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시가 2019양성평등주간을 기념해 7월 3일부터 7일까지 대전예술가의집에서 대전여성문화제를 개최했습니다.
이번 전시는 '차별을 넘어 모두 모여라! 함께 즐겨라!'라는 주제로, 대전여성단체연합이 주관하고 대전광역시 주최, (사)항일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 후원으로 열렸습니다.
대전여성단체연합으로 참가한 대전의 단체는 대전여민회, 대전여성장애인연대, 대전여성정치네트워크, 대전평화여성회, 실천여성회관, 여성인권티움, 풀뿌리여성 마을숲입니다.
대전여성문화제는 대전의 원도심 곳곳의 계룡문고와 대전예술가의집, 우리들공원 일대에서 여러가지 행사로 진행됐습니다.
계룡문고에서는 페미도서전과 북토크콘서트가 있었고, 대전예술가의집 4전시실에서는 항일여성독립운동가 초상화전시회가 열렸습니다. 대흥동 우리들공원에서는 5일(금) 오후5시에 ROCK 콘서트가 펼쳐졌습니다.
여러 프로그램 중에 대전예술가의집에서 열린 항일여성독립운동가 초상화 전시회를 의미있게 봤습니다.
수십 년 동안 독립운동가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어왔지만 유관순 열사 등 몇몇 분을 제외하면 대부분 남성 독립운동가 이야기였지요.
최근들어 여성 독립운동가를 활발히 발굴하고 있는데요. 오랜 시간이 지나고 자료가 많이 없어지기도 했고요. 또한 독립운동을 할 때 본인의 본명을 숨기고 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다 호적 등의 기록도 남기지 않은 경우도 있는 등 쉽지 않은 작업일 것입니다.
신채호 선생의 경우도 일본식 호적을 거부해서 자료가 없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자손들이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2019 항일여성독립운동가 초상화 전시회-대전예술가의집 3~6전시실(7월3일~7일)
이 전시에서 초상화로 만나볼 수 있는 분들은 그나마 이름도 알려지고 얼굴도 알려져서 해방된 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은 정부가 세워진 후 국가로부터 훈장을 받은 분들입니다.
전시의 변에 보면, 얼굴은 억을 담은 골짜기인 얼골에서 나온 말로, 얼굴에는 그 사람이 걸어온 길이 담겨 있다고 합니다. 항일독립여성운동가들의 초상화를 통해 당시 사회적 모순을 혜쳐 나가는 어려움 속에 독립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했던 여성을 알리고 기억할 수 있습니다.
양성평등주간 항일여성독립운동가 초상화 전시회
먼저 충청지역의 항일여성독립운동가를 만나보는 전시입니다.
충청지역의 대표적인 여성독립운동가는 물론 유관순 열사입니다. 또한 유관순 열사에게 가려져있어서 상대적으로 모르는 분이 많을지도 모르겠지만 유관순 열사의 집안의 남녀 대부분이 3.1만세운동부터 시작해 독립운동에 참여했습니다. 유관순 열사의 부모님은 만세운동 당일에 현장에서 일본의 총검에 학살당했습니다.
이화학당 학생인 김복희와 영신학교 교사인 한연순은 고향인 아산에서 횃불을 올리며 만세운동을 주도했는데요. 이 시위에는 2500여 명의 시위대가 참여했습니다. 천안 직산 만세운동은 민옥금, 한이신, 황금순 등 여성 3인이 주도했고, 청주 오건해 지사는 여자 광복군 신순호의 어머니로 1942년까지 한국독립당 당원으로 활동했다고 합니다.
서산 출신의 최예근 지사는 위험을 무릅쓰고 한국혁명당총동맹에 군자금을 전달하했고요. 연기 출신의 정정화 지사는 독립운동자금 모금과 전달을 담당했습니다. 아산의 이애라 지사는 어린 딸을 일경에 빼앗기면서도 한성임시정부 수립의 비밀을 지켰다고 합니다.
