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충남도지사공관이 테미오래라는 예쁜 이름으로 올해 재탄생했는데요. 관사 하나하나가 나름대로 특색있는 주제를 갖고 흥미로운 전시를 하고 있습니다.
도지사공관은 '시민의집'으로 꾸며졌는데요. 테미오래에서 하는 중요한 행사를 하는 장소입니다.
1호 관사는 '역사의집'으로 조성돼 대전연극 아카이브 전시를 하고 있고요. 2호 관사는 '재미있는집'으로 조성되어 어린이들이 무엇보다 좋아하는 만화와 게임, 인형의 방 등이 있습니다. 5호 관사는 '빛과 만남의집'으로 현재 이스탄불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이스탄불전은 아래를 클릭해서 확인해보세요.
https://daejeonstory.com/10199
그리고 전시 공간으로는 하나 남아있던 6호 관사 '상상의집'에서도 9월 1일부터 의미있는 전시가 시작됐습니다. 이 전시는 임재근 사진 특별전 '콘크리트 기억'입니다.
임재근 작가는 평화통일교육문화센터 교육연구팀장으로 활동하면서 기억해야 할 역사적인 장소에 대해 평화기행 해설에 나서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콘크리트로 지은 건축물에 살고 있습니다. '콘크리트'라는 단어는 따뜻한 생각을 불러일으키지 않죠. 콘크리트의 냉기를 떠올리기 때문일까요.
콘크리트의 냉기를 처음 진하게 느꼈던 것은 15년 전 아이와 함께 서대문형무소를 방문해서 독립운동가들이 갇혀있던 차가운 공간을 봤을 때였습니다. '난방이라곤 없는 콘크리트 감방에서 겨울을 나면서 냉기가 몸에 스며들어 골병이 들었다'는 말과 하나도 다르지 않은 모습을 봤었죠.
6호관사 상상의집은 1932년에 준공된 집으로 국가등록문화재 101호입니다. 대문 안쪽에 당시에 지은 목조 창고가 남아 있습니다. 파란 낡은 슬레이트를 얹은 모습도, 빗물받이 홈통도 오래된 시간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6호관사 상상의 집으로 들어가는 길은 이렇습니다. 관사촌의 집은 모두 예전에는 고위공무원이 머물던 관사였지만 지금은 시민에게 활짝 열린 공간이기 때문에 오픈 시간에는 누구나 자유롭게 들어가서 무료로 감상하면 됩니다.
개막식이 있던 날에는 떡과 음료가 준비돼 있었는데요. 떡에 한반도 모양을 넣어 만들어서 더욱 의미있었습니다. 이 작은 지도 모양에서 울릉도, 독도까지 표현하기는 힘들었을 것 같아요. ^^
6호관사 응접실이었던 곳은 상상의집 현관으로 들어서서 왼쪽 공간입니다. 이방은 대외적으로도 손님을 만나는 방이었던 곳이고 현관에서 오른쪽으로 복도를 따라 들어가며 방이 있습니다.
응접실의 모서리를 둥글게 처리하거나 원형이 창이 있는 것은 당시로는 건축이 쉽지 않았던 고급 주택이었음을 보여줍니다. 1930년대를 생각하면 당시 일반적인 주택과는 온도차가 어마어마 했을 것입니다.
열린 문을 따라 방과 복도를 지나며 곳곳에 전시된 사진을 봅니다. 위의 사진은 얼핏 보면 녹색이 아름다운데 조금만 눈여겨 보면 안쪽으로 쇠창살이 있는 작게 뚫린 창으로 바깥의 빛이 보이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대전형무소였던 곳에 남아 있는 망루에서 엿볼 수 있는 감옥 안에서의 느낌이랄까요.
아래 사진의 나무는 대전형무소 자리에 남아 있는 '평화의 나무'입니다. 다른 위치에 있다가 대전교도소가 이전하면서 이 자리로 옮겼는데요. 수십 년 그곳에서 벌어진 끔찍했던 일들을 말없이 지켜본 버드나무입니다. 사람들이 평화를 염원하면서 이 나무를 '평화의나무'라고 부르게 됐습니다.
6.25 전쟁이 발발하자 사흘만에 이 형무소에 갇혀있던 대부분의 당시 정치범들은 산내 골령골로 끌려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전선이 오르내리면서 죽임이 반복됐습니다. 끔찍했다고 말하는 것으로는 표현이 부족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감히 상상도 안되는데, 어둠 속의 콘크리트 더미 망루는 이제 겨우 하나 남아 그곳이 대전형무소였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산내 골령골에 가면 학살 현장이었다는 표지판이 남아 있습니다.
