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대학교 Ken Morrison 교수와의 인터뷰 #1 직업
***
우리가 일상을 부대끼며 살아가는 대전에는 의외로 멋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기획해온 대전의 사람들을 만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는데요. 그 첫 번째 인터뷰이로 한남대학교 교수인 Ken Morrison 교수를 선정했습니다. 멀고도 먼 미국 중서부 네브래스카주에서 건너온 그는 자신의 꿈과 삶에 대한 철학을 4년여의 대전 생활에 녹여냈습니다. 대전이 좋아, 한남대학교의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 좋아 이곳을 못 떠난다는 그, 그의 대전과 삶 이야기를 들어보지 않으실래요? 인터뷰는 총 4개 분야로 나누어 이루어져 있으며 (직업, 교육, LGC, 꿈), 본격적인 질문에 들어가기 앞서 그에게 대전에 관해서 물어봤습니다.
0. Daejeon
0. 대전
Q : Can you introduce yourself briefly?
Ken Morrison : My name is Ken Morrison, I’m an assistant professor at Linton global college. I have lived in Daejeon for four years and I’m from Nebraska, which is in the middle of the USA.
이한규 :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합니다.
캔 모리슨 : 안녕하세요, 캔 모리슨입니다. 저는 한남대학교 린튼 글로벌 칼리지 교수로 재직 중이고요. 미국 중부에 있는 네브래스카 주에서 왔으며, 대전에 온 지 4년 되었습니다.
Q : How's life in Daejeon?
Ken Morrison : I like Daejeon. I like that it is clean and has several new parts. I really like that I can be in the middle of an exciting city but still get out to nature quite quickly. I love that I can travel easily to other cities if I choose. Yet, I generally stay in Daejeon.
이한규 : 대전에서의 일상은 어떤가요?
캔 모리슨 : 저는 대전이 좋습니다. 대전이 좋은 이유는 깨끗한 것 말고도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죠. 저는 끝내주는 도시 한 가운데 있다가도 순식간에 자연으로 벗어날 수 있는 대전이 정말 좋습니다. 제가 원한다면 다른 도시로 쉽게 여행을 떠날 수 있다는 사실을 사랑하지요. 아직 대부분은 대전이 제 일상을 책임지고 있지만 말입니다(웃음)
Q : Where are the best places to go in Daejeon?
Ken Morrison : I like to explore different parts of the city and I really like my bike route following the different rivers to new parts of the city. I like Kung dong. I also like jungmin doing. When I first moved to Daejeon, I lived near city hall, so that area always feels comfortable to me. I should make more time to watch the Hanwha Eagles play. I love that I am just a short taxi ride away from a KBO team.
캔 모리슨 : 저는 대전의 다양한 곳들을 탐험하는 걸 좋아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대전의 새로운 면모들을 보기 위해 강가를 따라 자전거를 타지요. 저는 궁동과 전민동을 좋아합니다. 제가 처음 대전에 이사왔을 때엔 시청 근처에 살았어요. 그래서 그 지역은 항상 저를 편안하게 해줍니다. 저는 한화이글스 경기를 더 많이 봐야할 겁니다. 한화의 야구를 보고나서 집으로 돌아오는 순간이 그리도 좋을 수 없거든요.
Q : Compare with your home or other cities what is the unique thing about Daejeon?
Ken Morrison : I grew up in a tiny town in the USA so there are not many comparisons. I do feel that because Daejeon does not have a military base, it has a distinct feel among the international community. I feel that the inexpensive transportation, simple subway routes and friendly bike paths make Daejeon a good place for someone who has not lived in Asia before.
이한규 : 다른 도시나 교수님의 고향과 비교하기에 대전의 특별한 점은 무엇인가요?
캔 모리슨 : 저는 미국의 조그만 도시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딱히 차이점을 설명할 길이 없네요(웃음). 저는 대전에서 국제적인 지역 사회의 축소판을 보는 것 같습니다. 대전은 저렴한 교통비와, 단순한 지하철 노선 그리고 친숙한 자전거 도로등, 아시아에 살아보지 못한 이들에게 아주 좋은 거주 환경을 제공해주는 곳입니다.
1. JOB
1. 직업
Q: You are an assistant Professor at Linton Global College, what do you teach?
Ken Morrison : I teach new media classes in the Global Communications and Culture department. New media are basically SMS. We focus on some of the tools that computers use for reaching large audiences. However, that is not enough. We also study the psychology, marketing and the techniques of how doing an effective job at designing the right message in the right way at the right time. I teach several classes regarding media, video & organizational communications.
이한규 : 교수님은 린튼 글로벌 칼리지에서 무엇을 가르치시나요?
