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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 수상작

[입선]대전 최초, 최고, 최대 아파트를 찾아라

 

"꽃밭에는 꽃들이 모여살고요. 우리들은 아파트에 모여살지요. 우리아파트~ 우리아파트~다정하고 살기좋은 아름다운 우리마을♬"

 

대한민국 아파트의 시작은 18세기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시골에 살던 사람들이 대다수 도시로 이사하여 인구집중현상문제로 살 공간이 부족해지면서부터인데요. 주거문제 해결방안으로 아파트 라는 개념의 공동주택을 세우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좁은 영토에 비해 많은 인구가 모두 살기에 아파트는 최선의 해결방안이라서 도시에 가보면 쉽게 볼 수 있을 정도로
많이 세워졌는데요. 대한민국은 아파트공화국이라는 별명을 프랑스 지리학자가 불렀을 정도로 우리나라는 아파트가 너무나 많습니다.

 

제가 사는 도시인 대전에도 아파트가 많은 도시중 하나인데요. 다 소개하기엔 여력이 안돼서 대전시 아파트 중 최초,최고,최대 타이틀을 가진 아파트만 골라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대전시의 아파트라는 이름의 공동주택은 1971년 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석교동에 남양아파트, 제일아파트 용두동의 쌍용아파트가 세워지면서 아파트의 시초를 알렸답니다.


이 세 채중 잘 알려진 제일아파트를 제일 먼저 소개하겠습니다.

 

대전시 최고(最古) 아파트 석교동 제일아파트 / 대전 최초의 아파트는 철거민의 보금자리

대전시 중구 봉소루로 54-1(석교동)
건설사 : 대전광역시
준공 및 입주 : 1971년 4월
규모: 4층 1개동 48세대

 

대전에서 처음에 세워진 아파트이자 최고(가장 오래된) 아파트는 1971년 4월 중구 석교동에 세워진 제일아파트입니다. 4층 1개동이라 아파트라기보단 연립주택에 가까웠는데 소규모 공동주택을 아파트라고 부르는 일본의 영향을 받았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이 아파트는 70년대 초반에 번성했던 인근 문창시장의 이용률을 더 확대하기 위해 인근에 무허가 판자촌을 철거후 집을 잃은 이주민들에게 보금자리를 제공하고자 세워졌는데요. 대전의 시민아파트라고도 불려진답니다.

 

건설 당시 동네주변이 논밭과 단독주택들로만 있었는데요. 한 건물에 여러 사람이 모여 사는 제일아파트의 등장은 당시로선 큰 화제거리라 다른 동네에서 이 아파트를 보러 구경오기도 했었답니다.

 

제일아파트는 1971년 4월에 지어졌는데 지은지 46년된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오래된 아파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갈라진 흔적이 거의 없고 재도색한지 얼마 안돼 칠벗겨짐이 없이 관리가 잘 되어 있었습니다. 이 아파트에 사는 입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는데 재건축 연한을 훌쩍 넘긴 세월이 지났는데도 아직 사는데 문제 없을 정도로 정말 튼튼하게 잘 지었다고 하시는 말씀을 들어보니 건축 당시 기초공사에 심혈을 기울였나 봅니다.

 

그래서 제일 먼저 생긴 아파트이고, 제일 튼튼한 아파트라며 자부심을 가진 작지만 알찬 아파트랍니다. 석교동 제일아파트에 직접 가보니 지금의 고층아파트와는 사뭇 다른 구조였습니다. 2층부터 복도에 공동화장실이 1개씩 있는데 2층부터 많은 세대를 한 층에 넣다보니까 욕실은 그래로 놔두고 화장실들을 공동으로 쓰게 끔 따로 설치한 것으로 보입니다.


화장실마다  남자소변기 3개 정도가 있었고, 여자화장실의 경우 총 6칸 각 칸마다 수세식 화변기가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집 안에 욕실은 있지만 화장실이 없어서 세대마다 사용후 각자 청소도 했다고 합니다. 최초의 아파트라는 점과 아직도 사는데 문제 없을정도로 정말 튼튼하게 지은 덕분에 2016년 말에 열린 대전 기네스 시민공모전에서 당당히 대전 최고(最古)로 선정되었답니다.


