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국가지정문화재에는 국보·보물·국가무형문화재·사적·명승·천연기념물·중요민속문화재가 있는데요. 형태가 없는 무형문화재와는 달리 유형문화재(有形文化財)는 건조물·회화·조각·공예품·서적·서예 등과 같이 일정한 형태를 갖추고 있는 것으로 역사적·예술적 가치가 높은 것을 말합니다.
유형문화재 가운데 중요한 것은 보물로 지정하고요. 보물 가운데 더욱 높은 가치를 지닌 것을 국보로 지정합니다. 대한민국의 국보 제1호는 숭례문(1962년 12월 20일 지정), 보물 제1호는 흥인지문(1963년 1월 21일 지정)이 있지요. 그리고 각 지차체별로 유형문화재를 지정하고 있습니다.
대전시의 유형문화재(大田廣域市 有形文化財)는 유형문화재 중에서 대전시 내에 있는 문화재를 의미합니다. 대전시의 유형문화재는 1989년 3월 18일에 처음 16건이 지정되었는데요.
유형문화재 제1호는 송자대전판(宋子大全板) (대전시 동구 우암사적공원), 유형문화재 제16호 농암진적(農巖眞蹟) (대전시 대덕구 관리자 김영한)입니다. 또 2014년 5월 2일에 제53호 보현사 목조여래좌상(普賢寺 木造如來坐像) (대전시 동구 비룡동 산17번지 관리자 보현사 이열호)이 지정됐습니다.
이 중에 제30호 비래사목조비로자나불좌상(飛來寺木造毘盧遮那佛坐像) (대전시 대덕구 비래골길 47-74 비래사)이 2001년 6월 27일 지정되었다가 2014년 7월 2일 해제되어 보물 1829호로 승격되었지요. 그래서 대전시 유형문화재는 현재 52건이 있습니다.
대전시 유형문화재 제1호 송자대전판, 제4호 남간정사(지정, 등록일 1989년 3월 18일)가 있는 대전시 동구 충정로 53 (가양동) 우암사적공원을 찾아 보았어요.
정문 윗쪽에 주차장에서 바로 쪽문 계단으로 올라가면 우암사적공원관리소가 있고 우측에 송자대전판이 보관되어 있는 장판각이 있지요.
송자대전판은 우암 송시열(1607~1689) 선생의 글과 일대기 등을 모아 놓은 송자대전의 목판으로 총 11,023판 5,151매입니다.
『우암문집』의 초판은 숙종 43년(1717)에 민진후가 임금의 명을 받아 교서관에서 금속활자로 간행됐는데요. 그 후 정조 즉위 초에 전서간행의 어명이 떨어져 글을 수집하였고, 옛 책과 합쳐 그 목판본이 정조 11년(1787)에 평안감영에서 책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첫 권과 연보는 서울의 교정소에서 별도로 간행되었고요. 총 215권 102책의 전서(全書)를 완성하여 『송자대전』이라 이름하였다네요.
송자대전목판은 순조 19년(1819)에 장판각을 지어 보관하였으나 순종 원년(1907) 장판각의 화재 때 불에 타서 없어지고 지금 남아 있는 판목은 1929년 선생의 후손과 유림들이 남간정사에서 다시 판각한 것으로 이 때 『송서습유』4책과 『속습유』2책을 함께 간행함으로써 『송자대전』은 총 108책에 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우암사적공원 정문으로 들어가서 좌측 쪽문으로 들어가면 기국정과 남간정사가 있고요. 뒷편 언덕에는 후대에 지은 사당인 남간사가 있지요. 금년 4월에 담은 남간정사 주변에 봄 벚꽃도 참 예쁘지요.
낮은 야산 기슭 숲이 우거진 골짜기에 자리하고 있는 대전시 유형문화재 제4호 남간정사 (南澗精舍).
