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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일상/대전사람들

대전 청년메이커 주수향, 그녀의 Top Secret



 

누군가 어떤 사람을 만나 알고 싶어지는 과정, 그 숱한 과정을 무심히 지나지 못하고 면밀히 들여다 봅니다. 결국엔, 그 사람을 더 제대로 마주하기 위해 기록하고야 마는. 수많은 생명체 중 '사람'이 갖고 있는 무한한 이야기와 그 매력을 가장 사랑하는 기록주의자가 만난 대전청년. 고집있는 자신만의 분야를 가진 그들 삶의 기록을 인터뷰를 통해 자유로이 이어가고자 합니다. [권순지]


 

▲ 메이커 수향 ⓒ top secret


 

외롭지 않은 사람. 외로울 틈이 없다고 합니다. 홀로 보낼 수밖에 없는 작업시간을 채우는 건 외로움이 아니라 쉴 틈 없는 창작입니다. 떠오른 아이디어를 생각하다 멍 때리기도 하고, 왜 안 되는지 바꿔보고 부수는 과정이 메이커 수향의 일상. 그러다 기어코 멋진 작품을 만들어 내고야 마는 그 생산력 가득한 고집. 몸도 마음도 건강한 그녀는 메이커 세계에 입문한지 얼마 안 된 새내기입니다.  최근 서른 살 생일을 맞은 그녀, 요즘 가장 행복하다고.


학교 메이커 교육관련 교사 연수 프로그램에 강의를 맡았고, 최근엔 다른 창작자들과 협업전시를 진행했습니다. 방학이라 잠시 스톱이었던 학교 학생들 교육 프로그램은 9월부터 다시 시작. 그리고 틈틈이 마술도구를 만들며, 단짝이자 동료인 마술사 친구의 공연을 도와주기도합니다.

 

집중할 수 있는 시간에 온전히 빠져들어야 하고 싶은 작업을 마무리 할 수 있기에 일정엔 빈틈이 없는 편이죠. 정말로 숨 고를 새 없이 바쁜 그녀와 함께 있는 시공간 속에서의 대화엔 늘 꿈과 계획이 빠지지 않습니다.

 

매순간을 공회전 없이 알차게 돌고 돌아 지금, 가장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찾은 것 같다는 메이커 수향. 해야 할 작업이 많아 며칠째 잠을 제대로 못 잔 걸로 알고 있는데 피곤한 기색은 그녀 곁에서 잘도 숨어 있었습니다. 


무엇이든 만들고 고쳐 드립니다.


▲ 메이커 주수향은 대전사회적자본지원센터에서 진행했던 중동돋보기프로젝트의 핫아이템인 '중동부루-스' 수레를 직접 설계하여 만들기도 하였다. 

 


“공부를 하라고 하면 밤을 못 샜는데, 뭐 만들라 하면 밤을 샜어요. 예를들어 옛날에 빼빼로 데이 있잖아요. 남들과 똑같은 것을 주는 게 싫었어요. 저는 포장을 어떻게 할까 생각을 해요. 매년 여러 가지 시도를 해봤던 거죠. 지금 생각해보면 미련한 짓인데. 내가 혼자 좋은 거지... 그냥 애들한테 다 줬어요. 만들어서 주는 게 좋았던 거죠. 애들이 보고, 우와 이거 어떻게 했어? 궁금해 하고 물어보면 얘기도 해주고. 만드는 건 진짜 새벽까지 만들고 그랬어요. 지금도 그래요.”


 

뭐든 나누고, 함께하는 이들이 행복해 할 때,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과 행복도 자신에게 온다고 말하는 그녀. 지금 마술도구를 만들지만 학창시절 한 때, 이은결 마술사 영향으로 마술동아리까지 들어가 마술도 배웠다고 하네요.

 

마술을 배운 이유는 호기심 때문이었지만, 작은 마술에 즐거워하는 친구들과 선생님을 보며, 자신이 어떨 때 행복한지 알게 된 흥미로운 계기. 지금은 공유 작업실에 마련된 자신의 해먹에 동료들이 누워 쉬는 모습만 봐도 행복하다는 이야기도. 정작 본인은 바빠 해먹 근처에도 잘 못 가면서 말이죠.

