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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여행/역사유적

보문산 남쪽 유회당을 거닐며, 조선후기 문신 권이진을 만나다

대전에서 오래 살면서도 '유회당'이라는 곳을 처음 찾아가봤습니다. 

유회당은 권이진(1668∼1734) 선생의 호를 따서 지은 건물과 그에 소속된 재실인데요. 보문산 남쪽 기슭 아늑한 곳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유회(有懷)는 '부모를 간절히 생각하는 효성스러운 마음을 늘 품고 싶다'는 의미를 지녔습니다.

정면에 유회당이 보입니다. 중국 명나라 때 학자인 전목제의 ‘명발불매 유회이인(明發不寐 有懷二人)’이라는 시에서 '유회'라는 글자를 따왔다고 하는데요. 이곳에 있는 건물 중 기궁재는 유회당, 삼근정사 등을 관리하기 위한 재실 건물로 묘사(墓祀)를 지낼 때나 종회(宗會) 때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곳을 거닐다보니 공자가 한 말이 문득 떠오릅니다. 남의 나쁜 점을 떠들어대는 것을 미워하고, 낮은 지위에 있으면서 윗사람을 헐뜯는 것을 미워하며, 용기만 있고 예의가 없는 것을 미워하고, 과감하기만 하고 꽉 막힌 것을 미워한다고 합니다. 

자기가 원하는 남에게 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지만 효도는 그렇지 못합니다. 부모가 자신에게 원하지 않는 것을 했더라도 미워할 수 없고 모른 체 살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륜이 아니라 천륜이라고 부르지 않을까요.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늘 부모의 마음을 살피고, 공경하며 편안하게 해 드리는 것을 효도의 으뜸으로 삼았다고 하는데요. 권이진과 그의 후손들은 선현의 뜻을 이어받아 이곳을 소중히 여겼습니다. 지극한 효심 덕분에 오늘날까지 유회당 원림이 전해 올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곳은 대전을 대표하는 동춘당 못지 않게 고택의 멋스러움을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권이진은 1668년 7월 공주의 탄방리(지금의 서구 탄방동)에서 출생했습니다. 그의 외조부는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입니다.

권이진은 글씨에도 능했으며, 사람됨이 강직했습니다. 저서로는 『유회당집』이 남아 있습니다. 시호는 공민(恭敏)입니다. 1695년 함평현령(咸平縣令)·전라도도사, 정언·홍문관 수찬을 두루 역임하였지만 이때 김춘택(金春澤)의 전횡을 방관한 죄로 파직되기도 했습니다.

유회당 뒤로 안동 권 씨의 묘역이 있고요. 산 중턱 사이로 난 길을 따라 1㎞정도 오르면 야트막한 산자락이 거업재와 여경암을 품고 있습니다.

권이진은 임진왜란을 일으킨 일본에 대한 적개심이 컸고, 이에 일본에 대한 경계심을 강화하고, 국방의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임진왜란에 대한 현창(顯彰) 사업을 적극적으로 벌였다고 합니다.



고즈넉한 분위기의 유회당을 거닐며 조선후기 문신 권이진의 이야기를 곱씹어봅니다.

유회당 : 대전 중구 운남로 85번길 3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