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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여행/역사유적

찾아가는 대전학! 국립대전현충원에서 만난 애달픈 나라사랑 이야기

 

 지난 6일 아침, 아이들 등교를 재촉하고 부지런히 옛충남도청사로 달려갔습니다. 이 자리가 대전교육평생진흥원으로 탈바꿈하고 대전시민대학을 비롯해, 대전근현사대전시관 등으로 활용되는 것 아시죠?

숨이 턱에 차 도착한 그 곳에, 짜~잔!

 

 

 

 

이 날의 대전 탐방을 위해 준비된 버스가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찾아가는 대전학-대전이 좋다'프로그램 대전의 역사·문화·생태·과학 명소를 탐방하는 프로그램입니다. 꽃피는 3월에 시작된 이 프로그램은 12월 3일까지, 모두 70차에 걸쳐 진행될 예정이랍니다.

 

 

 

 

와~올해 처음 시작함에도 3, 4월의 탐방주제가 이리도 알차서 토요일 프로그램은 금방 신청마감 되었답니다. 대전시민 누구나 함께 할 수 있어, 가족단위로 많이들 오신다죠? 저도 다음에는 아이들과 함께, 꼭!

 

 

[출처:국립대전현충원] 태극기거리와 현충탑[출처:국립대전현충원] 태극기거리와 현충탑

 

 

저는 행운의 숫자인 '일곱'번째 탐방, '나라사랑 대전사랑 - 현충원과 유성온천'코스를 다녀왔습니다. 가족들과 자주 나들이 가는 곳인데, 문화해설사님 따라 걷는 여정은 평소와는 달랐습니다.


국립대전현충원은  국립서울현충원( 옛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의 안장능력이 한계에 이르자, 박정희 대통령 지시로 조성되어 올해로 만 30년이 되었답니다.
독립운동가를 비롯한 애국지사와 전사군인, 국가원수 등의 유해를 모시고 있는데요. 이 곳도 95% 이상의  묘역이 찼다는 말씀에 숙연해졌습니다. 그 중에는 천안함 용사와 제2연평해전 전사자들도 있어 그들의 젊음이 애달펐습니다.

 

[출처 : 국립대전현충원] 하늘나라 우체통[출처 : 국립대전현충원] 하늘나라 우체통

 

 

탐방 버스를 탄 채로  태극기거리를 지나면서 '하늘나라 우체통'에 대한 설명도 들었습니다.  유족들께서 돌아가신 분들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 묘역에 편지를 두고 가시곤 한답니다. 이 편지가 비에 젖고 햇빛에 퇴색되어 가는 것이 안타까워  현충원 측에서 고심 끝에 만든 것이 바로 이 하늘나라 우체통.


그리움이 하늘에 닿도록 활짝 펼친 날개도 달았는데, 저와 같은 일반 참배객들의 편지가 더 많이 들었고 여전히 많은 유족들께서는 묘역에 직접 편지를 놓아두신다네요.

 

[출처:국립대전현충원]집배원 차선우님[출처:국립대전현충원]집배원 차선우님


 

또 이 곳에는 '4월의 현충인물'로 지정되신 '집배원 차선우'의 묘도 있답니다. 집배원으로서는 처음으로 현충원에 안장되셨다네요. 104년 만의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진 2011년 여름, 자신의 몸이 배수관에 빨려 들어가는 상황에서도 본인의 안위를 챙기기 보다는 손에 들고 있던 우편물을 동료에게 전달하고 실종되셨다고 합니다. 자신의 직무를 목숨 바쳐 끝까지 지켜내신 분, 부디 좋은 곳에서 편하시길.

 

 

 

 

 

현충원에도 보훈둘레길이 있답니다. 일곱 개의 길이라 무지개 빛깔대로 이름 지어졌다네요. 버스에서 내려 개나리가 만발한 '보라'길을 따라 걷다보면 현충원 전경이 한 눈에 내다보이는 전망대가 나옵니다.

'여기 숭고히 잠든 호국영령의 나라사랑 정신은 영원합니다.'

어쩜 이런 곳이 있는지 대전시민 만 10년차면서, 알지 못했을까요? 한적한 곳이라 차를 이용해 올라오셔도 된답니다.

 

 

 

 

이 곳은 애국지사 제 2묘역입니다. 이 곳에서는 세 분을 만나봤습니다.

 

처음 찾아뵌 분은 을미의병장 문석봉 선생님입니다. 일제의 명성황후 시해 사건 이후 최초로 봉기하여 전국적으로 을미의병 활동이 일어나도록 하셨답니다. 그리고 그 유적인 '유성의병사적비'가 유성장터에 있다 하니, 4일과 9일에 유성 5일장 나들이갈 때 찾아봐야겠습니다.

 

 

 

 

두 번째 찾은 곳은 영화로 항일독립운동을 하셨던 라운규 선생님 묘입니다.

