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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여행/역사유적

신채호선생의 생가

 

 

 

신채호선생의 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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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광역시 중구 어남동에 위치한  신채호선생의 생가는

대전광역시기념물 제26호로 지정되었습니다.

 

1992년 여름 생가 터에 대한 발굴조사와 주민들의 고증을 토대로여

신채호의 생가가 복원되었답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면 만나게 되는

단재재입니다.

지금은 신채호생가를 관리하는 곳으로 사용되는 듯 하네요.

은행나무가 노오랗게 물이 들면

참 아름답겠지요.

 

 

 

그 옆의 쉼터

그늘이 져 쉬기 참 좋네요.

 

 

 

 

잔디 깎은지 얼마 안 되었나봅니다.

걸을때마다 풀 냄새가 코 끝을 스치니

기분이 참 좋네요.

 

 

 

잘 다듬어진 공원입니다.

 

 

 

이 곳 벤치도

나무가 그늘을 만들어 주네요.

 

 

 

천이 흐르는 또랑일텐데

물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고보니

비가 내린지 한참이 되었군요.

 

 

 

잘 다듬어진 잔디너머로

신채호 생가가 한 눈에 보입니다.

 

 

 

생가 옆으로 신채호선생의 동상이 우뚝 서 있네요.

신채호는 사학자·언론인이며 항일독립운동가로

1880년 12월 8일 지금의 도리미 마을에서 신광식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한일합방이 되던 1910년 망명길에 올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독립운동에 투신하였습니다.

1928년 대만에서 일본경찰에게 체포되어

뤼순감옥의 독방에 수감되어 복역하던 중

1936년  57세의 나이로 순국하였습니다. 

 

 

 

그는 이곳에서 아버지가 죽은 8살 때까지 살았답니다.

참 아담한 집입니다.

 

 

 

 

헛간

 

 

 

각 방마다

마네킹으로 재현을 해 놓았네요.

유리로 막아 놓아

빛 반사때문에 제대로 보기가 어렵더군요.

 

 

 

뒷켠엔 장독대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장독대를 보면

왜 그리 마음이 포근한지요....

 

 

 

굴뚝도 보이구요.

 

 

 

아버지가 죽고 난 후

할아버지가 사는 충청북도 청원군 낭성면 귀래리 고두미 마을로 옮겨갔다고 합니다.

그는 그곳에서 10년 동안 할아버지가 차린 서당에서 한문을 공부를 한 후

19세 때 성균관에 입학하여

26세에 성균관 박사가 되었습니다.

 

 

 

신채호생가를 나와서

근처를 산책해 봅니다.

 

 

 

생가 조금 옆으로

편히 쉴 수 있는 초가정도 있답니다.

 

 

 

 

예전에는 난간이 없는 나무다리가 있었습니다.

그 때 봐도 위태 위태했는데

오래되어 새로 만들려는 듯

철거하고 공사중이네요.

 

 

 

가을 향기가 물씬 나는 길입니다.

단풍이 채 들기도 전에

많은 나뭇잎들이 떨어져 있네요.

 

 

파아란 하늘에는

아직도 감이 대롱 대롱 달려있답니다.

 

대전의 중구....하면
자연히 한 복판에 있는
복잡한 시가지를 연상하게 됩니다.
이렇게 조금 떨어진 곳이면
자연 그대로의 풍경이 있답니다.

가을 한창일때면 더 아름답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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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광역시 중구 어남동 233 신채호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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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채호선생의 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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