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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일상/대전사람들

흙을 빚는 사람들, 토사랑 회원전에 담긴 따뜻한 사연

 

 

"두 딸이 시집갈 때, 내가 만든 그릇을 보내고 싶어서 배우기 시작했어요. 그게 벌써 5년이 되었네요."

 

괜히 샘이 났습니다. 이렇게 사랑받는 두 딸은 정말 행복하겠죠? 이제 스무살이 갓 넘었다는데, 언젠가 품에서 떠날 그녀들을 위해 오랫동안 준비하고 있는 이경미 작가 이야기를 듣다보니 십 수 년 전의 일이 떠올랐습니다.

 

결혼식을 앞두면 이것저것 장만해야 할 것이 많잖아요. 그릇을 보러 가기로 한 , 엄마는 바쁘다고 가버리시고 구원투수처럼 등장한 막내이모와 쇼핑을 했습니다. 그날 이모로부터 선물받은 깨지지 않는 아름다운 그릇 세트는, 오늘도 저희집 식탁에 올랐네요. 광고에는 막 떨어뜨려도 깨지지 않던데, 제 설거지 실력이 아주 험한 지, 4인조 세트가 2인조만큼 남았지만요. 

 

 

신효정 작가의 [Home Cafe] 중신효정 작가의 [Home Cafe] 중

 

 

대전시청 1층에 있는 아늑한 전시공간, 이 곳에서 지난 12일부터 엿새동안 '흙을 빚는 사람들, 토사랑 회원전'이 열렸습니다. 

 

 

 

 

어떻게 하면 사진에 작품을 잘 담아낼까 고군분투하고 있을 때, 이경미 작가가 먼저 다가와 주었습니다. 5년동안 배우고 있지만, 제일 못해서 제일 처음에 작품을 놓았다면서 환하게 웃으시네요.

 

쉰이 되고 보니, 학창시절을 보낸 교정에는 늘 등나무가 있었던 게 떠올랐대요. 그래서 그 추억을 담아 화분도 만들고 그릇도 만들었다네요. 색색이 풀꽃이 그려진 그릇은 언니네 다섯 가족에게 줄 선물이래요. 이경미 작가가 그릇을 빚고 딸이 풀꽃 그림을 그렸는데, 막상 다 만들고 보니 아직은 보내고 싶지 않아서 고민이래요. 그래서 마음의 준비가 될 때까지 언니에게는 완성하지 못한 걸로.

 

 

 

 

이 접시형 벽걸이 작품은 부부 작가의 손에서 나왔습니다. 남편이신 김성장 작가는 국어선생님으로 퇴직하고 지금은 붓글씨를 쓰신대요. 아내이신 김필선 작가는 미술선생님으로 근무하면서 그림을 그리시고요. 아내가 그림을 그리면 남편이 글을 쓴다니, 작품들만큼이나 참 아름답게 나이들어 가는 분들입니다.

 

벽걸이 작품들 사이에는 작품 '솟대'도 있었는데요. 솟대는 나무나 돌로 만든 새를 긴 장대나 긴 돌 위에 얹은 마을의 수호신이지요. 그래서 전시실 입구에 서서, 이 곳에 들어오는 액은 막고 좋은 기운을 모으고 있나 봅니다.

 

 

박대우 작가의 [행복이 찾아온다]박대우 작가의 [행복이 찾아온다]

 

 

흙사랑 토우회는 충북 영동에 있는 공방이래요. 회원들 모두는 대전에 살면서 흙이 좋고 그릇이 좋아서 영동으로 열심히 오가신답니다. 신효정 작가는 영동이 감으로 유명한 곳이라, 감을 주제로 한 다기 세트를 만들었대요. 전국대회에 처음 출품한 작품인데, 좋은 성과를 얻었다지요.

 

당시에는 물레로 만든 작품들이 대부분이라 꼭지부터 열매, 잎까지 하나하나 손으로 조물조물 만든 작품이 눈에 들어 수상한 것 같다며 겸손하게 이야기합니다. 이경미 작가가 귀뜸하기를, 솟대를 만든 박대우 작가와 신효정 작가는 부부시래요. 신 작가의 언니가 수녀가 되면서, 둘째 딸마저 평생 혼자 살까봐 부모님께서 무척 걱정하셨대요. 그래서 흙 빚은 총각에게 자꾸 그릇 심부름을 보내셨다지요. 그렇게 정이 쌓인 두 분이, 지금은 부부가 되어 이 공방을 운영하고 계시답니다. 특히 신효정 작가는 그림을 먼저 배우고 조형을 배워서, 표현이 더 세밀하고 예쁘대요.