1919년 2월에 김마리아가 대한민국애국부인회 취지서를 작성했고, 1924년 5월에는 조선여성동우회가 창립선언을 했습니다. 1919년 2월에는 간도애국부인회에서 대한독립선언서를 작성했습니다. 1927년 5월에는 최대의 여성독립운동단체인 근우회가 만들어졌고요. 1935년에는 민족혁명당 남경조선부녀회 창립선언문을 박차정이 주도했는데, 부산 출신 박차정은 밀양 출신 약산 김원봉의 부인입니다.
초상화로 전시된 130여 명의 독립운동가는 이름과 얼굴, 기록이 알려져서 건국장 등 훈장과 대통령 표창을 받은 분들입니다. 사진 속의 곽낙원은 김구 선생의 어머니로,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는 등의 활동으로 애국장(1992)을 받았고요. 남자현은 사이토 총독의 암살을 모의하고 직접 독립운동 작전에서 활동해 대통령장(1962)을 받았는데, 영화 '암살'에서 전지현이 담당했던 인물의 모델이기도 합니다.
박자혜는 대전 출생의 민족사학자 신채호 선생의 부인으로 간우회를 조직하고 자녀를 기르면서 함께 남편 신채호 선생의 독립운동을 함께한 분입니다.
유관순은 충남에서 3.1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고 서대문감옥에서 순국했으며 독립장(1962)을 받았는데요. 유관순은 올해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받았습니다. 초상화에 자료가 업데이트되어 있지가 않아서 추가로 기록했습니다. 유관순 옆의 유예도는 유관순의 사촌으로 3.1만세운동을 함께 했습니다.
윤희순(1860~1935)은 충북 중원 출신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의병장입니다. 그 시절을 생각하면 여성은 집에만 있어야 하는 사람이었는데 그렇지도 않았나봅니다. 무기도 제조한 여성의병장이라니 상상도 못했습니다.
1966년에 대한민국장을 받은 송미령(쑹메이링, 1897~2003)은 잘 알려진 것처럼 대만 장개석 총통의 부인입니다. 송씨 자매는 중국현대사에 중요한 인물들이지요. 송미령의 언니인 송경령은 손문의 부인인데, 송미령은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했다고 합니다.
지복영은 지청천 장군의 딸로 광복군 제3지대원이었다고 합니다. 이화림은 조선의용대 여자복무단 부대장이었는데 조선의용군 병원에서 일하다가 해방되던 해에 중국의과대학에 입학한 후 해방 후에도 오랫동안 중국 대련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업적은 있는데 훈장을 수여한 기록이 없군요. 송미령도 받았는데 이화림의 경우는 좀 의아합니다.
박차정은 위에서 언급했는데 약산 김원봉과 함께 의열단 활동을 했던 분으로, 다행인지 불행인지 해방되기 전 해인 1944년에 전투 부상의 후유증으로 35세의 나이로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업적이 뚜렷한데도 1995년에야 독립장을 받았지만, 일제를 두렵게 만들었던 김원봉의 경우는 북한으로 갔다는 사실로 아직 아무런 공적을 인정해주지 않고 있습니다. 통일을 생각한다면 이젠 다르게 생각해야 할 시점에 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 노래에 '~~ 이름도 남김없이'라는 가사가 나옵니다. 진짜 이름도 남김없이 나라의 독립을 위해 결연하게 힘든길을 선택하고 유명을 달리한 선열께 존경심을 표하고 싶습니다. 또한 조선시대 유교를 바탕으로 한 억압 속에 바깥활동이 쉽지 않았을 것 같았던 여성독립운동가가 이렇게나 많았고 무려 백년 전 직접 총을 들고 전투를 했다는 사실은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작은 충격이었습니다.
최근에 다시보기를 한 드라마 '미스터 쎤샤인'에서 미군장교 최유진이 고애신에게 하는 대사 속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귀하가 구하려는 조선에는 누가 사는거요? 백정이 살 수 있소? 노비는 살 수 있소?"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이름도 남김없이 힘든 길을 자처해 독립운동의 길로 들어선 그 분들이 구하려고 했던 나라는 어떤 나라였을까요? 최근 무역전쟁을 벌이는 일본을 보며 여러가지 생각이 드는 뜨거운 7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