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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문화/공연

한자이 명인 가곡 발표회 "버들은 실이 되고 꾀꼬리는 북이 되어~"


비가 내리던 5월 12일. 대전무형문화재전수회관에는 여름을 재촉하는 빗속에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대전무형문화재 제14호 가곡 보유자 한자이 명인의 발표회가 있었기 때문이지요.

 

대전무형문화재제14호 가곡 한자이보유자


가곡이라고 하면 우리는 '오가며 그집앞을 지나노라면'이나 '아∼베 마리∼∼아...'와 같은 서양가곡을 생각하잖아요.  하지만 리나라 전통 성악곡에도 가곡이 있습니다. 시조, 가사와 함께 정가()로 분류되는데요

화 '해어화(解語花)'에서 소율 역의 한효주가 4개월간 정가를 배워서 실제로 불렀다고 합니다. 

영화 '해어화'는 시대적 배경이 일제강점기지만, 우리나라 전통 가곡의 역사는 고려시대까지 올라간다고 해요. 이후 조선시대 상류층에서 주로 불리면서 더욱 발전했다고 하는데요.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 경치 좋은 정자에서 갓을 쓴 양반이 부채를 한손에 들고 이렇게 부르죠.

"청산∼∼∼∼∼∼리 벽∼∼∼∼∼∼계∼∼∼∼∼∼수..."

이런 장면은 익숙한데요. 이것은 시조이고, 송강 정철로 대표되는 가사도 있어요. 이런 시조와 가사에 비해서도 훨씬 예술적이고 세련된 것이 가곡이라고 합니다.

 

여창가곡 평조 이삭대엽 '버들은...'을 부르는 한자이


첫 순서로 여창가곡 평조 이삭대엽 '버들은'을 한자이 명인이 불러주었어요.

'버들은 실이 되고 꾀꼬리는 북이 되어 구십 삼촌에 짜내느니 나의 시름 누구서 녹음방초를 승화시라 하든고'

짧은 시를 김유진 가객이 먼저 10여초 간 낭송하고, 한자이 명인이 무려 10분에 걸쳐 천천히 부르는데요. 무대 뒤에는 가사를 스크린에 올려놓아, 가사를 눈으로 보면서 목소리로는 얼마나 멋들어지게 표현이 되는지 생각해가면서 들울 수 있습니다.

한자이 가곡발표회 발표순서

 

이번 공연은 다음과 같이 파트를 나누어서 가곡과 시조, 가사까지 정가의 진수를 선보였답니다.

 

Ⅰ. 봉황은 벽오동 가지에 앉아 깃을 다듬고
Ⅱ. 기러기 울음소리는 객사의 나그네를 깨우며 
Ⅲ.  황학은 호수 위에 떠돌며 짐짓 서두르지 않네 
Ⅳ. 여기가 요임금과 순임금의 우주로다 

 

여창가곡 계면조 편삭대엽 '모시를...' / 박봉금 한자이 조영숙 장순희

 


저는 대전무형문화재전수회관의 '토요상설공연'이나, 한자이 정가연구원 발표회를 통해 가곡을 접한 뒤로 공연이 있으면 되도록 관람을 하는 열성팬이 됐어요. 

 

여창지름시조 '달 밝고...' / 김영미 임이랑 김유진 김은옥 김나혜

 

정가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공연을 관람하고 나면, 집에서 인터넷 등을 통해 자료를 찾아보곤 하는데요.

가곡의 장단은 16박의 기본장단과 10박의 변형장단 두 가지로, 16박의 기본장단은 정형시조를 얹어서 노래 부르는 초수대엽()부터 농 계열까지의 가곡에서 연주되지만, 10박의 변형장단은 낙·편 계열의 언락·편락·우편()·언편()·편수대엽()에서 사용된다고 합니다.

 

경제 휘몰이시조 '창 내고자...' / 송영숙

가사 '춘면곡' / 윤미애

 

같은 시라도 어떤 때는 편수대엽으로, 어떤 때는 편삭대엽으로 달리 부르는 것 같은데 문외한인 저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시창 '강릉경포대' / 김윤령

 

이렇게 가곡과 시조, 가사를 여창, 남창, 독창, 중창으로 부르니 엄청 다양하기도 하네요.

마지막 곡은 남녀창 가곡 '태평가'를 전 출연진이 합창으로 불렀습니다.

(이랴도) 태평성대(太平聖代)
저랴도 태평성대(太平聖代)로다.
요지일월(堯之日月)이요 순지건곤(舜之乾坤)이로다.
우리도
태평성대(太平聖代)니 놀고 놀려 하노라.

 

남녀창가곡 계면조 '태평가'

 

이 짧은 시를 4분이 넘는 시간동안 길∼∼게 늘려서 부르는데,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사회에는 맞지 않는 것 같기도 하지만, 또 너무 주위를 살필 여유도 없이 빠르게 지나가는 시대에 '느림의 미학'을 느낄 수 있기도 합니다.

 

모든 공연이 끝나고 전 출연진이 자축을 하며 기념촬영도 하고, 멀리에서 축하해 주러 온 손님들과 인사를 나누었는데요.

 

 

눈에 띄는 손님이 있었어요. 바로 정가 진흥에 큰 발자취를 남기신 윤용섭 국학진흥원 부원장님과 피아니스트 임동창 선생입니다. 이 시대의 기인이라 일컬어지는 인동창선생은 '라디오 풍류방'을 진행할 때 한자이 명인이 출연을 해서, 임선생의 피아노 반주에 '태평가'를 부른 것이 인연이었다는데요. 이후 다른 유명인사들로 하여금 한자이 명인한테 가곡을 배우도록 권유해 실제로 교수로 이어지기도 했답니다. 그래서 특별히 이번 공연을 축하하고자 대전을 방문했네요.

 

(왼쪽부터) 성낙주 대구시우회사범, 윤용섭 국학진흥원부원장, 피아니스트 임동창과 한자이명인

 

5월 12일은 하루종일 여름을 재촉하는 비가 내렸는데요. 그럼에도 대전무형문화재전수회관 공연장 객석이 가득 찼었습니다. 

두시간 내내 저는 시간을 훌쩍 거슬러 올라가, 조선시대 계곡물이 시원하게 흐르는 어느 정자에 앉아 유유자적 풍류를 즐기는 시간이 됐답니다.

 

2018대전광역시 소셜미디어기자 조강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