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에는 서구 도산서원과 유성구 숭현서원이 있는데요.
그중 숭현서원(대전광역시기념물 제27호)은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71년(고종 8)에 훼철된 후 복원되지 못하다가 비교적 최근인 2001년에 복원이 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는 곳입니다.
지금 이곳에서는 그렇게 풍광 좋은 자연을 만나기 힘들겠지만 예전에 이 앞에 아무것도 없을 때는 지금의 갑천이 흐르는 모습을 감상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숭현서원 입구에 있는 영귀루는 선비들이 주변 풍광을 감상하며 시를 읊조리기도 하던 숭현서원의 문루입니다.
현재 숭현서원은 8월 말까지 동재와 서재 지붕 및 관리사 동의 보수공사가 진행 중인데요. 협문과, 기와, 내부 보수 및 외부 정화조 신설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숭현서원은 1585년(선조 18)에 정광필, 김정, 송인수를 모시기 위해 용두록에 세워 삼현서원이라고 불렸는데요. 1592년 사액을 받았으며,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09년(광해군 1)에 중건했습니다.
숭현서원은 1695년(숙종 21) 김장생·송준길·송시열을 추가 배향했습니다. 1585년은 참 평화로운 조선의 시대였죠. 7년 후의 임진왜란이 발발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해에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전국 통일을 하고 2년 후 관백이 되었습니다.
매번 이 길을 지나가면서 가는 곳의 이정표를 보았지만 그냥 작은 건물 두어 개쯤 남아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는 규모가 있는 편이네요.
이곳의 공사가 가장 크게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다른 곳의 입구는 막혀 있지만 이곳을 통하면 숭현서원의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고택 공사는 복원이 생명이라고 합니다.
송시열이 이곳에 관련내용을 적었는데 지금은 옛날 내용을 적어서 새롭게 새웠습니다.
우의정과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을 역임한 정광필. 이조참판, 대사헌 등을 거쳐 형조판서를 역임한 김정. 사헌부 대사헌과 관찰사등을 역임한 송인수. 이 모두를 모시는 숭현서원은 지금의 목동 자리에 있었다가 이곳으로 옮겨져 복원됐고요. 계룡시에 그 흔적이 남아 있는 김장생과 송촌동 동춘당 송준길, 송시열이 추가로 모셔지게 됩니다.
향교의 경우 명륜당, 동재, 서재등의 건물이 일률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다면 서원들은 대체적으로 웅장하면서도 세미함이 살아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공립기관과 사립기관의 차이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듯 합니다.
여러곳을 돌아다니며 향교와 서원을 많이 만나보는데 확실히 서원의 건축물들이 더 기교가 있게 만들어졌습니다.
숭현서원이 복원을 마치고 새단장한 모습으로 돌아오길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