'아리라앙 아리리앙 아라리요오오~ 아리랑 고오개애로로 넘어간다~'

 

 

 

선생께서는 <아리랑>이라는 무성영화에서 각본, 감독, 주연 1인 3역을 하셨는데요. 이 때 나이가 24살이셨답니다. 천재시죠? 이 작품은 당시에 워낙 인기가 많아서 한국전쟁 무렵까지 흥행했다는데,그 바람에 거의 소실되어 몇 장의 사진만이 남았다네요. 그럼에도 민요 <아리랑>을 암담한 시절을 견뎌낸 우리 겨레의 애국가로 부르게 된 것은 바로 라운규 선생의 영화 <아리랑> 덕분이랍니다.

 

세번째로 찾아뵌 분은 백범 김구 선생의 어머니이신 곽낙원 선생님이십니다. 우리 민족의 큰 어른이신 김구 선생의 어머니여서가 아니라, 당신 자신 역시 한말의 독립운동가이자 민족운동가셨다고 합니다. 찬거리를 줄여 군자금을 충당하고 생일잔치 비용으로 무기를 구입하셨다지요. 상해 임시정부 요인들의 어머니로 사셨기에 이 곳에 잠드신 거랍니다.

 

 

 

고은 시인께서 곽낙원 선생님을 칭송하며 지은 시 한 편을, 대전학 담당이신 박경애 님께서 낭독해 주셨습니다. 잠시 함께 읽어보시겠어요? 

 

     

      곽낙원

 

                                                    고 은

 

물론 낫 놓고 기역자 알 리 없는

황해도 텃골 군역전 부쳐먹는 쌍놈의 집 아낙입니다.

그런 아낙이 제 자식 창수가

대동강 치아포 나루에서 왜놈 한 놈 때려죽이고

물 건너 인천 감리영 옥에 갇히니

초가삼간 다 못질해버리고

옥바라지 객주집 식모살이 침모살이 해가며

차꼬 물린 살인죄 자식 면회 가서

나는 네가 경기감사 한 것보다 더 기쁘다

이렇게 힘찬 말 했습니다.


몇십 년 뒤 여든 살 바라보는 백발노모

중국에 건너와

낙양군관학교 사람들이 생신날 축하하려고

돈 몇 푼씩 걷은 걸 알고

그 돈 미리 받아내어

생신날 단총 두 자루 내놓으며

자네들 걷은 돈으로 샀으니

내 생일 축하의 뜻으로 이 총 쏴

부디 부디 독립운동 이루어주시게

그 뒤 그녀는 여든 두 살로 중경땅에서 눈감았습니다.

나라 독립 못 보고 죽는 것 원통하다

이 말이 그녀가 남긴 말 한마디 아니고 무엇입니까.

 

 

 

큰 인물 뒤에는 그 분을 열과 성으로 길러내신 큰 어머니가 계셨네요. 사소한 일로 울고 웃는 제 자신이 너무너무 부끄러웠습니다. 이 곳에서 현충원 제례단의 연주를 들으며 애국지사 묘역을 향해 묵념을 했습니다.

 

 

[출처:대전시민대학] 애국지사를 향하여 일동 묵념의 시간을 가졌습니다.[출처:대전시민대학] 애국지사를 향하여 일동 묵념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애국지사 묘역을 둘러본 다음에는 사회공헌자 묘역을 찾았습니다. 이곳에도 많은 분들이 잠들어 계신데, 베를린 올림픽의 마라톤 영웅 손기정 선생님과 <퐁당퐁당>, <어린이날 노래>, <고추먹고 맴맴>을 만드신 윤석중 선생님을 뵀습니다.

손기정 선생님께서 마라톤 우승을 하고 받으신 그리스 청동투구는 보물 제904호로 지정되었는데요. 우리나라 유물 중 유일하게 외국산이라고 합니다.

윤석중 선생님께서는 1200여 개의 동시를 만드셨는데요. 이 중 800여 편이 동요가 되었다네요. 일제 시대에 우리 어린이들을 위해 아름다운 작품들을 남기신 그 분 덕에 올해 어린이날에도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이 불려지겠습니다.

 

 

 

 

현충원 둘레길 중 빨강길을 따라 잠시 걷다보니 옛 증기기관차가 한 대 서 있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에 미군 구출 작전에 투입된 미카 3-129 증기기관차인데, 이제는 이곳이 그 당시에 활약하신 철도인들의 활약상을 담은 '호국철도기념관'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전쟁하면 국인아저씨만 떠올렸는데, 그 뒤에서 함께 열심히 싸우신 철도인들이 계셨음을 어리석은 저는 뒤늦게 알았습니다.

풍광이 좋아서 가족들과 자주 찾는 곳인데, 다음에는 제가 배운 만큼 아이들에게 '현충원'의 의미를 전해 주어야겠습니다.

다시 셔틀을 타고 찾은 곳은 현충원과 그리 멀지 않은 유성온천입니다. 그런데 유성온천 발원지가 따로 조성되어 있는 것을 아시나요? 유성온천공원이 족욕체험장과 그리 멀지 않으니 찾아보셔도 좋겠습니다.

 

 

 

10년째 살고 있었어도 제대로 몰랐던 대전을 알아가는 프로그램, '찾아가는 대전학-대전이 좋다'. 벌써 다음 프로그램도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