 


▲ 그녀의 손에서는 무엇이든 나온다 ⓒ 메이커 주수향


 

“분해도 많이 해 봤죠. 고치지는 못하고(웃음) 중학교 때 부터는 학교 갈 때 육각렌치를 가지고 다녔어요. 육각렌치라고 해서 드라이버랑 비슷한 거 에요. 책상 같은 것 몸에 맞춰 낮게도 높게도 할 수 있잖아요. 학년 바뀌는 시기에 가끔 선생님들이 책상 높이 안 맞는 사람 손들어 해서 기사 분들이 와서 고쳐줬는데, 그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 거 에요. 한 달 길게는 두 달도 기다리고. 나는 그게 싫었던 거야. 바로 바로 해결하고 싶어서. 집에 마침 찾아보니까 있었어요. 사이즈가 딱 들어가요. 바로 나사를 풀고 조이고 할 수 있더라고요. 그 때부터 갖고 다니면서 제가 다 해줬어요.”

 

▲ 그녀의 손에서는 무엇이든 나온다 ⓒ 메이커 주수향


 

순응하기보단 독립적으로


그렇게 좋아하는 것이 명확했던 자신에 대해, 공부 잘 하길 바란 엄마의 기대. 자신은 엄마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딸이었다고 회고했습니다. 대학전공을 일문과로 택한 이유도 엄마의 영향이 컸습니다. 엄마를 만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그 뜻을 거스를 수 없었던 걸까. 일본어 시험점수가 잘 안 나와 점수 올리려고 다녔던 학원이 그렇다고 아예 재미없진 않아 시간을 들여 열심히 했었다고 말하는 그녀. 일본어 학원에 다니며 땄던 자격증덕분에 대학입시를 수월하게 치를 수 있었고, 그렇게 순응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다 별안간 닥친 불안감.


“내가 앞으로 한 길만 가야 할 것 같은 불안감이 온 거에요. 사회생활 하면… 예를 들어 우리 아빠가 공무원이니까… 그 것만 보고 자랐잖아요. 아빠가 공무원을 해서 지금 정년퇴직 할 때까지 한 길을 계속 살아온 사람이잖아요. 물론 그 삶이 잘못됐다는 건 아니고요. 존경스럽죠. 그런데 나도 대학을 졸업해서 어디 관련회사를 들어가면 그렇게 계속 정착해야 한다는 생각이 답답했어요. 졸업하기 전에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다 해봐야겠다고, 그래야 속이 풀릴 것 같더라고요. 하고 싶은 것 다 해봤죠. 대학교 때부터.”


 

▲ 그녀의 손에서는 무엇이든 나온다 ⓒ 메이커 주수향


 

 

도배, 용접 기술, 아두이노 등 배워보고 싶은 것들에 대한 자기 계발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해외여행도 가고 싶으면 알바를 하고 돈을 모아서 어떻게든 다녀왔습니다. 워킹홀리데이로 일본을, 베트남엔 취업을 하기도 했죠.

 

다른 나라에서 돈을 번다는 것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해서 가능한 것들은 다 해봤다는 그녀에게, 불안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은 그간 호기심으로 꿈꿨던 일들을 다 해보는 것이었습니다. 순응하며 살 때의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이 ‘칭찬’이었다면, 지금은 작품을 만들 듯이 독립적인 주체가 되어 삶을 꾸리는 ‘의지’만이 자신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이 되었습니다.


좋아하고 잘하는 것으로 먹고 살 수 있을지 몰랐다

 

아직 엄마는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지 정확히 모른다며. 어쨌든 생활비 달라고 손 벌리지 않으니 궁금하지만 더 물어보지는 않는 것 같다며. 결국 돌고 돌아 자기가 어렸을 때부터 가장 좋아했고, 잘했던 일을 지금 하고 있고 있다며 쓴 웃음을 머금은 그녀 입가. 다시 순수해졌다고 말하고 싶은 순간이었습니다.

