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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여행/역사유적

대전의 문화재를 찾아서, 김정선생 묘소



대전의 문화재를 찾아서, 김정선생 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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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암 조광조와 더불어 왕도정치의 새 시대를 열고자 개혁 정치에 참여 하였다가 안타깝게도 1519년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제주도에서 36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김정선생의 묘소를 찾았습니다. 김정선생의 묘소가 있는 일원은 1991년 7월 10일 대전광역시문화재자료 제25호로 지정이 되었습니다.


묘소는 대전 동구 신하동 요골마을 작은 언덕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원래 김정의 묘소는 예전의 대덕군 동면 내탑리에 있었으나 1978년 대청댐 공사로 그 곳이 수몰지역이 되면서 이곳 신하동으로 옮겨왔다고 합니다. 물론 이때 부속 건조물들도 함께 옮겨 왔다고 하네요.가을은 신하동에도 그리고 김정선생의 묘소일원에도 찾아 왔습니다. 선생의 묘소는 신하동의 요골마을인데 건너편 산이 삼태산(三台山)이라고 합니다. 그 삼태산의 생긴 모습이 묘하게 생겨다 하여 마을이름이 묫골이 되었답니다. 그 묫골이 변하여 지금의 요골이 되었다고 하네요. 김정선생의 묘소는 입구의 대문을 시작으로 제향을 올리는 사당인 산해당, 그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는 별묘, 선생의 묘소, 그리고 부인의 정려각과 신도비 순으로 관람하면 좋습니다.




 

먼저 입구에는 선생의 묘소일원이 문화재임을 알리는 안내판과 

표지석이 있고 좌측으로는 선생의 일대기가 정리 되어 있습니다.



 

 

<유학자 김정선생>


여기에는 김정(1486-1521)선생을 모신 사당과 무덤이 있다. 중종2년에 문과에 장원한 후 이조참판 대사헌 형조판서등을 거치면서 현량과를 신설 하였다. 조광조와 더불어 권신의 전횡을 막고 지치(至治)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미신을 타파하고 향약을 전국적으로 시행하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기묘사화로 제주에 유배되었다가 36세에 사사되었다. 인종1년에 신원 복직되고 영조 24년에 영의정으로 추증되었다. 부조묘(국가 유공자의 신위를 영원히 제사지내는 사당)로 명받았다. 호는 충암(沖庵) 시호는 문간공이며 시와 그림에도 능하였다. 무덤 동쪽에 부인의 정려가 있다.


 

 

 

대문에는 현판이 없어 대문이름이 없지만 그 위용은 자못 웅장합니다. 

솟을 대문으로 기와는 물론 다포 양식으로 이중 겹처마로 만들고 단청으로 마무리되어 화려하기 그지없습니다.


 


▲ 산해당으로 들어가는 대문


대문을 들어서면 바로 제향을 올리는 산해당입니다.

山海堂은 우암 송시열이 충암 김정 선생의 성품을 높은 산과 같고

 넓은 바다와 같다는 “山高海活" 이라고 한데서 산해당이 되었다고 합니다.



 


▲ 산해당



 

 

산해당의 오른편으로는 별묘가 있습니다. 불천위라고도 불리는 

별묘는 김정 선생의 (1486~1521)위패를 봉안하고 있는 사우입니다.



 


▲ 별묘 대문

 

불천위라 함은 나라에 큰 공훈이 있거나 도덕성과 학문이 높으신 분에 대하여 신주를 땅에 묻지 않고 사당에 영구히 두면서 영원히 제사를 지내는 것을 말합니다. 특별히 불천위를 모시는 사당을 부조묘(不祧廟)라고 하는데 본래 제사는 고조까지 4대를 봉사(奉祀)하게 되어 있고 그 위의 조상들은 시제로 올립니다. 그러나 불천위에 봉해지면 영구히 제사를 지낼 수 있습니다.

산해당 서쪽의 작은 대문을 통해 담장을 끼고 동산에 오르면 선생의 묘소입니다. 산해당의 기와지붕 너머로 신상동과 신하동의 가을 들판이 펼쳐집니다. 선생의 비문은 다음과 같이 적혀 있습니다.



 


▲ 김정선생 묘비


有明朝鮮資憲大夫刑曺判書 贈領議政謚文簡公 沖庵金先生之墓 贈貞敬夫人恩津宋氏祔

(유명조선자헌대부형조판서 증령의정부시문간공 충암김선생지묘 증정경부인은진송씨부좌)


 


▲ 김정선생 묘소





▲ 김정선생 묘소에서 바라본 신하동 들판

김정선생의 묘소에서 오른쪽을 바라보면 은진송씨 정려가 보입니다.





▲ 충암김정선생부인정려




송씨부인은 쌍청당 송유의 현손녀로 진사 여익의 딸입니다. 선생이 제주에서 사사되자 같이 세상을 떠나려 하였으나 늙은 시부모를 모시고 있어 자결을 못하고 효도로 부모를 공양하였다고 합니다. 이후 시부모가 세상을 떠나자 8일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이런 효심을 후세 사람들에게 본받게 하기 위해 1803년, 순조 3년에 정려를 내렸다고 합니다.



 


▲ 김정선생 신도비


정려 앞으로 김정선생의 평생 업적을 기린 신도비가 있습니다. 1641년(인조 19)에 세워진 비입니다. 

신도비를 뒤로 김정선생이 가고자 했던 이상을 생각해 보며 발걸음을 모두 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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