대전시의 명물로 자랑할 만도 하지요?


대전시 최초 주공아파트 부사동 민영아파트
대전시 중구 보문로109번길 31-10 (부사동)
건설사 : 대한주택공사(현 LH)
입주시기 : 1972년 10월
규모 : 5층 2개동 40세대

대전 최초의 아파트개념의 5층 공동주택.

 

 

1971년 3월에 청란여자고등학교 정문 앞 언덕에 대전 최초의 아파트라는 개념의5층 공동주택이 들어서게 됩니다. 먼저 들어선 석교동 제일아파트, 남양아파트, 용두동쌍용아파트, 용전동 현대아파트는 4층 건물이지만 이들보다 1층 더 높은 5층 공동주택이 들어선건 당시로선 큰 화제거리였습니다.

 

또한 대한주택공사에서 지은 대전 최초의 주공아파트라 더욱 의미가 깊답니다. 지은지 45년 이상 되었지만 아직도 재건축 이야기가 없고, 건물 곳곳 갈라진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울만큼 튼튼하게 지어졌고요. 외부와 내부를 재도색하거나 출입문을 현대식으로 개조한걸 보면 아직도 사는데 문제 없나 봅니다.

 

대전시 최초 주상복합아파트 인동 인흥상가아파트
대전시 동구 대전천동로 450 (인동)
건설사 : 모름
사용승인일 : 1977년 1월
규모 : 5층 지하1층 1개동 100세대

1층은 재래시장, 2층부터는 공동주택.

 

지금은 사라진 홍명상가와 중앙데파트가 대전 최초의 주상복합상가였다면 상업공간과 주거공간이 합친 대전 최초의 주상복합아파트는 인동시장골목안에 세워진 인흥상가아파트입니다.

 

문창시장에서 인동네거리로 쭉 오다보면 대전천변 앞 5층짜리 누런 건물이 눈에 띄는데 재도색한지 얼마 안 되었지만
70년대 특유의 건물외관을 하고 있어 한눈에 봐도 정말 오래되었습니다.

 

이 아파트는 대전 최초의 5일장인 인동시장안에 위치해 있습니다. 인동시장은 대전에서 가장 오래된 재래시장 중 하나인데요. 한때 잡곡과 쌀 거래량이 활발해 싸전이라고도 불렸을 정도였고요. 전국을 석권했을 정도로 컸었는데 지금은 인근 동네에 규모가 더 큰 시장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여기로 발길을 돌려버려 많이 찾지 않아 대부분 점포는 문을 닫아 소수의 쌀가게, 기름집,식당만 남아 있습니다.

 

인동시장이 번영했을때는 이곳이 많은 인동시장상인들의 보금자리 역할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아파트 건물 안을 들어가보면 또다른 공간이 나타납니다. 70년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나 다큐멘터리 찍어도 손색없을 만큼 이 아파트는 세트장 같았습니다.

 

건물 안 아파트 1층에도 점포들이 있었는데 90년대 이전에 만든 옛날간판들과 셔터문이 녹슬고 먼지가 수북히 쌓여있는데 문을 닫은지 오래되어 보였습니다. 인흥상가아파트 지하 셔터문이 굳게 닫혀있어 조용히 적막만 흘렀습니다.

 

인흥상가아파트 건물안 모습을 보면지하와 1층까지는 상가이며, 2층부터 5층까지는 중앙이 텅 빈 공간이 존재합니다. 우리가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복도식아파트, 계단식아파트와 다르게 건물 중앙에 공간을 비워놓고 중앙을 둘러싸는 모양을 하고 있었습니다.

 

2층 공간엔 관리사무소와 자전거주차장, 쓰레기 분리수거함이 있었습니다. 2층에는 넓은 공간이 있는데 여기서 입주민들의 겨울을 책임질 연탄을 가득 실은 수레와 교통수단인 오토바이, 자전거들이 주차되어 있었습니다. 여기에 사는 주민이 배달음식을 시키거나 택배기사,우체부아저씨가 물건을 전달 할 경우 차를 건물 바깥에다 세우고 계단을 이용해서 배달해줄 것 같았습니다.