 



그녀의 손에서는 무엇이든 나온다 ⓒ 메이커 주수향

 


“만들고, 조립하는 것들. 김영만 아저씨 만들어 볼까요 책 시리즈가 나왔었어요. 초등학교 때 그걸 전부 사서 처음부터 끝까지 다 만들어 봤었어요. 종이접기도 사람들 한 번 접을 때 전 양면으로 접었어요. 그러니까 색종이를 접으면 앞으로 접고 다시 펴서 뒤로 접어요. 앞뒤로 한 번 접고 뒤에서 앞으로 또 접으면 각이 딱 살면서 이게 딱 맞게 되는데(웃음) 좀 변태 같다고 볼 수 있는데 전 색종이 접었을 때 끝이 딱 맞고 그런 것에 되게 희열을…”


 

 

디테일은 김영만 아저씨 못지않았던 소녀. 종이접기 김영만 아저씨처럼 무언가 만드는 일을 하게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백지상태의 그 때입니다. 그리고 다시 지금으로 이어진 평행선.

 

 


최초로 만든 마술도구, 비둘기 관련한 마술연출도구 ⓒ 메이커 주수향


 

“근데 이게 업이 될 줄은 몰랐죠.”


 

그 때의 순수함을 가져다 지금의 열정에 쏟아 붓는 그녀. 다행스럽게도 취향과 재능이 일치하여 내적갈등도 없다고 말하며 웃습니다. 돈을 많이 벌진 못해도, 좋아하는 일 하면서 먹고는 산다며.



아두이노를 이용하여 만든 시크릿 마술상자 ⓒ 메이커 주수향

 

 

메이커의 고민 

 

 

마술오덕 친구는 새벽까지 연습했던 터라 수업시간에만 간신히 깨어 있었습니다. 궁금한 마술이 있어서 말 좀 걸려고 해도 좀처럼 기회가 오질 않았죠. 그렇게 떨어져 각자 살다 성인이 되어 다시 만났습니다. 같이 재밌는 걸 해보자는 마음이 맞았을 때가 2014년. 본격적으로 마술사 단비와 함께 일을 하며 마술도구를 만들고, 메이커의 길로 접어든지 1년 남짓. 물론 완전체처럼 전부 죽이 잘 맞는 건 아니라고 말합니다.

 


“이미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서 만들었는데, 얘(마술사단비)는 공연자니까 다른 디테일도 보면서 부족하다고 얘기하기도 하죠. 내가 보는 디테일과 단비가 보는 디테일이 다른 거 에요. 마술도구로 공연을 해야 하니까 만들어 놓고 그게 끝이 아니라 계속 다각도에서 보면서 사람들에게 보여질 것까지 생각을 하는 거죠. 쉽지 않죠. 아 다 만들었는데…허탈하기도 해요.”


 

해체 관련 마술 도구 ⓒ 메이커 주수향


해체 관련 마술 도구 ⓒ 메이커 주수향


 

자기들끼리만 아는 그 디테일을 서로 존중해주기로 합의점을 찾아나가는 중이라고. 함께 창작할 때 나오는 그 시너지를 더 믿고 가자고. 앞으로도 갈 길은 멀다고 말합니다.


“메이커로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가 거의 없어요. 최근엔 대전시민창작센터에서 주관한 마술도구 워크샵이나 CAD강연으로 수입이 있었죠. 그리고 학교에서 메이커교육이나 예술과학융합수업으로… 또 마술공연에 들어가는 도구들 때문에 공연수익으로도 조금 보탬을 얻구요.”


마술공연을 하고, 그 스토리에 맞는 마술도구를 만들지만, 서로 융합된 어떤 다른 것들도 만들어보자는 계획도 있습니다. 함께 놀 수 있는 플레이형 시크릿박스를 제작하여 교육이나 공연으로의 2차적 확산까지 구상하는 중이기도 합니다.

 

결국은 좋아하는 일을 해야만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것이라고. 요즘에서야 조금은 알 것 같다는 메이커 수향. 그녀의 손에 핸드크림을 듬뿍 발라주고 싶은 마음. 곱게 가꾼 손을 가진, 오래도록 만드는 사람으로 살아남을 수 있도록 말이죠.






주수향은 독립마술회사 Top Secret 소속 메이커로 활동중이다. 아이디어와 기술, 노력을 바탕으로 다양하게 창작한 마술도구를 공연에 선보인다. 오토마타관련 작품을 통한 전시. 대전문화재단 예술강사. 2D 디자인 설계 워크샵, 마술도구 제작 워크샵과 메이커 이해과정 워크샵을 진행하며 교육자로서의 경험도 다져나가는 중이다. 또한 청춘다락에 입주한 MAKIT의 대표 메이커 이기도 하다.


■블로그: blog.naver.com/maker_j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