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대전일상/대전사람들

대전청춘톡톡(10)열린책장, 소리를 보여주는 전국최초 수어영상도서 만들다



청각장애인을 위한 사회적기업 '열린책장'을 찾았던 날은 이른 아침부터 비가 쏟아졌습니다. 따스하게 반겨주는 열린책장 식구들로 인해 축축하게 내려앉은 레인부츠의 빗물도 금새 마르는 듯 했습니다.

 

 

▲ 사회적기업 '열린책장'을 만나다 (홈페이지: http://www.wingbook.co.kr/)

 

 

책으로 좋은 일을 해보자는 취지에서 시작한 일이 청각장애인을 위한 콘텐츠를 제작하는 사업이 되었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던 강화평 대표. 인터뷰 내내 특유의 사람 좋은 미소가 그에게서 떠나질 않았습니다. 동화책을 모르고 살았다는 청각장애인의 사례가 계기가 되어 시작한 일이, 어느덧 청각장애인을 위한 사회인식개선을 목표로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하며 발전했다고 하는데요. 


사람 중심 철학이 깃든 '열린책장'의 보물같은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똑부러지게 이야기를 이끌어나갔던 윤지연 부대표와 청아한 눈망울이 인상적이었던 김미정 팀장의 이야기도 함께 담았습니다.



듣지 못하는 언어, 제대로 볼 수 있다면...



장애가 있건 없건 모든 아이는 언어발달시기를 똑같이 겪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음성언어가 아닌 시각언어로 보고 자라야 하는 청각장애아들에게는 비장애아들이 겪는 음성기반교육의 언어 문화가 맞지 않습니다. 시각언어로는 더 많이 표현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릴적부터 '수화'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는 현실은 드물다고 합니다.


어린 아이가 자라며 말을 하고 글을 읽고 쓰기 위해서는, 수많은 단어와 문장을 듣고 반응할 수 있는 문화권 내의 자연스런 단계가 필요합니다. 언어는 글로만 배우는 것이 아닌, 문화로 형성되는 것이죠.

 

음성언어가 체득된 이후에서야 글을 배우고 스스로 책을 읽기도 하고 일기를 쓰는 등 자신만의 글쓰기가 가능해지게 됩니다. 그런 단계가 없는 청각장애인들에게 '책'이란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할까요. 듣지는 못하지만 볼 수 있다고 해서 글로 표현된 내용들이 그들에게 충분히 가 닿을 수 있을까요? 청각장애인에게 한국어는 제2언어입니다.


열린책장은 듣지 못하는 그들에게 허락된, '볼 수 있다'는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고, 글로 소통하는 것이 아니라 1언어인 '수어'로 소통하는 '수어영상도서' 컨텐츠를 제작하고 있습니다. 좀 더 특별한 건, 어떠한 예산지원없이 수어영상도서 컨텐츠를 제작하여 보급하는 일이, 일반 기업의 형태에서는 열린책장을 통해 최초로 시도되었다는 겁니다.



▲ 열린책장에서 개발한 수어이모티콘 캐릭터와 상품들



Q.보통 청각장애인들은 수어(수화)를 언제부터 배우게 되나요?


강화평 대표 : "수화를 언제부터 배운다는 통계는 일단 없는데, 가정에서 수화 쓰는 사람 있다면 자연스럽게 배우고, 그게 아니면 어린이집이나 초등학교에서 친구를 만나서 배우기도 합니다. 청각장애아들이 전부 유전적 경우는 아니에요. 부모가 청각장애가 있다면 수화를 같이 쓰면서 배우기도 하지만, 그런 경우가 아니면 일찍 배우기 어려운거죠. 영유아교육이나 초등교육쪽에 수화교육과정이 없으니까요." 


"많은 사람들이 청각장애인들에게 글 읽는 교육을 시키면 차라리 낫지 않을까 얘기해요. 청각장애인들의 한글은 1언어가 아니라 2언어에요. 실제 한국에 10년정도 산 베트남인들도 글을 쓰고 읽는 건 어려워하잖아요."


