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어떤 사람을 만나 알고 싶어지는 과정, 그 숱한 과정을 무심히 지나지 못하고 면밀히 들여다 봅니다. 결국엔, 그 사람을 더 제대로 마주하기 위해 기록하고야 마는. 수많은 생명체 중 '사람'이 갖고 있는 무한한 이야기와 그 매력을 가장 사랑하는 기록주의자가 만난 대전청년. 고집있는 자신만의 분야를 가진 그들 삶의 기록을 인터뷰를 통해 자유로이 이어가고자 합니다. [권순지]
▲ 새얀공방 전지현 작가가 서구힐링아트페스티벌에 전시한 자신의 도자기 작품을 손에 들고 있다.
공방 문이 활짝 열려 있었습니다. 공방 위치가 큰 도로 옆이라 부산할 수 있겠다는 우려도 기우였습니다. 공방의 아기자기한 기운은 공간 주인을 많이 닮아 있었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 그리고 그 이후 여러 번 마주하여 이야기를 나눌 때, 그녀는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줄곧 당당했습니다. 마지막 기회다 생각하고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두고 다시 도자기 세계에 뛰어든 나이가 서른 한 살. 많지도, 그렇다고 적지도 않은 어정쩡한 나이가 주는 불안을 감당하고 그녀는 다시 예술을 합니다. 창고 같았던 작은 건물을 빌려 공방으로 다듬기 시작하며 다짐했습니다. 어떻게든 한 번 해보자고.
▲새얀공방[대전시 중구 대흥동 424-4 파빌라 101호]은 전지현 작가의 개인작업실이자 공방을 찾는 수강생들의 클래스가 이뤄지는 공간이다.
대흥동에 있는 건물들 중, 1층에 예술가의 공방이 있는 경우는 드뭅니다. 인스타그램에 올라올 법한 예쁜 카페, 식당, 술집이 대흥동 골목 구석구석을 장악하고 있으니 말이죠. 전지현 작가의 새얀공방은 그녀 말대로 대흥동 메인을 벗어난 외곽 거리에 위치해 있습니다.
처음 공방을 시작할 땐 유동인구가 많은 메인거리에 자리 잡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고 말하는 그녀. 월세가 너무 비싸 고심 끝에 지금의 공간을 선택했고, 어쩌면 다행스럽게도 아직 버틸만하다고 말합니다. 대흥동 젠트리피케이션 바람이 비껴난 아슬아슬한 공간. 잠시 웃음을 거둔 그녀에게서 나온 '버티고 있다'는 말이 목에 걸린 듯 쉽사리 삼켜지지가 않습니다.
도자기를 전공하기로 마음먹고 매달렸던 대학 4년, 그 후 또 다른 세계인 회사 생활에서의 7년 동안에도 언제나 결론은 같았습니다. 버티는 것 말고는 정답이 없다는 것.
▲ 흙 빚고 굽는 여자, 도자기 작가 전지현 <새얀공방>
예술가로 버티기 3년차
그녀는 대학에서 도예를 전공했습니다. 진부한 예술인줄만 알았던 도자기를 파고드니 매일이 새로웠다는 그녀. 흙 만지는 것 자체가 좋았고, 함께 하는 선배, 교수의 영향도 도자기를 선택한 이유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다 파주 헤이리에서의 작업을 끝으로 꽤 긴 시간 도자기를 떠나 있었던 그녀가 돌아온 지 이제 3년차. 닥치는 대로 주문을 다 받았고, 촘촘한 일정을 쪼개 강의도 놓지 않았습니다.
▲ 새얀공방 ⓒ 전지현
“그렇게 2년을 버틴 거 에요. 그렇게 버텼는데 다행히 마이너스는 아니었던 거죠. 그냥 처음과 똑같이 유지하고 있어요. 그런데 2년 정도 하고 3년차가 되니까 어떤 생각이 들더라고요. 딜레마가 온 거죠. 이렇게 유지만 하다가 10년을 보내면 어떡하나.”
▲ 새얀공방 ⓒ 전지현
매순간 불현 듯 고비가 찾아왔습니다. 그럴 때마다 접어야 하는 가에 대한 고민이 들지만 결심으로 이어지진 않았습니다. 그만둔다면 다시 어디로 갈 수 있을까. 그럼 다시 회사생활로 돌아가는 건데, 그렇다면 회사생활은 또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생각의 끝에 그녀가 선택한 건 결국 행복입니다.
“회사생활이 좋았나? 행복했나?”
▲ 새얀공방 ⓒ 전지현
▲ 새얀공방 ⓒ 전지현
누가 정해주지 않은 삶
재밌지도 않았고, 나쁘지도 않았습니다. 시키는 일을 나쁘지 않게 잘 해내면 되었고, 별 무리 없는 회사생활이었습니다. 일주일의 흐름은 출근하는 평일로 시작해서 출근하지 않는 주말로 귀결되었던 정말로 단순한 삶. 그리고 매월 꼬박꼬박 입금되는 월급까지.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렇게 무리일 것 없어 보였던 일상을 변화시킨 것은, 버리지 못한 도자기를 향한 열망만은 아니었다고 말하는 그녀.
