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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여행/역사유적

[대전여행] 동춘당, 늘 새로운 봄과 같아라! (동춘당/송준길)



우리 고장을 대표하는 옛 인물로 동춘당 송준길 선생을 들 수 있습니다.

선생은 조선 후기의 성리학자로서 예학에 밝았고 문장과 글씨에 능했던 분이지요.

우암 송시열 선생과 함께 사계 김장생 선생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두 분은 학문적 경향이 같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성정은 서로 조금 달랐던 것 같아요.

먼저 송준길 선생의 별당인 동춘당과 고택을 둘러보며 선생의 인품이 어떠했을 지를 엿보자구요~






동춘당이라는 이 현판은 송준길 선생이 돌아가신 6년 후 우암 송시열 선생이 직접 써서 걸어둔 것이라고 해요.

同春이라 하면 '봄과 같다'는 것이지요.

동양의 오행사상에서 봄의 덕성은 인(어질 仁)으로 분류합니다.

겨울을 지나온 봄은 언제나 우리에게 새롭게 설레임으로 다가오는 계절이지요.

만물을 생하고 생하는 계절인 봄의 덕성처럼 송준길 선생은 늘 仁을 추구하는 사람이었을 것이라고

동춘당이라는 '호'를 통해 추측할 수 있습니다.





처마선이 참 아름다운 건물이지요?

동춘당은 보물 제209호로 지정된 우리 고장의 대표적 문화재입니다.

그것은 유사한 별당 건축 중에서도 가장 대표될 만한 정갈함과 균제감을 보여 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동춘당은 동춘당의 아버지인 송이창이 세웠으며, 당의 일부가 허물어지자 송준길 선생이 38세 되던 해(1643년)에 중건한 건물입니다.

건물 경내에는 어떠한 조경없이 담장 주변으로 몇 그루의 나무만 심어져 있는 간결한 구성을 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꾸미지 않은 모습이면서도 단아한 멋이 풍겨나는 이 별당 건물은 송준길 선생의 인품을 말해주는 또 하나의 증거라고 할 수 있지요.







동춘당은 온돌과 마루가 함께 구성되어 있는 건물입니다.

온돌이 있는 이 작은 공간에서 추운 겨울에도 주자나 이이의 학문을 연구하기에 여념이 없었을 듯 합니다.







온돌방 아래 뚫어진 이 구멍은 뭘까요?

아궁이처럼 보이지만 굴뚝이랍니다.

굴뚝이 건물 뒤쪽에 있지 않고 측면 방 아래 낮게 자리하고 있는 것이 특이하지요.

이것은 은폐를 통해 '따뜻한 온돌방'이라는 본능적 행위를 억제하고자 하는 유학적 덕목을 유지하려 했다는 것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낮은 굴뚝으로도 본래 기능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다는 기술적인 이해가 뒷받침 되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동춘 선생의 고택은 사랑채, 안채, 그리고 두 채의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지금 보이는 것은 안채 마당에서 바라본 사랑채와 내외담의 모습입니다.

이곳 고택의 사랑채는 송준길 선생의 명성에 비해 매우 협소한 편이라고 합니다.










사랑채 굴뚝에 어떤 그림이 그려져 있지요?

자세히 살펴보니  팔괘와 태극 문양이네요.

굴뚝에 그려진 팔괘태극도는 처음 보는 것 같아요.

언제 누군가에 의해 어떠한 의미로 조각된 것인지 참 궁금한 마음입니다.












송씨가묘의 모습입니다.
송씨가문 4대조의 신위를 모시는 곳이지요.







이곳은 별묘로서 동춘당 선생의 신위를 모신 곳입니다.








동춘당과 고택은 마치 고고한 선비의 자태와 같이 단아하며 품위가 있는 것이 자랑할 만한 부분입니다.

화려하지 않은 검소함과 자연과 동화하려는 공간의 심성이 잘 드러나는 건축물이라고 평하는데요,

송준길 선생의 소박하면서도 부드러운 인품 또한 건축물을 통해 우리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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