웃었습니다.」

「태어난 아이는 공원 저쪽에서 걸어오는 여자아이를 보고 손을 흔들며 소리쳤습니다. "내 반창고가 더 크다!"」

「밤이 되었습니다. 태어난 아이는 잠옷을 입고 엄마한테 말했습니다. "이제 잘래. 태어나는 건 피곤한 일이야." 엄마는 웃었습니다. 그리고 태어난 아이를 꼭 껴안고 잘 자라고 입 맞추었습니다. 태어난 아이는 푹 잠들었습니다.」

- 사노요코<태어난 아이> 中


사는게 뭐라고

▲ 살아 있는 동안 살아있는 그 자체를 충분히 즐길 수 있기를 _ 사노요코



'태어나지 않았으니 아무 상관이 없었습니다'로 반복되는 이야기. 그리고 그림 속 '태어나지 않은 아이'에게서 드러나는 표정 없는 얼굴. 아무 상관이 없다지만, 웃음기 없는 아이 표정은 불편하게 다가옵니다. 괜찮아 보이지 않습니다. 


'태어나고 싶지 않아서 태어나지 않은 아이'는 그러다가 결국 태어나고 맙니다. 여자아이의 엄마가 개에게 물려 다친 딸에게 딱! 붙여주는 반창고. 타인이 보여준 사랑의 행동은 "엄마!" 라는 말과 동시에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태어나고 싶게 만듭니다.


태어나지 않았을 때 아무 상관이 없던 아이. 정말로 아무 상관이 없었을까요? 전혀 괜찮지 않던 아이는 엄마가 달려와 안아주고 "괜찮아, 괜찮아!" 다독여주자 '괜찮다'는 것을 느낍니다. 엄마를 받아들임과 동시에 세상을 받아들이기 시작합니다. 세상의 감각에 눈을 뜨고 진정 태어나게 됩니다.



한국에서 출판한 사노요코 작품들

▲ 한국에서 출판한 사노요코의 작품들



사노요코는 '태어난다'는 의미에 대해 물리적으로 태어난 것과는 별개의 관점을 제시합니다. 아이가 스스로 진정 깨어나, 태어나고 싶게 만드는 요소들을 툭툭 던집니다. 반창고가 등장하고, 엄마가 등장합니다. 분명 태어났지만, '태어나고 싶지 않아서 태어나지 않은 아이'는 아무 상관이 없었기에 피곤하지 않았던 일들을 마주하며 제대로 태어납니다. 


선택권을 줍니다. 산다는 것은 그렇게 선택의 연속이라고. 태어나는 것 부터 선택을 할 수 있어야만 한다고. 그리고 수많은 욕구와 번잡한 상황과 고난이 닥치는 삶은 온전히 너의 것이라고. 그 모든 것에 상관하고 싶어질 때 태어나는 것을 선택하라고.



태어난 아이에게 쓰는 편지

▲태어난 아이에게 쓰는 편지



우체통 앞에 섰을 때, 문득 불안해졌습니다. 분명 내가 낳았지만, 내 아이들이 아직 '태어나고 싶지 않아서 태어나지 않은 아이'일까봐 말이죠. 정확히 말하면 그 불안은 내가 아이들의 마음에 '태어나고 싶다'는 선택을 할 수 있게 만드는 엄마일지에 대한 의문입니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망설이다 결국 편지를 쓰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아직 어린 아이들의 마음에 가장 사랑을 꽃피우는 엄마라는 존재가 있기에 불안과 달리 아이들은 이미 태어났을지 모릅니다. 쓰지 못한 편지에 아쉬워하지 않고, 조금 더 기다려보기로 했습니다. 아이들 마음에 '태어난 것'에 대한 환희가 바깥으로 좀 더 느껴지는 날, 물어볼 생각입니다. 


"너희들, 태어난 거니?"



계룡문고 봄 문화행사 '사노요코'

-2017.3.15~4.25

-계룡문고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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