▲ 새얀공방 ⓒ 전지현
하루 9시간 이상을 스스로 결정지을 수 있는 일 하나 없이 보냈던 회사생활은, 지나고 보니 자신의 삶이 아니었던 것 같다는 이야기를 뒤이어 꺼냈습니다. 7년간 자존감이 바닥이었다는 것을 회사를 벗어나서야 깨달았다고 말합니다.
공방을 열고 얼마 안 되어 서른 명 앞에서 강의를 하며, 순간순간 바짓가랑이를 붙잡던 복잡한 감정들을 떨치는 희열도 경험했습니다.
누군가 뭔가를 물어보면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상사를 통해 전달받은 대답을 읊었던 회사생활. 당연하게만 여긴 회사 안에서의 모든 일상들은 다달이 들어오는 월급만큼이나 정해진 체계 안에 갇혀 있던 것이라 여기게 되었습니다.
▲ 새얀공방 ⓒ 전지현
그렇다면 별 문제 없는 정해진 삶 안에 놓여있는 것이 과연 행복한가에 대해서 이어지는 질문에 그녀는 답할 자신이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미 과거가 되어버린 회사생활은 지금의 선택과 어쩔 수 없이 비교가 된다고 말하는 그녀.
“수입이 많지는 않지만 행복하거든요. 하고 싶은 것 하고, 하루에 두 시간 집중해서 일 해도 되고, 일이 많이 있으면 또 많이 하고. 자유롭죠. 직장인인 동생에게 물어봤어요. 행복하냐고. 그랬더니 모르겠대요. 동생이 엄마랑 9월에 스위스 여행을 가거든요. 일 년에 한 번 가는 여행 때문에 회사를 다니는 것 같은 생각도 든대요. 단 5일의 여행을 위해 360일을 사는 그런 생활인 거 에요. 그에 비해 전 시간도 마음도 부자라고 생각해요.”
▲ 새얀공방 ⓒ 전지현
마음먹고 하루 두 세 시간만 일을 하고 쉴 수 있는 여유가 있지만, 그녀가 하고 있는 일들을 나열하면 출근하는 회사원 못지않게 빼곡합니다. 1:1강의, 단체강의, 개인작업, 공동작업, 각종 프리마켓을 포함한 페스티벌 참여, 그리고 꿈다락토요문화학교를 통해 진행되는 아이들과의 수업까지.
▲ 전지현 작가가 꿈다락토요문화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하는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 전지현 작가의 서구힐링아트페스티벌 전시 작품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정된 삶이 곧 행복이라 여기며 살아온 그녀의 부모님은, 그녀가 선택한 정해져 있지 않은 길 위에서 자꾸만 묻습니다. 그렇게 해서 나아질게 뭐가 있냐고 말이죠. 그렇게 꼬집히는 현실을 버티다 가끔은 곤두박질치는 감정을 추스르느라 애를 먹기도 합니다.
그녀 역시 이미 노후가 준비된 부모님과 생활해온 자신의 안정된 삼십 여 년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여전히 갈등하고 두렵지만 해보는 데까지 해보고 싶은 것. 단단해져가는 과정이라고,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끝까지 가보고 싶은 자신을 주변에서 믿고 기다려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 새얀공방 ⓒ 전지현
“정말 인내가 필요해요. 도자기는 밑에서 흙이 물렁거리면 위에 가서 다 무너지거든요. 조금씩 말리면서 가는 거 에요. 넘어지면 안 되기 때문에. 시간도 오래 걸리고. 열심히 해도 갈라지고 깨지는 순간도 있거든요.”
▲ 새얀공방 ⓒ 전지현
도자기는, 포기가 쉽지 않은 전지현 작가와 참 많이 닮았습니다. 인내를 갖고 단단하게 쌓아올린 그녀 작품처럼 이미 충분히 단단한 인생을 꾸려가는 중인 전지현 작가. 남은 올해는 작품에도 집중하여 개인전을 열어보고 싶고, 다양한 청년예술가들과의 협업 프로젝트 기획도 꿈꿉니다. 도자기를 닮은 그녀의 근력은 분명 특별해질 것입니다.
도자기 작가 전지현은 대흥동에 위치한 새얀공방을 운영중이다. 새얀공방은 작가의 개인작품뿐만 아니라 공방을 찾는 수강생의 창작활동이 어우러지는 공간이다. 흙으로 직접 빚은 후, 800도에서 구워진 초벌 도자기에 전용 물감을 사용하여 자신만의 특별한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지도하고 있다. 꿈다락토요문화학교, 원데이클래스를 비롯한 전지현 작가의 주요 활동은 새얀공방 공식 블로그와 SNS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새얀공방: 대전광역시 중구 대흥동 424-4 파빌라 101호
■블로그: saeyan3.blog.me
■인스타: saeyan_jihy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