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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여행/역사유적

겨울에도 푸르름을 간직한 대나무 소리가 시원한 숭현서원지

겨울에도 푸르름을 간직한 대나무소리가 시원한 숭현서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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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이정표만 보고 그냥 지나가다가 생각이 나서 들러본 숭현서원지

 

여기서 말을 내려라.. 아니 차에서 내리시오^^

차는 공터 쪽에 대고 주욱 걸어서 올라왔어요

원촌동은 보통 『서원말』이라고 불리운다. 이는 이곳에 숭현서원이 있었던 데서 유래된 지명이다.

숭현서원의 전신은 회덕의 충절지사인 김정, 정광필, 송인수 등 세분의 명현을 모시는 사우였다.

이 사우는 정확히 언제 창건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시기가 가장 늦은 송인수가

을사사화의 여파로 명종2년(1547)에 서거한 것을 기준으로 볼 때 16세기 후반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한다.

 이 사우가 임진왜란 때 소실되자 1609년에 송남수가 유생들과 함께 다시 건립해

삼현서원이라 이름지었고, 같은 해 조정에 청원해『숭현』이라 사액 되었다.

그러나 1868년 대원군의 서원철폐 정책에 의해 이 서원도 헐려서 묘정비만 남았다.

 이 묘정비는 신흠이 짓고 송준길이 썼다. 숭현서원에는 모두 여덟 분의 유학자들이 모셔져 있어

『팔현모』라고도 불리는데 맨 처음 배향된 세분을 비롯

1641년에는 죽창 이시직 과 야은 송시영 두 분이 서원안의 별사에 배향되었다.
그후 예론의 대가인 사계 김장생을 비롯 유림의 두 거봉인 동춘 송준길과 우암 송시열이 배향되었다.

 이서원에서는 송남수, 송시열, 송준길, 등 거유들이 학문을 강의하는등 이 지역 학문중심지역 역할을 했다.

대전시는 이처럼 유서 깊고 교육적 가치가 높은 유적을 보다 많은 시민들이 보고 배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1994년부터 복원을 하여 사당, 강당, 동제, 서제 등이 완전히 갖추어진

숭현서원의 옛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유림회관과 더불어 선조들의 충절 정신을 기리는 교육의 장으로도 활용 되고 있다.

출처 유성 구청 홈페이지

아직 눈이 녹지 않았지만 낙엽 잎 아래로 봄을 기다리는 많은 풀들이 있겠지요?

계단주위로는 아직 눈이 덜녹았어요

영귀루 현판의 모습도 담아보았어요

옛스러운 손잡이도 멋있어보여요

독특한건 동재 서재등등에 굴뚝이 모두 밖으로 나와 있다는 거에요

고양이님이 먼저 다녀가셨다가

제가 오니까 후다닥 도망갔어요

숭현서원에는 독특하게이런 구멍들이 있어요

방명록도 있어서 다녀간 사람들의 흔적을 남길수 있게되어 있답니다.

숭현서원을 둘러보며 조상들의 충절도 공부 해보고

시원한 대나무 소리에 왠지 가슴이 먹먹해 지는 시간이였습니다.

숭현서원 입구에 배나무 들이 있어서 봄에 배꽃이 피면 더 예쁠것 같아요^^ 봄을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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