 

 

신효정 작가의 [Home Cafe] 중신효정 작가의 [Home Cafe] 중

 

 

이 곳의 작품들이 더욱 빛날 수 있었던 건 바로 이 분의 손자수 면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박형자 작가는 본인 작품 뿐만 아니라 다른 작가들의 모든 작품들마다, 그 분위기에 딱 맞는 손자수 면보를 만들어 오셨대요. 그 마음 씀씀이, 참 곱지요?

 

 

박형자 작가의 [차 한 잔의 여유] 중박형자 작가의 [차 한 잔의 여유] 중

 

 

그림에 조각에 분청에 투각에…. 저는 하나도 어려운데 열심히 배운 솜씨를 풀어낸 박정진 작가의 작품들입니다.

 

 

박정진 작가의 [여인의 향기]박정진 작가의 [여인의 향기]

 

 

황영옥 작가는 사랑받는 분입니다. 맨 처음 만들었던 그릇이 주전자와 잔이었대요. 처음이다보니, 주전자 몸체와 뚜껑이 서로 맞물리지 않는대요. 그럼에도 바깥분은, 물을 마실 때도 주스를 마실 때도 우유를 마실 때도 꼭 이 주전자에 부어서 이 잔에 따라 마시길 고집하신대요. 이제는 솜씨가 좋아져서 더 예쁜 주전자와 잔을 만들었는데도 늘 첫 작품만을 찾으신다니,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이 그대로 전해집니다.

 

 

황영옥 작가의 [행복한 시간] 중황영옥 작가의 [행복한 시간] 중

 

 

이태훈 작가는 그동안 딸에게 주는 선물을 만드셨대요. 같은 흙으로 빚었어도 유약을 한 번에 입히는지, 한 줄 한 줄 붓으로 바르는지에 따라서도 느낌이 다릅니다. 거친 질감의 어두운 흙 위에는 분청이라 하여 하얀 흙물을 얇게 바르고 조금씩 긁어내면서 형태를 만들기도 한대요. 아, 저는 설명만 들어도 지난한데 얇게 얇게 긁어내는 일이 즐겁다고 하세요. 딸에게 줄 선물이라 오롯이 기쁜 마음으로 작업에 임하실 수 있었나 봅니다.

 

 

이태훈 작가의 [딸에게 주는 선물] 중이태훈 작가의 [딸에게 주는 선물] 중

 

 

곽정순 작가는 제주도를 사랑하는 분입니다. '혼자 왕 먹읍서(어서 와서 드십시오)!', '좋은데 마씀(좋습니다)!' 그릇마다  새겨진 제주 방언이 정겹습니다.

 

 

곽정순 작가의 [올레길 이야기]곽정순 작가의 [올레길 이야기]

 

 

이재영 작가는 장애가 있어서 입으로 그림을 그리는 서양화가시래요. 그래서 이번 작품은 타일을 스케치북 삼아 꿈에서 본 장면을 그려냈지만, 언젠가는 그 형상을 입체로 구현해 내는 것이 다음 목표랍니다.

 

 

이재영 작가의 [혼(魂) 2014] 중이재영 작가의 [혼(魂) 2014] 중

 

 

은퇴한 지금은 글을 쓰고 그릇을 만들어 지인들에게 선물하는 것이 낙이라는 김창수 작가의 작품입니다. 웃는 얼굴 붓통하며 물고기 연적, 멋들어진 전각을 볼 수 있었죠.

 

 

김창수 작가의 [얼굴 하나]김창수 작가의 [얼굴 하나]

 

 

한국화를 전공하고 지금은 그림책 작가의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박수경 작가의 작품입니다. 꼬마돼지 뚜뚜를 조만간 서점에서 만나길 기대합니다. 인간에게는 화폐인 만원권이 강아지에게는 이불이 되고, 메뚜기에게는 배가 되는 4컷 이야기 그림도 아기자기 했지요.

 

 

박수경 작가의 [뚜뚜] 중박수경 작가의 [뚜뚜] 중

 

 

대전시청 전시실 대관은 무료랍니다.시민을 위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니, 참 좋죠? 전시실 사용 신청을 하면 연초에 제비뽑기로 결정한답니다. 대신 경쟁이 치열하여, 토사랑도 3년동안 도전하였고 이번에도 대기 순번이었다가 운 좋게 당첨되었다네요.

 

이 곳 대전시청 전시실에 가끔 들러 잠시 머무를 때마다 다짐합니다. 언제가 저도 그릇을 빚으며 그림을 그리며 아름답게 나이들어 가겠노라고. 일상에서 예술을 실천하는 모든 분들,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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