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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문화/전시ㆍ강연

대전시민대학에서 만난 배우 안성기

 


대전시민대학에서 만난 배우 안성기

대전평생교육진흥원 연합교양대학 대학별 강좌

2015.4.23. 오후4-6시 / 대전시민대학 단재홀




대전평생교육진흥원에서 운영하는 강좌 중에는

대전시민대학의 천 여개 강좌도 있고, 고전인문특강, 인문학살롱 등 인문학 강좌도 있고,

그리고 대학생들의 학점 강좌로 운영되는 연합교양대학이 있습니다.

대전 시내 10개 대학의 합동 강좌로 마련된 연합교양대학은 매주 화요일과 수요일, 

오후 4~5시40분까지 진행되고 일반 시민도 별도의 신청없이 청강할 수 있습니다.


또한 대학별 강좌로 마련된 연합교양대학 강좌 있는데, 

대학생들만을 위한 학점 강좌로 

그 중 한남대학교에서 개설한 강좌인 [함께 사는 아시아 공동체]라는 주제의 강좌에서

이번에 특별 강사로 배우 안성기를 초대하면서

일반 시민에게까지 청강이 가능하도록 단재홀에서 개최하였습니다. 





원래 대학생들만을 위한 학점 강좌여서 대중에게 홍보가 별로 되지 않았고,

일반 시민에게 청강을 허락하여 공고가 난 것도 얼마되지 않아서

기대했던 것만큼 많은 시민이 오지는 않았습니다만,

너무 붐비지 않아서 오히려 집중하기 좋았다고 할까요? 강연 시작 30분 전의 단재홀 상황입니다.





배우 안성기 님에 도착하여 단재관 1층에서 대전평생교육진흥원 연규문 원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저는 대전평생교육진흥원 명예기자로서 들어가

가까이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ㅋ


 



아역으로 연기자 생활을 시작하여 중학교 다닐 때까지 배우를 하였고,

고등학교, 대학교, 군복무 등 기간을 지나 나중에 취직이 안되어 다시 연기자의 길로 들어섰다나요~

취직이 금방 되었더라면 우리에게는 안성기라는 배우를 만날 기회가 없었을 지도 모르죠. 

취직이 안되던 2년 동안 '집에 있되 없는 것처럼 행동하자'라는 모토를 가진 백수로,

그리고 조역으로 조금씩 출연하던 2년 까지 합하여 4년 동안 시간표를 짜서 알차게 생활했답니다.


운동을 매일매일 빠지지 않고 열심히 하였고, 밤에는 시나리오를 직접 썼는데,

이렇게 시나리오를 쓰면서 보낸 준비기간이 있었기에 후에 영화에서 주요 배역을 맡을 때마다

감독의 입장에서 생각할 즐 알게되어 감독과 시나리오를 상의할 수 있는 배우가 되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교훈 한마디~날려주었습니다~^^

[기회가 올 때 달려들 수 있도록 쉬는 기간에도 준비하자]




오늘 강의 주제는 [영화로 보는 우리 사회]였고,

1952년 1월1일에 출생하여 1957년 6살때 아역으로 데뷔를 하였으니,

말 그대로 광복 후 대한민국 영화의 산 역사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동안 찍은 영화가 70여 편인데, 예전에는 필름 보존에 대한 개념이 없어서 30여 편은 사라지고

1976년부터 필름 보존을 시작하여 현재 출연작 중 40여 편 정도 남아있다고 합니다.




6.25 한국 전쟁이 진행되던 1952년에 출생하여 광복 후 대한민국 영화의 산 역사다 보니

정신없이 휩쓸려 돌아가던 한국 사회에서 검열 받던 군부 독재시대의 영화인으로도 살고,

1980년 대, 민주화를 바라는 열망 속에 영화도 사회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였고,

1990년 대 들어서서 영세한 영화 자본에 대기업이 뛰어들면서 소재가 다양해지고 영화가 대규모 산업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2000년 대에는 드디어 한국 영화가 세계 무대에 등장하기 시작하여,

임권택, 이창동, 박찬욱, 김기덕, 홍상수, 봉준호 감독 등

세계 영화 시장에서도 그들의 다음 작품을 기다리는 그런 날이 되었습니다.

[올드 보이]는, 세계 100대 영화로도 꼽히는 작품이라고 합니다~!




1978년(27세)에 재데뷔하여 4편의 영화를 찍었는데, '병사와 아가씨들'(계몽), 여성영화 2편의 조역,

그리고 '제3공작'은 반공영화였다고 합니다.