 

아파트를 책임질 관리사무소도 같이 있구요. 2층부터 5층까지 입주민들이 사는 보금자리가 나오는데  아파트 복도에는 빨랫줄을 널어 나물을 말리거나 빨래를 말리시는 주민을 볼 수 있었습니다. 현대식 현관문으로 바꾼 세대도 있었고 아주 오래된 나무문,방범창 그대로의 모습을 아직까지도 유지하고 있는 세대도 있었습니다.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도시가스를 사용한 개별난방으로 대부분 바뀌었지만 아직까지도 연탄보일러를 사용하는 세대도 보였습니다. 1층 상가는 대부분 문을 닫았지만 아파트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인흥상가아파트 옆 대전천변은 1919년 3월 16일 일제에 항거하여 독립만세 운동을 펼친 곳입니다. 이 당시 인동시장은 대전상권이 몰려있어 많은 사람들이 이용했을정도로 번영했었는데요. 광복시기인 1945년까지 일본의 지배에서 독립하기 위해 전국 및 대전에서도 사람이 많이 몰리는 장날에 여기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습니다.


독립만세운동이 격렬해지자 일본경찰들이 일제히 나서 무차별 총격을 가해 수십명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이 분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살기좋은 대한민국은 존재할지 않았을 겁니다. 이 역사적 사건을 기리기 위해 지금도 매년 3월 16일 마다 이곳에서 인동장터만세운동이 열리고 있답니다.


인흥상가아파트 1층 점포 한곳에는 인동시장의 어제와 오늘을 기록으로 남겨 추억하고, 인동시장을 역사적 공간으로
알리기 위해  '인동시장 프로젝트'를 작년부터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실시하신 분들의 바람으로 지금도 많은 대전시민들이 인동을 잊지 않고 찾아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대전시 최초 고층아파트 대사동 보문맨션 / 건축가가 설계한 대전 최초 맨션형아파트

대전 중구 보문로 151 (대사동)
건설사 및 시공 : 김종민건축가,박홍식교수 설계
입주 및 건설시기 : 1976년 완공 1978년 입주
규모 : 2개동 10층 63세대

 

1970년대 후반 들어서 대전시에도 드디어 승강기가 설치된 맨션형 고층아파트가 등장하게 됩니다. 그 주인공은 바로 대사동 보문산 입구에 서있는 한 채의 아파트인 보문맨션 입니다.

 

 

이 아파트는 대전의 건축가 김종민(1934~)과 중부대 박홍식교수가 설계를 맡았는데요. 김종민 건축가 선친이 경영하던 영광연탄공장 자리에 건설해 대전의 고층아파트 시초를 알렸습니다.

 

안에 설치된 승강기도 당시엔  시대를 앞섰다고 볼 수 있었구요. 여기서 맨션은 고급아파트를 뜻하는 영어로, 일본에서 승강기가 있는 고층아파트를 가리킬때 맨션이라고 부른답니다. 보문맨션이라는 이름은 일본의 맨션에서 유래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대사동 보문맨션은 영광연탄공장 부지의 형태에 따라 지은 이 아파트는 위에서 내려다보면 V자형태를 하고 있는 아파트인데 두 동의 아파트 건물을 약간 엇갈려 배치해 한 건물로 합친 구조의 아파트는 단지내 일렬로 배치된 성냥갑 아파트와 다른 신선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준공한지 40년이 다 되어 가지만 균열을 찾아보기 힘들정도로 튼튼하게 지었는데 지금도 여전히 많은 주민들이 살면서
보문산 입구의 대전시민의 든든한 보금자리 역할을 하고 있답니다.