"청각장애인들과 함께 하다보니 소리를 듣고 싶다는 게 아니라 소리를 보고 싶다고 해요. 그 메시지가 제일 큰 것 같아요. 저희는 소리를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는거에요." 



‘열린책장'은 수어영상도서 뿐만 아니라 수화TV채널 SON(Sign language ON)TV를 운영하며 24시간 영상콘텐츠를 배포하고 있는데요. 그와 함께 웹툰, 이모티콘 등을 통한 청각장애인에 대한 인식개선 콘텐츠도 개발하고 있습니다.


지난 4월, 열린책장은 장애인의 날을 맞이하여 수화기브티콘을 출시하기도 하였는데요. 카카오의 모바일 후원 캠페인 수화기브티콘과 함께 사회공헌 플랫폼인 ‘같이가치 with kakao'(https://together.kakao.com/fundraisings/37148)를 통해 청각장애학생들의 꿈을 이루어주고 희망을 심어주기 위한 장학금 모금 지원 프로젝트입니다. 무려 2만여명이 모금에 동참하고 기부에 참여하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수화교육과 구화교육



청각장애인의 다양한 의사표현을 돕는 수화컨텐츠는 사실 아직까지는 국내에서 많이 활성화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만큼 사회인식이 부족하다고 볼 수 있는데요. 강화평 대표는 수화를 배운다는 것이 언어발달을 저해한다는 잘못된 생각부터 바꿔나갈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외국어가 있듯, 수화도 다른 언어일뿐이라고 말이죠.



▲ 열린책장에서 개발한 수어이모티콘((2013년 소셜벤처 경연대회 우수상, 특별상을 받은 아이디어)



강화평 대표 : "최초에 프랑스 교육이 미국으로 넘어올 때, 수화교육과 구화교육이 둘다 넘어왔는데 구화교육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런데 구화교육을 하니 아이들이 생각발달이 느리더라, 수화교육을 했더니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표현력이 생기더라. 그래서 수화교육으로 다 돌아갔죠. 우리나라만 아직 구화교육 중심이에요."


"작년에 수화언어법이 통과되었거든요. 그러면서 구화학교에서도 수화예산이 나오니 수화교육을 시작했다고 들었어요. 모든게 돈의 논리로 돌아가는 것 같아요. 씁쓸하죠." 



윤지연 부대표 : "호주같은 경우에는 아기가 청각장애를 갖고 태어나잖아요. 세 살인가 다섯 살부터인가 그 집에 수화통역사를 보내줘요. 아이뿐만 아니라 부모에게도 수화교육을 해요. 이 아이가 수화를 배우면서 자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거죠. 구화를 할 건지 수화를 할 건지 그 툴은 본인이 선택해야 하는 것 같아요. 사실 수화냐 구화냐의 문제를 따지기 보다는, 이들이 장애를 가진 처음부터 본인만의 방식을 선택하여 언어를 배울 수 있는 그런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환경이 만들어지면, 농인들도 제약없이 꿈을 꿀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보통의 꿈을 꾸고 싶은 사람들



대다수의 콘텐츠들은 열린책장 직원들의 손과 재능을 통해 탄생하고 있는데요. 열린책장 직원 6명 중 4명이 청각•지체 장애인입니다. 수화캐릭터 및 제품 디자인, VJ, 방송MC, 영상편집 등 다양한 업무를 담당하는 그들을 사무실에서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 '열린책장' 식구들



윤지연 부대표 : "요즘 청각장애학생들에게 꿈을 물어보면, 웹툰작가나 디자이너라는 대답이 많이 나와요. 아니면 사회복지사...또는 딱히 없는 경우도 되게 많죠. 그런데 사실 하고싶은게 있어도 사회가 받아주질 않아요. 채용을 하더라도 대부분 알바나 계약직으로 채용을 하죠. 직종도 단순노동, 공장쪽으로 되게 많이 빠져요."


"청각장애인중에서도 디자인 전공하는 분들이 꽤 있어요. 손재주들이 좋은 편이에요.그림도 잘 그리고 디자인적인 능력도 되는데 졸업하고 나오니까 채용하는 회사가 없는거에요. 언어적인 소통이 어렵다는 이유죠. 능력있는 청각장애인들이 자기 전공과는 다른 일들을 해야만 하는 현실이 쉽게 나아지진 않네요." 



