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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일상/대전사람들

대덕특구 과학동네 사람들(1) 한국 원자력의 아버지, 장인순 박사를 만나다

 

제가 어렸을 때는 그랬습니다.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너는 커서 뭐가 될래~?" 하고 물어보면 돌아오는 대답의 절반 이상은 "과학자요!" 였습니다.

지금의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세상이 많이 변했지요. 우리 삶의 모습이 달라진 데에는 과학과 산업기술의 발전이 토대가 되었는데 말이죠.

모두가 어려웠던 시절,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열심히 살던 사람들 중에는 척박했던 우리나라 과학의 기반을 세우고자 밤낮없이 연구실의 불을 밝혔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과학동네 대덕특구 사람들입니다.

 

 

장인순 박사. 우리나라 원자력의 살아있는 역사로 통하는 1세대 원로과학자입니다. 1940년 출생, 여수고등학교와 고려대를 거처 캐나다와 미국에서 화학을 공부했고 연구원으로 재직중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의 '재미 과학자 유치프로젝트'에 따라 나라의 부름을 받고 귀국했습니다.

당시 과학자들 중에는 장인순 박사처럼 나라의 과학기술발전에 이바지하겠다는 각오로 선진국의 보장된 생활을 접으며 귀국을 결심한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고국의 현실은 녹록치 않았습니다.

"대전에 내려와 보니까 말야.  허허 벌판에 연구소라고 건물만 덩그라니 있는데, 실험실이라고 들어가보니 아무것도 없는 거야. 테이블도 하나 없어. 깜짝 놀랬지. 뭘 갖고 연구를 하라고. 황당하고 막막하더라고. 그래도 일단은 뭐라도 하자 싶어 사과상자를 갖다 놓고 그 위에 실험도구를 올려서 일을 시작했다고"

 

 

 

사과 궤짝 위에서 시작한 연구는 이제 원전기술 95%이상의 자립도를 갖출  만큼 성장했습니다. 그동안 치러야 했던 수많은 도전과 실패, 위기와 성공들…. 그 세월을 보내는 동안 어느새 머리카락은 새하얗게 변해 버렸습니다. 

 

 

올해 70대 중반의 나이가 된 장인순 박사. 하지만 학문에 대한 박사의 열정은 아직도 진행형입니다. 2005년 원자력연구소장으로 퇴임한 뒤 현직에서 물러난 지 10년도 넘었지만 그는 여전히 매일 아침 9시면 관평동에 따로 마련한 자신의 연구실로 출근합니다. 

 

 

작지 않은 연구실 공간에 책이 가득합니다. 흡사 도서관처럼 장르와 카테고리를 분류해 놓았는데 그 범위가 모든 학문을 넘나듭니다. 수학 과학은 물론이고 인문 사회 철학 문학 도서관, 그 많은 책들에 대한 책, 독서 분야까지…. '독서와 여성이 우리의 미래를 만든다'고 선언하는 이분, 참 매력 있습니다.

 

 

장인순 박사는 가끔 이런 기도를 한답니다.

"하나님, 제가 죽을 때까지는 책을 볼 수 있도록 제 눈을 좀 잘 지켜주세요."

젊은 시절에는 자기 세계만 인정하는 과학자였을지도 모르지만, 나이가 들고 보다 넓게 세상을 돌아볼 수 있는 안목이 생기면서 학문의 통섭이 필요하다는 것을 때닫게 되었다는 장인순 박사.

 

 

'모든 학문은 홀로 설 수 없다. 반드시 다른 학문의 도움과 지원을 받아야만 완전한 학문이 될 수 있다. 학문만이 아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통섭은 반드시 필요하다'

장인순 박사가 그의 에세이에서 밝힌 삶의 지혜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장인순 박사의 하루 일과를 들어보면 저절로  반성을 하게 됩니다. 그의 자명종이 울리는 시각은 새벽 4시 42분. 매일 아침 그 시각에 일어나 운동을 합니다. 전에는 수영을 즐겼으나 지금은 달리기를 합니다.

아침 운동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날이 더우나 추우나 11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하고 있는 일입니다. 좀 편하게 쉬고 싶은 날은 없느냐고, 꼭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지 않느냐는 저의 우문. 그리고 장인순 박사의 현답.

"11년간 지켜온 나만의 기록을 깨기가 싫어. 시간이 너무나 아깝잖아. 아마 나보다 몇년 더 산 선배라 할 지라도 내가 눈 뜨고 산 시간은 그분들보다 많을 거야"

물리학의 상대성 이론은 사람과 시간에도 적용된다고 합니다. 열심히 사는 사람에게 시간은 농밀하고 천천히 흘러가며 그만큼 더 많은 일을 하고 더 많은 것을 경험하기에 훨씬 더 긴 삶을 살 수 있다는 이분. 과학의 이론과 삶이 일치하는 모습에 새삼 놀랍습니다. 

 

 

그래서 장인순 박사의 하루 하루는 여느 젊은 사람 못지 않게 왕성합니다. 대덕의 과학문화를 대중과 연결하기 위한 커뮤니티 '벽돌 한장'의 주축으로 활동중이구요,

 


방송과 신문 등 언론과의
인터뷰도 끊임 없습니다. 대전챔버오케스트라 창단멤버이기도 하답니다. 연구실의 화분들도 싱싱하고 탐스럽게 자랄 수 있도록 잘 보살피고, 떨어진 꽃잎도 아름답게 추억할 줄 아는 감성을 간직하고 계십니다.

아름다운 청춘이란 지성과 감성과 열정이 생동하는 상태라면 이분은 분명, 아직도 아름다운 청춘입니다. 

 

 

과학자로서 뿐만 아니라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아온 한 인간으로서 후배나 학생들을 위한 멘토링에도 시간을  아낌없이 내어주십니다. 본인의 멘토링으로 인생이 달라진 학생도 꽤 된다고 뿌듯해하십니다. 멘토링이 성공적이었던 이유는 무엇보다도 장박사가 살아가는 모습 그 자체가 깊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분이기 때문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분들의 이야기야말로 우리가 들어야 할 살아있는 이야기, 본받을 수 있는 참 어른의 이야기가 아닐까요. 박사님을 만나며 깨달음의 손뼉을 치게 했던 말씀들을 제가 다 담아내지 못해 안타깝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박사님이 직접 기록한 에세이 '상상력은 우주를 품고도 남는다'가 출간되어 있으니 일독을 권합니다. 과학자로서 풀어내는 과학적 개념이 삶의 언어와 함께 녹아 있고 인간으로서 겪어온 생생한 휴먼드라마도 만날 수 있을 겁니다.

 

 

"시간이 없다. 하루하루가 너무나 소중하다"는 장인순 박사. 그 말씀 하실 때의 진심과 간절함이 전해옵니다. 원자력발전과 같은 뜨거운 에너지는, 그의 가슴에도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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