안방이었던 곳에는 영상이 돌아가고 있습니다. 바닥에 놓인 사진 한점은 학살 당시의 처참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근접 사살을 했다는 증거라고 합니다. 현장의 지휘 책임자는 확인사살까지 했다고 하지요.
6.25 전쟁 후 수십 년 세월이 흐르면서 진실은 가리워지고 수천 명의 주검은 한데 얽히거나 사라졌습니다. 이 자리에 길게 둔덕이 생기고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이 됐습니다.
이 방에서는 벽장이었던 곳에 걸린 사진 앞으로 붉은 꽃 한 송이가 놓여있고 작은 등이 켜있는 것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마치 무덤 앞에 제단을 차리고 위령제를 지내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산내 골령골에 세운 검은 비 앞에 희생자의 아들이 백발 노인이 되어 얼굴 조차 희미한. 젊었던 아버지를 위해 노란 수선화를 심었다고 합니다. 올해 4월 18일에 촬영한 사진입니다.
위 사진은 1904년에 일제가 경부철도를 건설할 때 속성 공사를 위해 뚫었던 증약3터널이라고 합니다. 6.25 전쟁 당시 미군 24사단의 후퇴로였다고 하는데, 증약터널 입구의 벽에 포탄의 흔적이 생생하게 남아서 당시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산내골령골에 세워진 검은 비석입니다. 집단학살지를 표시하고 있는데, 6.25 전쟁 발발 50주년이 되는 해 7월 8일에 세웠다고 합니다. 6.25 당시 미국 기밀문서가 시효가 지나 공개되면서 학살이 있었다는 사실의 객관적인 증거가 되어 세상에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그 전에는 우리는 눈, 귀, 입을 가리움 당하고 희생자의 가족도 억울하단 말 한마디 꺼내지 못하고 수십 년 힘들게 살아왔죠.
저 검은 비석을 처음 봤을 때 세운지 20년 가까이 지나 많이 낡은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감추고 싶은 사람들'이 돌멩이로 내리찍어 생긴 상처라고 합니다. 맙소사......
좁은 복도 좌우로도 사진이 걸려 있습니다. 이쪽에서는 충북 영동 노근리 학살사건의 기록이 있습니다.
마을 주민 수십 명이 철길로 피난하다가 공중폭격을 피해 쌍굴다리로 몸을 피했는데, 이들에게 미군이 3박 4일 동안 총을 쐈다고 합니다. 미군에 의해 죽임을 당한 노근리 쌍굴다리 입구에는 우물 정(井) 표시가 있는데, 당시 물이 있었던 곳이라고 합니다. 쌍굴다리에 피해있다가 물 마시러 나가면 미군이 총을 쏘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자리에서 유독 희생자가 많았습니다.
힘든 역사이긴 하지만 상처가 제대로 아물려면, 아프더라도 상한 곳은 깔끔하게 처리해야 제대로 새 살이 돋으며 치료가 되는 것입니다.
역사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그냥 묻어둔다고 절대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겪고 있는 일들은, 바로 잡지 않고 그냥 감추고 숨기기에 급급했던 지난 60여 년의 고통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추석 연휴에 가볼만한 곳 테미오래에서 이스탄불전, 대전연극의 100년 아카이브전, 작은만화도서관, 콘크리트 기억 등 볼만한 전시도 감상하며 알차게 보내시면 어떨까요? 옛 충남도지사공관이었던 시민의집에서도 9월12일부터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 대전'이라는 전시가 시작된다고 하니 볼 것이 더욱 많아지겠네요~!
**테미오래 관람 -무료 관람
하절기(3월~10월) 화~일(월 휴관) 10시~17시
동절기(11월~2월) 화~일(월 휴관) 10시~16시
1월1일, 설날, 추석 당일 휴관
주소 대전광역시 보문로 205번길 13(대흥동)
문의 042-335-5701~2
관사마다 관람을 하다가 힘이 들면 8호 관사로 가서 휴식을 취할 수 있습니다.
8호 관사는 '시민문화예술인의집'으로, 시민의 휴식과 모임 등을 위한 공간으로 마련된 곳입니다. 다른 관사 전시장에서는 식음료가 불가지만 8호 관사에는 냉온정수기가 마련되어 있어서 약간의 간식만 있다면 다리 뻗고 쉬기 좋은 공간입니다.
가족과 함께 즐거운 추석 연휴 보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