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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여행/역사유적

계족산성에 오르다

 

대전 계족산 정상에 둘러 쌓여져 있는 계족산성에 다녀왔다.

가을 단풍으로 한창 옷을 갈아 입고 있는 계족산 풍광을 감상하며 올라간 계족산성에

우리 선조들의 기를 흠뻑 받고 돌아왔다.

 

 

산성 양 옆 숲 속에서는 울긋불긋한 옷으로 갈아 입으려 하고 있다.

 

 

 

 성벽에 바짝 붙어 붉게 물든 담쟁이가 내 눈을 사로 잡았다.

 

 

 

 허물어져가던 성벽을 다시  북원해 놓은 모습이다.

규모도 무척 큰 성벽이다.

 

 

 

 

 전형적인 맑고 높은 가을 하늘이 마음을 탁트이게 해 주었다.

많은 등산객들이 올라와 가을을 만끽하고 있었다.

 

 

 

 

 30여개가 넘는 산성이 있는 대전은 산성의 도시이다.

 

 

 

 

 산성에서 바라본 대청호수가 저 멀리 보인다.

 

 

 

 

산성에서의 외침~~~

모두모두 건강하시길 빌어본다.

 

 

 

 

 

해질녘 산성 위 두 그루 소나무와 등산객들의 실루엣이 그림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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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족산성>

대전광역시 대덕구 장동에 있는 백제시대의 산성.

사적 제355호. 지정면적 73,987㎡, 둘레 약 1,200m. 높이 399m의 계족산 위에 있는 테뫼형 산성(산 정상을 둘러 쌓은 성)으로서 현존하는 성벽의 안쪽 높이는 3.4m, 외벽 높이는 7m, 상부 너비는 3.7m이다.

가장 잘 남아 있는 북쪽 성벽의 높이는 10.5m, 서쪽 성벽의 높이는 6.8m이다. 성의 동·서·남쪽에 너비 4m의 문지(門址)가 있으며, 또 길이 110㎝, 너비 75㎝, 높이 63㎝의 장방형 우물터가 있는데, 그 아래로 약 1m의 수로가 있다.

상봉에 봉수(烽燧)터로 추정되는 곳이 있으며, 건물터와 주춧돌이 남아 있다. 금강하류의 중요한 지점에 있고, 백제시대 토기조각이 많이 출토되고 있어 백제의 옹산성(甕山城)으로 비정되고 있다.

백제가 멸망한 뒤 백제부흥군이 이 산성을 근거로 한때 신라군의 진로를 차단하기도 하였고, 조선 말기 동학 농민군의 근거지가 되기도 하였다고 전한다.

성벽은 대개 7×30㎝의 납작한 자연활석을 석재로 사용한 내탁공법(內托工法)으로 축조하였으나, 동쪽 성벽 약 200m 정도는 안과 밖으로 석재를 쌓아올리는 내외협축공법(內外夾築工法)을 이용하였다. 현재 남문지 밖에는 지름 12㎝, 깊이 12㎝의 구멍이 뚫린 문초석(門礎石)이 있다.

성안에서 백제시대는 물론 신라·고려·조선시대의 토기와 자기조각이 출토되고 있어,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계속 사용된 산성임을 증명해 준다.

이 산성은 그 아래에 견두성(犬頭城)과 같은 보루가 있는 것이 특징이며, 부근에 질현성(迭峴城)·능성(陵城)·내사지성(內斯只城)·우술성(雨述城)·진현성(眞峴城)·사정성(沙井城) 등이 있다.

                                                                                                                      -네이버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