청각장애를 가진 하늘이의 일상을 담은 에세이 카툰 <하늘색의 꿈>의 그림을 그린, 열린책장의 디자이너 김미정 팀장. 그림을 좋아해서 디자인과를 갔었는데, 졸업 후 청각장애인을 디자이너로 채용하는 회사가 없었다고 합니다. 어렵게 취직을 했지만, 일반회사에서 전공과 다른 사무보조로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 에세이 카툰 <하늘색의 꿈>에 사인중인 열린책장의 김미정 팀장



Q.어떤 계기로 열린책장에서 일을 하게 되셨나요?


김미정 팀장 : "원래 집은 서울이에요. 서울에서 계약직이 끝나서 쉬고 있는데, 동생이 열린책장에서 디자이너를 구한다는 정보를 주더라구요. 처음엔 수어이모티콘도 잘 몰랐었어요. 그래서 망설여졌는데...워낙 디자인 일을 하고 싶었던지라...용기내서 도전했고, 붙은거죠."


"예전에 다른 회사 다닐 때는 회의에 참석하는 게 어려웠는데, 여기 와서는 회의 할 때도 수화로 할 수 있고 같이 참여할 수 있어서 되게 좋은 것 같아요. 이전엔 수화 없이 의사소통 하는 게 완벽하지 않아 어려웠어요. 만약 제가 수화를 몰랐더라면 여기서도 적응을 못했겠죠."



청각장애인들이 일할 수 있는 기업이 많이 없어 열린책장의 채용이 더욱 반갑게 느껴졌다는 미정씨. 전직원들이 소통하기 위해 비장애인 식구들도 꾸준히 수화를 배우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따뜻했습니다. 



▲ 지난 4월 열린책장에서 출시했던 '수화기브티콘(기부+이모티콘)



Q.장애인들도 자신이 하고 싶은 분야에 대한 희망을 품을 수 있도록 하는 사회인식이 필요한 것 같아요. 


윤지연 부대표 : "저희가 결국 얘기하고 싶은 것은, ‘장애는 극복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거에요. 휄체어를 탄 제2의 아인슈타인으로 불리는 스티븐 호킹박사나 베토벤, 헬렌켈러가 장애를 극복해서 인정받은 건 아니잖아요. 그들의 능력이 있었기에 인정받은 거잖아요. 그런데 그런 능력들이 장애라는 단어로 가려지기도 하거든요."


"장애를 극복하고 탄생한 위인들이라 얘기하는데, 장애가 아니라 그 사람들의 능력을 먼저 봐주라는거죠. 장애가 있는 사람을 아무것도 못하는 불쌍한 사람으로 보는게 아니라, 그냥 그 사람은 어디 한 군데가 불편하다는 것을 인정해주라는 거죠. 실질적으로 장애인들이 바라는 부분도 그런 거에요. 그저 인정해주면 될것을 자꾸 극복해라 극복해라 하니까... 문제죠."



사람 중심의 소통을 위하여...

"저희가 또 한번 시도아닌 시도를 해봤던 건 이중통역이에요. 청인이 얘기를 하면 청인이 그걸 듣고 수화통역을 하고, 그것을 본 농인이 또 수화통역을 하는거죠. 그럼 농인들이 더 잘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이중통역을 한 적이 있어요. 수화통역사라고 해도 청인문화에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문장의 형식도 청인스타일에 맞춰서 통역이 될 수 밖에 없거든요. 이걸 한 번 더 해주는 게 필요한데, 그걸 생략을 시키죠. 인건비 때문이에요. 사실, 사람 중심에서 생각했을때에는 그렇게 새로운 시도가 필요한거죠."


"저흰 늘 수혜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느냐를 생각해요. 사람중심의 사업이죠."



사람중심 기업 '열린책장'을 응원합니다. '소리를 보고 싶은' 청각장애인들의 꿈도 응원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