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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여행/역사유적

[대전여행] 대전시 성북동에 살고 있는 보살의 미소



 

11월의 날씨라고는 믿기지 않게 따뜻한 햇살이 가득한 날! 
산자락에서 들려올 낙엽들의 노래가 듣고 싶은 생각에 차에 올랐다.

  계백로를 따라 달려 국도 4호선 논산방향으로 직진 서대전IC를 지나자
서낭댕이 고개가 나왔다. 이 고개를 내려가다 오른편에 성북동 휴양림 이라는 간판과 함께
방동저수지가 보인다. 우회전후 계속 직진하다보니 봉덕사 석조보살입상이라는 간판이 눈에 띤다.
보살이라는 이름이 나를 봉덕사로 향하게 했다.





봉덕사는 성북동 신뜸마을 동북쪽에 위치한
1940년대 지은 역사가 짧은 절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석문’이라 새겨진 와편이 출토되었고 
<진잠읍지>에 “석문”이란 기록이 나와 있는 것을 보면
꽤 오래된 사찰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이 명문와편이 발견되기 전에도 마을 사람들은 절 입구에 
양편으로 큰 바위가 있어 마치 돌문과 같아 석문 안 절이라고도 불러왔다고 
주지스님은 말씀하셨다.

겨울 햇살을 받고 서있는 사찰은 아주 작고 고즈넉했다.
나뭇잎에 스치는 바람의 속살거림과 산비둘기 울음소리만이 
간간이 들려올 뿐 세속의 소리라고는 내 발자국 소리만이 들릴 뿐이다.

이런 곳이 바로 선경이 아닐까?

문명의 소리는 산자락에 묻히고 겨울 준비를 하는 
나무들의 수런거림으로 가득 차 있는 곳! 
간간이 들려오는 산비둘기의 국국 거림이 
귀에 익은 노래처럼 정겹게 들려오는 바로 이 곳 말이다.  

경내엔 색깔이 다른 옷을 입고 있는 석탑 한기가
어설프게 서있고 좌측에 석조보살상이 오도카니 서 있었다. 




 동남향으로 서 있는 보살의 머리에는 높은 보관이 얹혀 있고, 

법의는 왼쪽 어깨에만 옷을 걸친 우견편단을 하였다. 
오른손은 곧게 아래로 내려뜨리고 손바닥을 앞으로 향하도록 하였다.
왼손은 가슴께로 올리고 있는데 무엇을 잡은듯하나 마멸이 심하여 알 수 없다. 
천의 아래쪽은 옷자락이 거칠게 새겨져 있으나 발목 부분은 보이지 않는다.

신체의 양감이 거의 없는 밋밋한 형체로 불성(佛性)이 약한 토속화한 모습이다. 
이 같이 민불의 양식을 하고 있는 보살상은 
고려시대 이후 충청지방에서 유행하던 양식이다




이런 보살상은 왜 세우게 되었을까?
무슨 염원이 저리도 깊어 커다란 돌을 세세히 다듬고
정성을 들여 잡힐 듯 말 듯 한 미소를 만들게 된 것일까?
석조보살상을 보고 있노라니 갖가지 의문이
어리석은 내 머릿속을 흔들고 지나간다.

불교에서 말하는 보살상은
진리를 구하고 중생을 구제한다는 의미라 하였다.

바로 상구보리 하하 중생 (上求菩提 下化衆生: 깨달음의 지혜를 구하여
닦고 모든 중생을 교화하여 제도한다)의 보살행을 실행하려 하였기에 
저런 친근한 민불의 얼굴로 일반 중생에게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한참이나 석불과 눈 맞춤을 하고 있자니 

어디선가 나뭇잎 버석거리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려보나
인적이 드문 산사에 바람만이 휑하니 스칠   뿐이다.  

경내를 둘러보니 예전 풍경이 눈앞에 떠오른다.
탑의 오른편에 소나무가 서 있고 그 앞에 돌 탁자와 돌로 된 의자가 있어 
그 곳에 앉아 달 밝은 밤에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벗들과 함께 향 좋은 차를 마시면 
절로 흥취가 일거라는 생각을 하게했던 곳이 었는데
오랜만에 찾은 절집은 모양새를 달리하고 있었다. 


봉덕사!
오래된 사찰은 아니지만

경내 구석구석이 사람의 때가 덜 묻어 있어 더 정감이 가는 곳이다.





가지끝에 남아 있는 새빨간 산수유열매의 배웅을 받으며 
여전히 바람만이 나뭇잎을 간질이고  있는 산길을 뒤로  하고 
맑은 공기로 사워를 해 개운한 맘으로 집으로 향했다.

가족들과 함께 드라이브 삼아 나와서 맑은 공기도 마시고 
우리의 문화재도 만난다면 즐거운 주말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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