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오란 빛깔은 모두 이런 것이랴'
달항아리에 기댄 노란 모과 두개, 그리고 詩(시) 한 구절.
어쩜, 가을은 이렇게 그림이 되고 시가 됩니다.
대전시민의 발 대전도시철도. 저는 집이 만년동이라 정부청사역을 주로 이용합니다.
며칠 전, 대합실로 들어오는 열차를 확인하고 바쁘게 개찰을 했습니다. 하지만 다음 열차를 기다려야 했지요.
삭막했던 역사 안에 작은 시화전이 열렸거든요.
가을만큼 시가 어울리는 계절이 또 있을까요?
<시뿌리다 시꽃피다>는 대전문학관이 마련한 순회전시인데요, 도시철도 역사 뿐만 아니라 NGO센터 등 대전 곳곳을 찾아다니며 대전에 뿌리를 둔 작가의 시를 알리고 있답니다.
정부청사역사에는 모두 열세 편의 시화가 소개되었는데요, 제 발걸음을 멈추게 한 작품들 궁금하시죠?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제 맘에 쏙 든 작품은 <건어>입니다. 말린 생선을 바라보는 고양이, 얼마나 애가 탈까요? 절로 웃음이 납니다.
풀꽃과 구름, 별, 꿈 그리고 나무. 시인들은 일상에서 시어를 찾고 들려줍니다.
아직 한참이나 기다려야 할 봄을 노래한 시들도 있습니다. 꽃이라는 낱말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유독 한 작품만 그림체가 달라 들여다보니, 사연이 있습니다.
<앵두, 살구꽃 피면>은 <오류동의 동전>으로 기억되는 박용래 시인의 작품입니다. 그래서 이 작품만 박용래 시인의 둘째딸인 박연 화가의 손에서 그려졌답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열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그리고.. 아, 이제서야 보입니다.
꼭 이 순회전시가 아니어도 대전도시철도 대합실은 이미 한 편의 시집입니다.
그동안 스마트폰에 정신이 뺏겨, 열차를 기다리는 그 짧지 않은 사이에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아니,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 맞겠지요.
시를 읽는 잠깐의 여유마저 갖지 못하다니, 왜 그리 쫓겨 살았나 싶습니다.
승객들 대부분이 고개 숙여 자기만의 세계에 빠진 열차 안.
이곳에도 올려다보며 천천히 음미할 수 있는 한 편의 시가 있다면, 더 아늑하겠지요.
바쁜 걸음 잠시 멈추고 쉬어가는 삶, 그리고 시.
여러분의 마음 속에도 시 한 편 뿌려지고 꽃 피는 하루 되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