캔 모리슨 : 저는 글로벌 커뮤케이션 앤 컬쳐 과에서 뉴 미디어 관련 수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뉴 미디어는 기본적으로 소셜 미디어 서비스를 통칭합니다. 이것은 더 많은 군중에게 다가갈 수 있는 컴퓨터 도구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요, 하지만 단순히 도구만을 공부하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심리학, 마케팅, 그리고 올바른 메시지를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기술 등에 관하여도 배워야 하고, 저는 이것들에 관한 수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결국, 제가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미디어와 비디오 & 유기적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수업들이겠네요.
Q : I heard that you used to work at Cable One Advertising in USA, what did you do and what did you learn during that working period?
Ken Morrison : Cable one was a wonderful opportunity for me. We were owned by the Washington Post. So it was nice to be part of a large corporation. Regarding what I did at Cable One. We had a sales team. As soon as a business said they wanted to do television advertising, I would go and meet with the clients. I would find out the history of the organization and their goals for the future. Next, we would find out goals for their specific advertising campaign, and I would just ask many questions and we would have a good conversation. Then I would go back to the office and I would write a script. Sometimes we planned a campaign of one or two or three or five commercials and then I would go back and we have an advertising pitch where I tried to get them to want to accept my ideas. Sometimes they would say yes and sometimes we would make small changes or big changes. We just did whatever was needed. After we agreed on the goals and the scripts, then I would make a storyboard and shoot the commercial. After that, me and my team would go and edit the commercial and later we would take the finished commercial out to the client for approval. After the client said they liked it, I actually also took care of computers and satellites to make sure that the commercial was broadcast at the correct times. So of course all of that is part of the team, but I was involved with every step from the very beginning until we got approval the commercial and then finally to make sure that the commercials ran on ESPN, CNN, and other major channels. So it was a very good opportunity to manage a lot of responsibility in my very first job out of university. I grew a lot due to these experiences. It was very stressful, but I’m very thankful for my seven years at Cable One.
이한규 : 미국에 계실 때 케이블 원 방송국에서 일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 기간에 무슨 일을 하셨는지요?
캔 모리슨 : 케이블 원은 제게 정말 큰 기회였습니다. 미국 유명 일간지인 워싱턴 포스트가 케이블 원을 소유하고 있었는데, 커다란 조직의 일원의 되어 많은 걸 배울 수 있었습니다. 제가 케이블 원에서 했던 일에 관하여 언급하자면, 일단 케이블 원에는 영업 팀이 있습니다. 저는 영업 팀의 일원으로서 광고주가 텔레비전 광고를 원할 때, 광고주를 만나러 가곤 했습니다. 그곳에서 그 조직의 역사와 미래의 목표를 찾아냈죠. 그리고 나서는 그들이 원하는 광고의 진정한 목표를 찾아냈는데, 이를 위해 많은 질문이 필요했고, 좋은 대화를 나누어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광고주와의 면담을 진행하고 나서 사무실로 돌아오면 각본을 짰습니다. 때때로 저는 하나의 광고에 대해 세 가지 혹은 다섯 가지의 초안을 만들었습니다. 광고주가 한 번에 납득할만한 결과를 도출해야 했으니까요. 보통은 광고주의 승낙으로 각본이 다음 단계로 넘어갔으나, 때로는 크거나 작은 수정이 필요했습니다. 모두가 완성된 각본에 동의하고 나면 광고 촬영을 위한 스토리보드 제작에 들어갔습니다. 그 후 광고를 만들고, 광고주에게 최종 확인을 받습니다. 만약 광고주가 광고를 마음에 들어 한다면, 광고가 제시간에 나올 수 있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물론, 이 모든 과정은 영업 팀이 각자의 부분을 맡아 진행했지만, 저는 광고 집행의 초기 과정부터, 만들어진 광고가 ESPN이나 CNN 혹은 메이저 채널들에 송출되는 순간까지 거의 모든 과정에 참여했습니다. 제가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으로 얻은 이 직업은, 많은 책임감을 배울 수 있는 훌륭한 경험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런 경험들을 통해 성장했습니다. 이 과정들은 힘들었지만, 저는 7년 동안의 케이블 원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Q : Is it a similar job with sports reporter at the local newspaper? “The Howells Journal”
Ken Morrison : No, Sport reporting is significantly different. It was definitely a small town, small newspaper and for that I was simply reporting about the high school basketball, baseball and football games. I primarily covered basketball and baseball. For that, I just went to the games, cover the sports action and take notes. After the game, I would talk to the coach and maybe talk to the star players. I liked writing so it was somewhat easy for me to just write those stories up. That was very good for me because I think I started when I was sixteen years old. It was very good for me to have a deadline every single week and it was also good because I knew people were reading what I was writing so I had public exposure right away. It was kind of strange because I was just a young kid and I was writing about the older students in our school. Usually football players are big and strong. So I had to make sure I did an accurate job writing about them. Occasionally, they might play terrible but I was the one who had to write about them playing terrible. That was not fun for me as a younger kid in the school. But of course I didn’t have to do that too many times because our players were good and our teams have usually been good. But that was a lot of responsibility as a young person. Therefore, I would say that those experiences made my high school life a little bit different than most people when they were freshman and sophomore in high school.