(내용출처 : 이츠대전 2014년 6월호)

 

대전시 최초 민영아파트 문화동 계룡맨션
대전시 중구 계룡로920번안길 60(문화동)
건설사 : 계룡건설
입주시기 : 1978년
규모 : 4개동 5층 120세대
면적 : 89A㎡, 90B㎡, 94㎡, 128㎡

 

70년대 후반에 아파트가 본격적으로 건설되면서 민간건설업체도 아파트 건설에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대전시의 경우는 대전에 본사를 두고 있는 대전향토기업이자 중부권을 대표하는 건설회사인 계룡건설이 1978년 6월 중구 문화동에 5층 4개동 120세대로 구성되어 있는 계룡맨션을 건축하여  민영아파트의 시범을 보여주었습니다.

 

계룡맨션아파트는 전 세대 모두 중앙난방식 기름보일러를 사용하는데 개별난방식 주택,아파트에 살면서 연탄을 사용했던 입주자들에게 이 난방방식은 당시로선 혁신적이었습니다.


얼마 안있으면 재건축예정이라 지금은 벽지, 창문, 샤시 등이 뜯겨져 과거의 모습은 어디로 가고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의 폐허가 되었지만 아직까지도 10세대 정도 소수의 입주민이 살고 계신답니다.

 

재건축되는 건물은 현대아산이 시공하는 아산빌앤더스 라고 하는데 대전 최초의 민영아파트 모습을 뒤로 하고 새로운 보금자리의 모습을 기대해 봅니다.

 

대전시 최초 민영고층아파트 문화동 삼익아파트 / 아파트는 고급스러운 공동주택이라는 것을 보여주다


대전시 중구 서문로 119 (문화동)
건설사 : 삼익건설
입주시기 : 1978년 6월(1,2동) 1978년 12월(3동)
규모 : 3개동 14층 456세대
면적 : 60㎡, 83㎡, 99㎡, 113㎡

 

문화동에 계룡맨션이 대전 최초의 민영아파트였다면 문화동 삼익아파트는 민간건설회사인 삼익건설이 지은 대전 최초의 민영 고층아파트입니다.

 

 

대전에 처음으로 승강기가 설치된 고층아파트인 보문맨션에 이어 1978년 대전 중구 문화동에 14층짜리 삼익아파트 3개동이 등장하자 당시로선 몇 안되는 전망좋은 고층아파트라 분양가가 높아 부유층의 주거공간으로 인식돼 대전의 부유층들이 살기 시작했는데요. 아파트는 고급스러운 공동주택이라는 시범을 보여 주었습니다.

 

삼익아파트가 세워진 부지는 원래 일본군 보병 79연대 제 3대대 본부가 있었던 군부대 토지였는데 요. 1945년 8월 15일 일제지배에서 해방후 63국군병원이 있다가 1973년에 조치원으로 이전을 하게 되었죠. 그 이후 1977년 삼익건설이 국방부로부터 이 토지를 반환받아 14층짜리 아파트를 건축하여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이랍니다.

 

차단벽때문에 벌집아파트라고 불리는 문화동 삼익아파트는 전체 3동 모두 편복도형으로 지어져 있었습니다. 1동과 2동에만 복도벽이 벌집같은 차단벽으로 막혀있는데 전국 어디에서나 볼 수 없는 특이한 구조였습니다.

 

 

이 차단벽이 지어진 이유는 건축 당시 300m 떨어진 군부대와 안기부(지금은 센트럴파크 단지)가 보인다는 이유로 잘 안보이게 가리라고 요구해서 지어졌답니다.


군부대와 안기부는 다른 지역으로 이전했지만 아직까지도 차단벽을 제거하지 않아 주민들 입장에선 전망이 잘 안보여 답답할 것 같습니다.

 

문화동 삼익아파트를 시작으로 대전에는 현대적인 시설을 갖춘 고층아파트들이 서서히 등장하기 시작하여 고층아파트의
시대를 알려준 기념비적인 아파트라 할 수 있습니다.

 

대전시 최초 고층아파트단지 태평동 삼부아파트 1단지 / 대전 최초의 15층 아파트

대전시 중구 태평로 80(태평동)
건설사 : 삼부토건
입주시기 : 1979년 12월
규모 : 5개동 15층 705세대

 

부여 출신 삼형제가 세운 건설회사 삼부토건이 태평오거리인근 부지에 15층 5개동 삼부아파트를 세우면서 대전에도 본격적인 고층아파트 단지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태평동 삼부아파트1단지는 1979년 말에 입주한 대전 최초의 고층아파트 단지로서 단지안 넓은 주차장, 단지 내 상가건물을 건축해 입주민들이 생활하는데 편리하게끔 조성되어 있었습니다.