이렇듯 1970년대 영화는 반공, 계몽, 연애 위주의 영화로 관객의 반응이 적었는데,

1980년 5.18 민주화 운동 시기, 이장호 감독이 빈부차를 그린 영화 [바람불어 좋은 날]에서

덕배역할을 맡아 대종상 영화제에서 신인상을 받았고,

일본에서는 '코리안 뉴웨이브'라고 평가했다네요~!


당시 검열이 심하던 시기에 영화 대사 중 '2년 동안 누구에겐가 계속 맞아온 느낌' 같은 강렬한 대사로 들어갔고, 

도시빈민층 이야기로 150씬 중에 80여 씬이 수정 삭제당하여 아름다운 사랑영화로 변질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이후 이원세 감독은 이민을 떠났다고 합니다. 

영화가 수용되는 선까지만 사회가 받아들이는 시대였다고요... 




1980년대 [칠수와 만수]는 연좌제를 다룬 영화였고, [남부군]은 북한군이 주인공인 빨치산 이야기로,

이 영화 촬영 후 정지용 감독의 영화사는 없어졌다고 하네요...

1990년 대 사회의 민주화, 그리고 영화산업의 자본화로 영화가 다양해지면서

[투캅스] 이후 주연이 아닌 의미있고 존재감있는 조연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1992년 개봉된 정지용  감독의[하얀전쟁]은 베트남 전쟁을 반전의 시각에서 다룬 영화로

베트남과 국교를 트기 전에 베트남 100% 현지 로케로 촬영을 하였고 도쿄영화상을 수상하였는데,

개봉하던 1992년 말에 대한민국과 베트남은 국교를 수립하였습니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8)는 이병세 감독의 영화로 국제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았고,

박중훈은 이 영화로 헐리웃에 진출하였고, 장동건은 이 영화 촬영 이후 영화에 눈을 떠

그 후 비중있는 영화를 촬영하였다고 합니다.

배우 안성기에게는 '비중은 적어도 존재감있는 배우'로 출연한 첫번 째 영화라고 합니다.




2000년대의 영화는 세계 속으로 한국영화 시기인데,

임권택, 이창동, 박찬욱, 김기덕, 홍상수, 봉준호 감독 등 주목을 받는 감독들이 줄줄이 있었고,

영화 [실미도]로 관객이 드디어 천만을 돌파하는 기록을 세웠는데요~!


엄청난 기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워낙 대형 영화 전성기라서 이 기록은 두 달만에

[태극기 휘날리며]로 관객 수에 밀리게 되었답니다. 

그러나, 이후 관객수에 집중하다보니 관객이 들 만한 영화를 하려고 하여

영화 다양성 면에서는 문제가 있기도 합답니다.




중국 현지에서 5개월동안 갖은 고생을 다하며 찍은 영화 [무사] 주진모, 정우성, 안성기, 유해진,

그리고 중국 여배우 장쯔이가 출연한 영화로, 당시에는 장쯔이가 출연한

[와호장룡]이 개봉 전인 신인이었다고 합니다~^^


두 편으로 나눠도 될만한 대작으로 2001년 9월8일에 개봉을 하였는데...

사흘 뒤 미국의 9.11 테러로 인하여 영화계의 빙하시대가 되고 말았답니다... 

미국의 9.11 테러를 한 자들은 한국 영화계에도 테러를 가했다고요~




몇가지 질의응답하는 시간도 가졌는데요, 아끼는 영화인데 흥행이 안되어 아쉬운 영화로,

 [개그맨-이명세 감독 데뷔영화], [안녕하세요 하느님-배창호 감독], [남자는 괴로워-이명세 감독],

[축제-임권택 감독], [킬리만자로-오승욱 감독 데뷔작], [영원한 제국-박종원 감독]을 꼽았는데요,

반은 본 것이고 반은 보지 못했는데, 기회가 되는대로 찾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찍은 영화 80여 편 중 40편 정도는 관객의 호응을 얻었고,

25편 정도는 무승부, 15편 정도는 패한 영화라고 자신의 영화 인생을 평하였습니다.

중국이나 인도처럼 영화 비개방 시장을 제외하고, 한국이 자국의 영화를 보는 비율이 50% 정도로

가장 높은 나라로 꼽히고 있다네요.

프랑스가 30%, 일본이 포르노 영화까지 포함하여 30% 수준이라고도 하고요.





강의 끝나고 인터뷰도 있었고,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팬이 준비해 온 최근 출연 영화 [화장]의 장면 위에 싸인도 하였습니다.

'국민배우'라는 명칭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배우 안성기로부터

한국 영화와 얽힌 현대사를 훑어보는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