이한규 : 교수님이 하월스 저널에서 일했던 스포츠 리포터로서의 직업과 비슷한 일을 하셨나요?
캔 모리슨 : 아뇨, 스포츠 중계와는 확실히 다릅니다. 스포츠 중계는 정말 작은 도시에서, 조그만 신문사를 위한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저는 단순히 고등학교 농구와 야구 그리고 풋볼 게임에 대한 중계만을 맡았었습니다. 대부분은 농구와 야구를 주로 다뤘지요. 중계를 위해서 단지 게임을 보러 갔고, 노트를 하고, 게임이 끝나면 코치나 유명 선수와 이야기를 나누면 되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글 쓰는 걸 좋아했고, 그래서인지 한 편의 이야기를 구상해내는 건 제게 어렵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중계 일을 16살 때부터 시작했습니다. 그 일이 여러모로 제게 커다란 도움이 되었는데, 우선 매 기사를 매주 마감해야만 했고, 또한 제 글이 타인에게 읽힌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많은 책임감을 갖을 수 있었습니다. 사실 조그만 아이가 자기보다 나이 많은 학생들에 대해서 글을 쓴다는 게 무섭기도 했습니다. 보통 풋볼 선수들은 크고 강하기 때문에(웃음), 제가 그들에 대해 쓰는 것들에 틀린 사실은 없는지 꼭 확인했습니다. 가끔 그들이 최악으로 경기에 임할 때, 저는 그들이 경기에서 최악이었다고 말하는 한 사람이었습니다. 사실 그건 조그만 아이에게 그리 즐겁지 않은 경험이었습니다. 물론 선수들에 대해 안 좋은 기사를 쓸 일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선수 대부분과 우리 팀이 꽤 좋은 실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죠. 이러한 일련의 경험들은 어린 저에게 커다란 책임감을 심어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제 고등학생 시절이 다른 누구의 학생 시절과는 다르다고 말할 수 있는 겁니다.
Q : When I took your class last year, you told me that many people are willing to help young and talented people. Do you think that you got that opportunity because you were young and talented?
Ken Morrison : Sure. I do think that it is pretty universal. Maybe not everybody is willing to help young people, But I think in most cultures, people are willing to help a young person if the young person is polite, if they show their hard working and they show they want to learn and they have a good attitude, I think a lot of people will try to give them advice and maybe help them get the experience. Also, with the new technology that has advanced since I was young, you don’t have to wait for an editor's approval for you to start creating media or to be writing. I do think that when I was young, I was lucky because I had teachers who helped me, I have some unique opportunities, and good people around me. Also, because they could see that I was polite and that I wanted to learn, they invested in me. They saw that I was hard working and that I could meet the deadlines so they were willing to give me more chances. And I think that opportunity still exists for a lot of people. But you have to pursue those opportunities. They don't just come to you.
이한규 : 제가 작년에 교수님의 수업을 들었을 때, 교수님께서 많은 사람들은 젊고 재능 있는 친구들을 도와주길 원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교수님께서는 교수님이 젊고 재능이 있어서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하시나요?
캔 모리슨 : 물론이죠. 저는 그게 일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모든 사람이 어린 친구들을 흔쾌히 도와주는 건 아닐 겁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문화에서, 사람들은 예의가 바르고 열심히 일하는 모습과 배우길 원하는 태도를 보여주는 어린 친구들을 흔쾌히 도와주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좋은 충고를 해주거나, 더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겠죠. 또한, 제가 어렸을 때보다 현재의 기술은 엄청나게 진보했습니다. 당신이 글을 쓴다거나 미디어를 만들 때, 당신은 편집자의 승인을 기다릴 필요가 없는 거죠. 저는 제가 어렸을 때 얻었던 특별한 기회를 떠올려 봅니다. 저를 진심으로 도와주는 선생님과 좋은 사람들이 제 주변에 있었죠. 그들은 제가 예의가 바랐고, 배우길 원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제게 시간을 투자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들이 보았을 때 저는 열심히 일했고, 항상 마감을 지키려고 노력했으니까, 제게 더 많은 기회를 주었던 거죠. 기회는 여전히 많은 사람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당신은 이러한 기회들을 추구해 나가야 합니다. 기회란 것은 절대 가만히 있는 당신에게 먼저 발걸음 하지 않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