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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일상/대전사람들

도어북스, 대전 원도심과 가장 잘 어울리는 독립 책방

동네 책방, 독립서점, 동네 서점. 붙여지는 이름도 다양하고, 그 공간 내 책들의 세계도 알록달록합니다. 책을 사려는 이들로 매일 문전성시까지는 아니더라도 각각의 책방이 지닌 정체성에 그곳을 찾는 이들이 분명 있습니다. 출판계가 불황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지역에 살아남아 있는 그 작은 공간들. 대전 곳곳에도 독립 책방이 있습니다. 공간을 수놓은 책들 속 내밀한 사연을 읽어내듯 들려주고 싶은 대전 독립 책방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인터뷰 기반의 연재기사입니다. -권순지     

ⓒ 도어북스

“저는 인생에서 단 한 번도 상승선을 탄 적이 없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제가 책방을 하게 된 시점부터는 저 스스로 계속 상승선이라고 느끼는 것 같아요.”      

ⓒ 도어북스

도어북스 대표 박지선 씨는 디자인 작업을 겸하며 책방을 운영합니다. 사람과 관계 맺는 것이 쉽진 않지만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 그는 책방이라는 공간을 매개로 관심 갖게 된 이들을 통해 새로운 자극과 에너지를 얻는다고 말했습니다.

“독립출판물 정말 사람 냄새난다.”며 조심스레 꺼낸 가물가물한 기억들은 전부 따뜻했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입고되는 다양한 독립출판물들은 하나같이 책이라는 물성을 넘어선 창작자의 정성이라고.  

ⓒ 도어북스

잡지사 디자이너로 일하다 퇴사 후 원도심 거리를 뒤져 도어북스가 있을만한 곳을 찾아냈고 이후 5년. 욕심 없이 유지해왔지만 요즘 한 가지 바라는 것이 있다면 파트너를 찾아 함께 일하는 것입니다. 회사 일에 치이며 일상에 의문을 제기하다 시작하게 된 책방 일은, 스스로 찾아내고 싶었던 의미 있는 일이자 가치 있다고 여기는 일이었습니다.      

ⓒ 도어북스

“그때는 독립출판물이 많지는 않았어요. 저는 서울뿐만이 아닌 지역 청년들도 자유로이 창작활동을 할 수 있으려면, 그런 창작활동을 지지해줄 수 있는 생각의 쉼 같은 곳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창작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친구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는 공간… 지역에서 독립출판물이 꾸준히 나오고, 또 이곳에 입고되는 타 지역의 다양한 독립출판물들을 통해서도 창작 아이디어를 교류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이 된다면 좋지 않을까.”    

ⓒ 도어북스

책방 공간 내부, 최적으로 노출될 수 있는 자리에 지역 청년들이 만든 잡지, 일러스트북 등이 놓여 있었습니다. 그건, 지역 창작자들을 위해 ‘독립출판’의 길을 열어보고자 했던 박지선 디자이너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풍경이었습니다. 

ⓒ 도어북스

꾸준히 들여다보고 싶은 곳. 흐름을 발 빠르게 뒤쫓지 않아도 진부하지 않은 곳. 도어북스의 존재로 인해 지나치기 쉽지 않았던 원도심 거리를 종종 걷게 되었습니다. 글을 쓰는 어떤 이는 원도심과 도어북스가 ‘결’이 같다고 표현하기도 하였습니다. 따뜻한 햇살을 그대로 받으며 걷다가 움츠러들었던 마음을 발칵 열고 들어가게 되는 그런 책방. 주춤하게 하는 겨울의 한기를 누르고 책방 문을 여는 순간 어떤 반가움이 닥칩니다. 

ⓒ 도어북스

반가움이라 하면 이런 것들입니다. 공간마다 어김없이 자리를 채운 책, 엽서, 그림, 사진, 포스터 등 종이로 창작할 수 있는 수많은 그것들. 바깥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고 여기게끔 하는 투명한 창, 다 채우지 않고 비워둔 너른 테이블. 매끄럽지 않은 콘크리트 벽까지도. 반가운 그것들을 마주하며 도어북스를 떠올리게 하는 그 ‘결’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았습니다.     

ⓒ 도어북스

찾아주는 사람들에 의해 계속 만들어지고 있는 공간이라며. 그 관계로 인한 온기가 공간을 채우는 중요한 힘이라고. 오랜 단골이자 책방 인턴을 했던 어떤 이는 도어북스만의 그 결에 대해 ‘편안함’이라고 말했습니다. 편안함. 낯선 곳에서 신경 곤두세우고 있다가 책방에 와 안도하며 책장을 넘겨보는 그 순간이 좋은, 그런 공간이라고 말이죠. 

ⓒ 도어북스

출산 후 육아와 병행해야 하는 책방 일이 버거워 금, 토만 운영하던 와중에 반가운 일도 있었습니다. 책방 단골이었던 수능을 마친 고등학생이 도어북스에서 책방 일을 경험해보고 싶다며 찾아왔고, 2월 한 달간 박지선 디자이너가 나오지 못하는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공간을 지키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뜻하지 않게 생긴 감사한 제의는 도어북스가 올해 시도하게 될 운영 계획에도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었습니다. 공간을 찾는 사람들에 대한 도어북스만의 감수성을 살려 공개 모집한 셀렉터를 통해 매달 입고될 책 일부를 선정하고, 참여한 셀렉터에게는 책을 선물하는 기획이 예정되어 있다는데요. 참여형 북 큐레이션은 도어북스가 원했던 파트너. 그러니까 좀 더 새로운 형태의 파트너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볼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도어북스

디자이너로서 디자인적으로도 충실한 독립출판물들을 눈여겨보고 있다는데요. 조금은 정체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지금보다, 훨씬 더 다양하고 특별한 독립출판물을 찾아내어 공간에 들이고 싶다는 바람도 전했습니다.

알려지지 않은 창작자들의 고충을 별것 아닌 일로 치부하지 않는 그런 사려 깊은 사람이 운영하기에 가능한 것. 이미 성큼 다가온 것 같았습니다. 독립 창작자들과 도어북스의 조금 더 따뜻한 미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