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분들이 '도산서원'하면, 양반의 고장 경북 안동시에 있으며 퇴계 이황 선생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곳이 떠오르실 겁니다. 저는 그랬거든요. 그런데 우리 대전에도 도산서원(道山書院)이 있답니다.
도산서원은 탄방동 남선공원 인근에 있고요. 그 규모는 크지 않지만 당당히 대전광역시 문화재 자료 제3호로 지정된 곳이랍니다.
서원을 지우면 이 골목도 여느 주택가와 다름이 없답니다. 개발의 풍파 속에서 꿋꿋하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니 그저 놀랍습니다.
안동 도산서원(陶山書院)이 선조 7년(1574)에 세워졌고, 대전 도산서원은 그로부터 100여 년 뒤 숙종 19년(1693)에 세워졌대요. 광해군 때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도학에 정진한 만회 권득기 선생과 그 아들 탄옹 권시 선생의 절개와 학문를 추모하며 세워졌다고 합니다.
뜻과 이름을 남긴 것이죠. 저는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요?
이 곳에서 5월의 토요일 저녁, <도산 와유회>가 열렸습니다.
그럼, 저를 따라 들어가실래요? 사진 속 인물은 토요일 저녁에 TV프로그램 '무한도전'을 포기하고 끌려와야(?) 했던 저희집 맏이랍니다~
'와유(臥遊)'는 누워서 유람한다는 뜻으로 집에서 명승고적을 그린 그림을 보며 즐김을 의미한다네요. 그 소리도 그 뜻도, 참 멋스럽습니다.
도산서원에서 '살아숨쉬는 향교·서원 만들기'를 주관하는 백제문화원의 김정호 대표십니다.
<도산 와유회>의 본 공연에 앞서, 몸을 사리지 않는 마당쇠의 찰진 입담이 배꼽 빠지게 했습니다. 그래서 '가슴여는 마당'인가 봅니다.
본 공연은 구성진 판소리로 시작되었습니다.
"덜커덩 덜커덩 찧는 방아 언제나 다 찧고 밤 마실 가나~."
관람객들도 함께 어우러져 구성지게 불렀답니다. 우리 소리, 참 좋습니다. 쑥스럽지만 '얼씨구!', '좋~~다!', '잘한다!'라는 추임새도 배웠답니다.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39호로 고담소설 강독사이신 소암 정규헌 선생이십니다. 전기수라고도 불리운 강독사는, 조선후기에 책을 읽어주던 직업입니다.
지금이야 온갖 유희거리가 넘쳐나지만, 그 옛날에는 문맹도 많고 백성들의 삶도 힘겨우니 이렇게 이야기를 실감나게 들려주시는 강독사를 얼마나 기다렸을까요?
오성 이항복과 한음 이덕형의 나이들어도 변치않은 우정과 장난끼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 제가 선생님의 손주가 된 듯 흥미진진하게 들었답니다.
어느새 서원에는 어둠이 찾아들었습니다. 고즈넉한 서원이 해금 소리로 가득 찼습니다. 김미숙 선생님은 국악이 무지 무지 하고 싶어 밤봇짐을 싸고 상경하셨다네요. '열망'. 이 분의 어린 시절 꿈을 이룬 이야기에 감동의 물결이 흘렀습니다.
대전시민대학에서 피리를 배우는 수강생들께서 깜짝 공연을 해 주셨습니다. 팔뚝보다 짧은 나무 대롱에서 그리 멋진 소리가 나다니요.
아이들이 제일 재밌어하던, 마당쇠가 놀부에게 글 배우는 대목입니다.
놀부 : "하늘 천 하렸다."
마당쇠 : "하늘 천 하렸다."
놀부 : "하렸다는 빼렸다."
마당쇠 : "빼렸다는 빼렸다."
놀부 : "예끼, 이놈이!"
재밌죠?^^
꾀돌이 마당쇠와 심술뚝이 놀부가 서로 주고 받는 대사는 아이들이 집에 돌아오는 길에서도 계속 따라했습니다.
딱 '무한도전'이 방영될 시간에 나와서 삼남매가 퉁퉁 부어있었는데, 드디어 재미있다고 했네요. 휴~
어느덧 둥근 달이 떠올랐습니다. 이날의 마지막은 피리와 해금의 협연으로 마감했답니다. 앵콜곡으로 영화 '왕의 남자'의 '인연'이 울리었지요.
좋은 소리, 우리 소리. 자주 만나고 들어야 더 정들겠습니다.
<도산 와유회>는 가을이 무르익는 10월에 다시 열린답니다. 가을 저녁 마실, 어떠세요. 참, 맛난 떡과 오미자차도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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