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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소식/이츠대전 소식지

[대전생활] 제4편, 20년전의 대전은 어떤모습이었을까? "만년교와 유성온천"





20년전의 대전은 어떤모습이었을까?
"만년교와 유성온천"








주말마다 아버지 손에 이끌려 목욕을 위해 유성온천을 다니던 습관은 어른이 된 지금도 여전합니다. 1번 버스를 타고 갈마고개를 너머 신신농장 산모퉁이를 돌아서면 나타나는 만년교. 그 다리를 건너야만 유성온천을 갈 수 있었습니다.

만년교는 갑천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로 1920년에 콘크리트로 건설된 이후 한국전쟁 때 폭격으로 파괴됐습니다. 이후 1954년 다시 목조로 만들어졌다가 1968년에 콘크리트로 재건됐고, 1993년 6월 길이 207.6m 폭 46m의 10차선 다리로 완공되어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습니다.

지난해 세워진 유래비에 '만년교(萬年橋)는 갑천의 옛 명칭 만년강(萬年江)에서 유래되었다'며 '한때 유성과 대전을 잇는 유일한 다리이고, 옛 국도 1호선을 연결하느 대교였다'고 적혀있습니다.

또 조선시대 이중환은 <택리지>에 만년(萬年)은 '영원하다'라는 뜻으로 '유성이 영원히 살기 좋은 곳'이라고 언급하면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살기 종은 충청도 공주 계촌(溪村)'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공주 계촌은 지금의 유성 갑천(甲川)입니다.




유성 온천관광지에는 유성호텔, 호텔리베라, 대온장 등 온천 숙박시설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개발된 것은 1990년 전후입니다. 1991년 흥인관광호텔, 호텔아드리아가 들어섰고, 1993년 대전엑스포 개최와 1994년 관광특구 지정으로 유성온천은 전국적인 온천 휴양지로 부각되었습니다. 1999년에는 호텔스파피아가 문을 열었고, 1980년부터 육군이 이용하던 국군 유성휴양소는 2000년 계룡스파텔로 탈바꿈하였습니다.

1999년부터 유성온천지구 내 유일하게미개발상태로 남아 있던 봉명지구가 개발에 들어갔습니다. 토지ㆍ건축주들과 마찰이 있었지만 2003년부터 본격적인 숙박시설이 들어서면서 현재와 같이 오피스텔고 상업시설들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다리를 사이에 두고 대전과 유성이라는 도시가 나뉘고 개발고 보존이라는 양립된 가치를 공유하는 만년교, 예나 지금이나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는 문명의 가교로 서남부권의 핵심통로로 귀중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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