‘남간’은 주자의 시구 ‘운곡남간’(雲谷南澗)에서 빌려온 말로 볕바른 곳에 졸졸 흐르는 개울을 뜻한다고합니다. 조선 중기의 대학자인 우암 송시열(1607∼1689)이 지은 것으로 우암은 소제동에 살 때 서재를 짓고 능인암이라 하여 학문을 연마한 곳이라고 합니다. 숙종 9년(1683) 능인암 아래에 이 건물을 지었는데, 많은 제자를 기르고 그의 학문을 대성한 유서깊은 곳입니다.
남간정사는 앞면 4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으로 2칸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왼편은 앞뒤 통칸의 온돌방을 들였고요. 오른편 뒷쪽 1칸은 방으로 하고 앞쪽 1칸은 마루보다 높은 누를 만들어 아래에 아궁이를 설치했습니다. 특히 계곡의 샘에서 내려오는 물이 대청 밑을 통하여 연못으로 흘러가도록 하였는데, 이는 우리나라 조경사에서도 매우 중요하고 독특한 양식이라고 합니다.
남간정사 앞에는 잘 가꾸어진 넓은 연못이 있는데 봄이 되면 새햐얀 벚꽃잎이, 여름에는 배롱나무꽃잎이 떨어져 운치를 더하고 있지요.
남간정사 앞쪽에는 일제시대에 소제동에서 옮겨 지은 아직 비지정문화재인 기국정이 있지요. 기국정은 조선 효종 5년(1654)에 우암 송시열(1606~1689) 선생이 벼슬을 사양하고 소제동에 와 있으면서 소제방죽을 쌓고 그 연못가에 세운 건물인데요. 주변에 구기자와 국화가 무성하여 ‘기’자와 ‘국’자를 모아 기국정이라 부르게 되었고 기문은 회곡 신유가 지었습니다.
정자는 본래 초가지붕이었으나 선생의 장손 은석이 기와지붕으로 수리하였으며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기와집입니다. 그후 소제동 연못이 매몰되어 이곳으로 이전하였답니다.
조선 후기 이 땅에 유교사상을 꽃피운 우암 송시열 선생의 뜻을 기리고 보존하기 위해 조성된 우암사적공원은 조선 후기 대유학자인 우암 송시열 선생이 학문을 닦던 곳인데요. 1991년부터 1997년까지 1만 6천여 평에 서원 등의 건물을 재현해 1998년 4월 17일 우암사적공원으로 조성하였지요.
이곳에는 선생이 말년에 제자를 가르치고 학문에 정진하던 남간정사, 건축미가 뛰어난 기국정, 송시열 문집인 송자대전판 등 역사적으로 중요한 문화재가 보전되어 있는 장판각이 있습니다.
우암선생의 유물과 일생을 살펴볼 수 있는 유물관과 홍살문을 지나서 명정문(明正門)으로 올라가면 조선시대 서원의 형태를 재현해 놓은 곳이 있는데요. 우측에는 모든 괴로움을 참아야 한다는 뜻의 인함각(忍含閣), 좌측에는 모든 일을 명확하게 하고 마음을 맑게 하라는 뜻을 담은 명숙각(明淑閣), 정면에는 마음을 곧게 쓰라는 뜻의 강당인 이직당(以直堂)이 자하고 있어요.
그 뒤로 매사 심사숙고하여 결정하라는 뜻의 심결재(審決齋)와 선현의 가르침을 굳게 지키라는 견뢰재(堅牢齋)가 있으며, 가장 높은 곳에 새로 옮겨 지은 남간사가 자리잡고 있지요. 남간사에서는 봄과 가을에 우암 선생의 제향 봉행이 이루어지고 있지요.
그리고 명정문을 나와서 우측으로 돌아올라가면 덕포루(德布樓)와 수련꽃이 피어있는 연못이 한 폭의 그림 같이 아름답지요.
문의및안내 : 우암사적공원관리소 042-673-9286
문화관광해설사 해설 및 통역신청 대전시관광협회 042-226-8413,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