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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일상/일상다반사

미세먼지 없는 날, 식장산에서 느리게 걷기

[그ː림] 겨울숲, 땅△식장산ⓒ 권순지

미세먼지가 분명 안 좋았는데 제법 깨끗하게 씻긴 것을 확인하곤 부리나케 산으로 달려갔어요. 식장산. 음 그러니까 진짜로 제 두발로 달려갔다는 것은 아니고요. 자동차의 힘을 빌렸죠. 지금 사는 동네에선 걸어갈 수 없는 거리거든요.

미세먼지 앱을 수시로 온오프 하며 체크하는 습관이 생긴지는 꽤 오래인 것 같아요. 어느 순간부터 육안으로 보이는 하늘과 공기를 믿지 않게 된 거죠. 믿을 수가 없어 기계의 힘을 빌립니다. 두발로 식장산까지 가는 것을 감당할 수 없어 자동차의 힘을 빌린 것처럼요.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것들에 의심이 가는 때가 있어요. 미세먼지의 경우가 그래요. 강박적으로 사는 일이 습관이 되었다니. 자주 피곤해지는 이유가 여기 또 있었군요.

언제 다시 나빠질지 모르는 공기를 나무들이 살아있는 자연 속에서 느끼기 위해 오후 느지막이 조금은 급하게 갔어요. 어느 날부터 식장산은 대전에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산이 됐어요. 세천공원 주차장에 주차한 뒤 정갈한 벤치에 앉아 잔디 빛 너른 공원 부지를 정면에 두고 지치지 않을 정도로 바라보는 것이 좋아서. 공원 부지를 가로질러 한 계단씩 올라가 마주하는 숲길이 너무도 아늑해서, 따뜻해서, 편안해서… 그리고 압도적이어서.

[그ː림] 겨울숲, 호수△식장산 ⓒ 권순지

자동차로 식장산 정상까지 올라가서 바람을 맞으며 눈 크게 뜨고 대전 경치를 내려다보는 것보다는, 아름다운 호수를 끼고 있어 한 번씩 고개를 돌리게 되는 투박한 등산로를 걷고 또 걷는 것이 좋아요. 겨울의 얼어붙은 호수는 바라보기만 해도 스산해지는 기분이 들었지만 신비로워서 꽤 얼마간 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려 멍하니 눈을 떼지 못했죠.

평일 늦은 오후엔 등산객이 거의 없었어요. 아주 가끔 마주치는 홀로, 혹은 둘셋의 등산객들도 대부분 고요히 스쳐 지나갔어요. 정말 고요했어요. 사람도 호수도 흙도. 다만 마른 이끼를 입은 나무뿌리 근처에 바람을 타고 이리저리 움직이는 잔가지들과 낙엽들만, 온전히 자기 몸이 내는 소리로 살아있는 존재임을 증명하는 한 무리의 새들만, 멈췄다 걷다가를 반복하는 늦은 오후 예민한 등산객의 번잡한 마음만 소리 낼뿐.

조금은 불안하고 답답한 겨울, 광활한 숲속 환기 덕분에 얼마간은 좀 괜찮을 거예요. 깨끗하고 더 차가워진 공기만큼은 그곳에서 온전히 다 가진 것 같았거든요.    

식장산은 충북 옥천군 군서면·군북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대전의 터줏산으로, 번화한 대전 시가지와 서쪽의 보문산 북쪽의 계족산을 내려다보고 있으며
동북쪽에 자리 잡은 대청호수의 아름다움을 한눈에 넣고 있다. 또한 멀리는 계룡산, 대둔산, 서대산과 마주하며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식장산의 높고 빼어난 산세는 신비로움마저 던져주고 그 골짜기 골짜기마다 희귀 식물과 숲이 울창하고 수많은 유적과 전설이 고이 간직되어 있다.
주변의 널린 기암괴석, 노송 고목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계곡 사이로 흐르는 맑은 물은 사계절 내내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아 대전 시민뿐만 아니라 인근 지역 주민들의 휴식처가 되어주고 있다.   -https://www.daejeon.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