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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문화/전시ㆍ강연

대전 가볼만한곳|충남도지사전시실-부전대동계


대전가볼만한곳|충남도지사전시실


기획특별전 III - 모듬살이의 전통 [부전대동계]

(2015.1.30~6.30)





충남도청이 내포로 옮겨가기 전까지

충남도청은 대전광역시의 중심가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충남도청이 충남 내포시로 이전한 후,

충남도청의 본관 건물은 문화재청에서 지정한 등록문화재로 남아

대전 가볼만한 곳으로 손꼽는 장소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현재 1층은 대전근현대사전시관으로, 주로 대전의 20세기 생활상을 상설전시하며

또한 크고 작은 기획전도 하는데, 지금은 '소제동, 겨울꽃을 피우다' 전시를 하고 있네요~


영화 '변호인'의 주요 장면을 찍었던 중앙 현관의 계단으로 2층으로 올라가면

충남 도지사실이 있던 장소에 가구 등 집기가 당시의 모습 그대로 남아

충남도지사전시관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안내실, 접견실, 집무실, 휴식실 등으로 나뉘었던 공간이 그대로 전시 공간이 되었는데,

제일 안쪽에 도지사의 휴식 공간이었던 곳은 현재 충남의 문화재를 기획전시하는 특별전시실입니다.

이 특별전시실에서 1월 말부터 [부전대동계]라는 전시가 열리고 있어서 가보았습니다.






깔끔하게 구성된 안내실은 쉴 수 있는 공간도 있고

간단하게 읽을 수 있는 안내 책자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자원봉사 도슨트 선생님이 친절하게 맞아주며 설명을 해주시는군요~!





안내실을 지나 들어가면 접견실이었던 공간입니다.

충청남도의 역대 도지사의 사진과 이름이 전시되어 있는데,

이번에 우여곡절을 겪고 국무총리 자리에 오른 이완구 총리의 사진도 보이는군요.

아래의 블로그를 참고하셔도 좋겠습니다~

http://blog.naver.com/claudi00/220022744310





도지사의 집무실이었던 공간에는, 그대로 회의실로도 이용할 수 있게 커다란 탁자가 놓여 있었네요.

오른쪽의 문을 열고 나가면 작지만 실용적인 현관 지붕의 테라스 정원입니다.

이 정원에서 바람을 쐬며 민생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을 수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테라스 정원의 문 위에는 건축되던 30년대 당시의 우리 장식이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장식 외의 부분에는 약간의 개보수한 흔적이 보이는데

그래도 80 여년을 저 자리에서 한결같이 꽃을 피우고 있는 것이었군요.





1920년대에 만들어졌다고 추정되는 금고인데

이 곳이 공주청사, 대전시 청사(1932~2012)이었던 시기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충남도청이 내포 신도시로 이사하면서 같이 떠났다가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유물로 쉬게 된 철제 금고입니다.

금고 위의 달력에 표기된 2012년 12월26일은 오랜 시간 대전시에 머물던 충남도청이

본 고장인 충청남도 내포 마련된 신청사로 이전한 날짜입니다.




자, 이제 가장 안쪽의 휴식 공간에 마련된 특별전시관으로 들어가 [부전대동계] 전시를 봅니다.

조선시대 부전동은  현재 공주시 우성면 내산리, 한천리, 도천리, 신웅리 일대를 말하는데

그 곳에 살던 양반 사족들이 주도하여 만들어 운영한 일종의 향약이라고 합니다.





여러 문서에 드러난 바에 따르면 동계에 들어가기 위한 규칙 등도 명확하게 표기되어 있고,

가입한 회원 명부까지 보존되어 있습니다.


차례를 적은 목록이 '좌목'인데, 위의 고서에 따르면

16세기에 창설된 부전동게가 1663년에 중수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니,

부전동계의 역사는 무려 400년을 이어오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관의 답인까지 찍힌 문서를 보면, 지금이나 백여 년 전이나 살아가는 모습만 다를 뿐이지

문서를 세세하게 기록하고 공식적으로 직인찍어 관리하는 것은

지금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예전에 중고등학교 때 국사 시간에 계와 향약을 배우면서 나왔던 문구의 실체가 여기에서 보입니다~^^


덕업상권 - 좋은 일은 서로 권한다.


과실상규 - 과실은 서로 규제한다. (술 마시고 다투는 것,

장기 바둑으로 세월 보내는 것, 말을 지어내고 훼방하는 것,

행실이 공손하지 않은 것,말이 믿음직하지 못한 것,

경영하고 찾는데 부끄럼이 없는 것, 탐내어 얻기를 싫어하지 않는 것..)


예속상교 - 예와 풍속을 지키고 서로 잘 사귄다.

(사랑과 공경, 안부묻기, 일은 명백하게, 문병, 출생 축하)


환난상휼 - 어려운 시기에는 서로 구휼한다.

여기 나와있는 기본적인 규칙만 잘 지켜도

생활 속에서는 별다른 상위법이 더이상 필요하지 않을 정도네요. 






동민의 애경사를 함께 나누던 동물(洞物)입니다.

이 옷을 입고 부부가 되어 조선시대의 역사를 이어 온 많은 조상분들은 모두 역사가 되었겠지요...

동물(洞物)은 주로 혼례 때 사용하는 혼구(婚具)와 상례 때 사용하는 상구(喪具)가 주축이 되고,

그 밖의 공동체 생활에 필요한 물품이 있었다는데, 공동으로 구비하여 큰 비용 들이지 않고

일이 있을 경우에 공동으로 사용하던 것입니다.




위의 책자에는 혼구 명목과 수량이 가지런하게 적혀 있습니다.

지금은 사사용하지 않는 복자음도 보이는데,

신랑의 신발인 목화의 단위로 켤레가 아닌 커리라고 되어 있어서 미소짓게 됩니다.


인터넷 사전에 찾아보니, '커리'는 '켤레'의 방언으로 강원, 경남, 충청,  평북, 함경에서 쓰던 말이라고 합니다.

그러도 보니 1905년 생, 천안 출신이었던 할머니가 예전에 운동화 '한 커리'라고 했던 말이 기억나네요~^^




혼구를 착용한 신랑 신부의 모습이었겠지요.

일생에 한 번 입어보는 혼례날이었을 테니 얼마나 설레는 순간이었을까요~!

사진 속의 신랑 신부는 혼인 전에 서로 누군지 알기나 했을까요?

연애 기간도 있었을까요?


얼굴을 많이 가리지 않은 것으로 보아 아주 예전은 아닐것 같은데

지금 혹시 연세가 8-90대인 해로하는 부부로 살고 계시진 않을까요?

살아계시다면 지금은 어떤 모습일지 참 궁금합니다~^^







부전동의 무사안녕을 기원하며 마을에서 공동으로 지냈던 무성산 산신제입니다.

지금도 지방의 산 속으로 가면 작은 산신각이 서 있는 것을 더러 볼 수 있는데,

마을의 안녕을 위하여, 그리고 질병과 재난을 막고 구성원의 안녕과 공동체의 번영을 위하여

산신령에게 올린 공동제사인 동제를 지내던 곳입니다.

굳이 종교적 의미를 부여하지 않더라도 민속적인 의미를 강조하면서

전통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부전대동계] 전시는 6월30일까지 쭈욱~ 계속되니 가족과 함께 의미를 되새기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친절하고 설명도 잘해주는 도슨트 선생님의 설명도 꼭 들으면서 보실 것을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