 

입주 40년을 앞두고 있는 대전에서 가장 오래된 아파트 중 하나이지만 균열을 보기 힘들정도로 튼튼하게 지어졌는데요. 인근에 있는 서대전역, 지하철역 등 교통요건도 좋고 학교, 은행, 대형마트, 주민센터와 같은 관공서를 걸어서 10분 이내에 갈 수 있을 정도로 생활편의시설이 좋은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아직도 많은 입주민들이 어린 자녀분과 같이 살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열병합 발전시설 교체공사 준공기념과 아파트 유래가 적힌 비석이 세워졌는데요. 비석 내용을 읽어보니 삼부아파트 1단지가 세워진 철도 침목 공장부지였는데 원래 연초제조창을 건설하려고 했으나 고층 건물이 들어설 명당자리라고 반대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연초제조창(KT&G)은 신탄진과 옥천으로 가고 이 땅을 삼부토건이 인수하여1978년 10월 7일에 단지조성 승인을 받아 건축한 후에 1979년 12월에 완공하여 지금의 삼부아파트 1단지가 탄생했답니다.

 

15층 5개동 705세대로 구성된 삼부아파트 1단지는 분양 당시 대전시 최대 고층아파트 대단지였습니다. 문화동 삼익아파트와 함께 첫 입주 당시 분양가가 높아 고급단독주택에 사는 부자들만 모여 살았답니다. 아파트 복도에 깔린 타일 5동 모두  편복도형 아파트지만 바닥에 깔린 누런 모자이크타일이 요즘 흔히 보는 차가운 회색빛 콘크리트 바닥보다 이국적이고 멋스러웠습니다.

 

삼부1단지를 시작으로 2단지, 3단지, 4단지, 5단지, 6단지(새롬아파트)까지 지어 이 회사에서 지은 아파트만 3400여 세대에 달할 정도로 태평동은 거대한 아파트 숲을 형성했습니다. 태평동에 고층아파트 대단지 삼부아파트의 등장은 그야말로 대전시 주거문화의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대전시 최초 대형아파트 삼성동 빌라맨션 / 아파트에도 대가족이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기념비적인 아파트
대전시 동구 대전천동로 618(삼성동)
건설사 : 동신건설
입주시기 : 1980년 12월
규모 : 12층 2개동 120세대
면적 : 147㎡, 161㎡, 177㎡

 

대전 고층아파트 시대가 열리자 드디어 대전에도 50평 이상의 삼성동 빌라맨션을 필두로 최초의 대형아파트가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대전 동구 최초의 고층아파트이자 옛 삼성동 돈모공장 자리에 12층짜리 고층아파트가 세워진 빌라맨션은 민간건설사인 동신건설에서 시공하였는데요. 보문맨션, 삼익아파트, 삼부아파트 보다 더 넓은 면적에 현대적인 시설덕분에 아파트는 넓고 고급스러운 공동주택을 사람들에게 각인시켜주었습니다.

 

이 아파트 첫 입주당시 가수 나훈아와 김지미 부부가 입주하여 더욱 유명해져 고급주택에 살던 부유층들이 모여 살았다고 합니다. 지은지 30년이 넘었지만 지금 다시봐도 고급스러운 외관의 아파트인데요. 대전시 최초 대형아파트인 삼성동 빌라맨션이 준공된 이후 타 건설사에서도 50평 이상의 대형아파트를 짓는데 아파트에도 대가족이 사는데 넉넉하다는 걸 인식시켜 아파트에서도 대가족들이 살기 시작했습니다.

 

(중략)

 

▲위 글은 '2017 제1회 대전시 블로그 공모전 수상작(입선)'입니다. 원문(대전시 최초 최고 최대 아파트 이야기)은 아래 이미지 클릭하면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