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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여행/역사유적

[대전여행] 여름날 우암사적공원의 풍경 (우암송시열/송시열/남간정사/우암사적공원)




조선왕조실록에 그 이름이 3,000회나 올랐다고 하는 조선 중기의 대학자인 우암 송시열 선생.

선생을 선양하기 위해 대전광역시에서 조성한 우암사적공원에는
 
문화재로 송자대전판과 남간정사 등이 있으며,

시설로는 남간사 및 주요 건물들과  유물전시관, 장판각 등이 있습니다.

한 곳에서 송시열 선생의 생애와 업적을 접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아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유물전시관 내에 있는 우암 송시열 선생의 초상화입니다.

노구의 모습인데도 안광에 힘이 넘치는 것 같습니다.

유물전시관 내에는 선생의 생애와 업적을 볼 수 있는 연표 및 전시품들이 잘 정리되어 있으며,

점심 시간을 피한다면 문화유산해설사의 친절하고 자세한 안내도 받을 수가 있답니다.






송시열 선생이 유림과 제자들을 모아 학문을 익히던 곳인 남간정사의 모습입니다.

비가 막 그친 때라 연못의 물은 탁했지만 초록으로 우거진 주변 풍광들을 오롯이 담아내기엔 충분하였네요.

연못 가운데의 둥근 섬은 신선이 산다는 봉래산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남간'이란 양지바른 곳(남쪽)에 졸졸 흐르는 산골물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선생이 평생 흠모하던 주자의 시'운곡남간'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해요.

대청 밑으로 개울물이 흘러 내려 눈앞의 자연 연못으로 이어지는, 참으로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하는 곳입니다.

흐르는 물 위에 건물을 짓는다는 발상 자체도 열정적인 선생의 모습을 잘 말해주는 듯 합니다.



남간정사는 송시열 선생의 사후에 유림들이 목판을 새겨 송자대전을 펴냈던 장소이기도 하지요.

'송자'라는 칭호는 그의 학문적 업적이 얼마나 대단했는 지를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송자대전판은 선생의 문집과 연보 등을 집대성한 판목으로 현재 사적공원 내 장판각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주차장 쪽에서 본 장판각의 모습입니다.






기국정

기국정은 우암 선생께서 손님맞이를 위해 세운 정자로

소제호 주변의 소제동에 세워져 있었으나 일제강점기에 소제호가 매몰되자 지금의 위치로 옮겨 지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연당'이라 불렸으나 주변에 구기자와 국화가 무성하여 기국정이라 이름하였다고 하지요.





기국정 누마루 난간의 문양이 참 단순하면서도 멋스럽네요.

위쪽의 문양은 박쥐 모양이라고 합니다.

예전에는 박쥐를 다산이나 복을 주는 행운의 동물이라 여겼다고 합니다.

궁궐에서도 박쥐 문양을 본 적이 있는 것 같아요.


 


유물전시관 내에 있는 많은 전시물 가운데에서 '치,부끄러울'라는 한자가 눈에 뜨입니다.

송시열 선생은 주자학의 대가로 이이의 학통을 계승, 기호학파의 주류를 이루었으며 예론에 밝으셨던 분입니다.

송시열 선생이 추구하셨던 예학의 실천, 그것을 이 뜨거운 한 글자가 대신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앞서 소개한 별당 동춘당의 주인이셨던 송준길 선생의 성정이 봄과 같고 仁을 추구하셨던 분이라고 말한다면

남간정사의 주인이신 우암 송시열 선생의 성정은 여름과 같고 여름(남방)의 덕성인 禮를 추구하셨던 분이라고

개인적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열정적이고 적극적이었던 삶의 주인공인 송시열 선생의 자취를 따라

둘러본 우암사적공원에서의 여름 한낮은 왠지 모르게 뜨겁고도 시원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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