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부끄러워지는 연극, 야구잠바에 소매박기
날이 많이 추운데요, 이런 날씨에 따뜻한 방안에 앉아 있는 제 모습이
부끄러워지는 연극이 있어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바로 2011년 대전창작희곡 공모우수작인 <야구잠바에 소매박기> 입니다.
제목이 좀 독특하죠?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연극을 이끌어 가는 것은 다름 아닌 야구잠바입니다.
이 연극은 극단 새벽의 창작초연 연극리시즈 6탄으로 소극장 고도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우선 연극의 시작은 좀 역설적입니다. 크레인에서 쓸쓸히 내려온 아버지는
유골함을 들고 천천히 걸어 나오고, 그의 얼굴에는 슬픔과 비장함이 함께 묻어있습니다.
그와 대조적으로 살며시 비치는 행복해 보이는 가족의 일상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바라보며 극은 시작이 됩니다.
집안 곳곳에 빨간딱지가 붙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
야구잠바에 소매를 박는 일을 하시는 어머니 회사의 부당한 해고에 대항하기 위하여
동료들을 대신에 크레인에 올라가 단식 투쟁을 벌이는 아버지.
대기업 공장에 어렵사리 취직했지만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약품들에 의해 몸이 병들어가는 딸 영화
그리고 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정의롭지 못한 사회에서 ‘정의’를 꿈꾸는 아들 동욱과
그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선생님. 그들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이 작품은 작가이면서 사회 문제에는 무관심했던,
무관심하고 싶었던 자신에 대한 위로에서 시작되었다며 말을 합니다.
연극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약자가 가진 유일한 무기, 바로 <정의>입니다.
이 작품은 노동자를 위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감히 그들을 위로하고자 했음도 아닙니다.
그저 한 때는 내 아버지가 살았던 삶이였고, 또 누군가의 아버지이며 어머니인,
그들의 누나이고 동생인 이들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우리들의 선생님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으로 이 작품을 썼습니다.
공연될 무대도 독특합니다. 좁은 소극장에 커다란 크레인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시죠?
고공크레인에서 농성하시는 아버지가 계신 곳에 아들은 누나의 영정사진을 크레인에 올려 보내는
마지막 장면은 무엇보다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연극의 마지막 장면, 작가와 연출가의 가장 큰 고민이 되는 부분인데요,
저는 이 연극에서 그 고민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불편한 마음으로 관객들을 돌려보내는 것이 쉽지 않은 선택일텐데,
이 연극은 그 불편한 진실을 드러내는 불편한 선택을 했습니다.
그래서 더욱 슬프고 아프고 속상했습니다.
참, 극단 새벽의 "의자는 잘못 없다" 작품은 내년 3월 5일주터 29일까지
뉴욕 한국문화원에서 초청공연을 하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이 작품은 제가 기간을 놓쳐 보지 못한 작품인데요, 나중에 꼭 기회가 되면 보고 싶네요.
이 연극은 12월 13일까지 대전중부경찰서 옆에 있는 소극장 고도에서 만날 수 있으며
평일은 7:30, 토요일은 오후4시와 7시 30분, 일요일은 4시 공연입니다.
꼭 보시길 바랍니다. 추운 겨울, 제가 감사할 것이 얼마나 많은지,
그리고 그런 제 자신이 얼마나 부끄러운지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고공크레인에서 농성중인 남편을 찾아 반도체 공장에서 유독약품에 노출되어 걸린 백혈병을 차마 말하지 못하고
- 연극 <야구잠바의 소매박기> 중에서
그저 남편의 옷들만 올려보내는 아내의 마음, 농성을 멈추고 내려와서
딸의 마지막을 지켜달라고 말을 하고 싶지만,
동료들을 위한 남편의 마음을 알기에 입술을 꽉 깨무는 슬픈 운명의 여인의 모습,
이것이 오늘날 어머니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참았던 감정이 북받쳐 올랐습니다.
- 연극 <야구잠바의 소매박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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