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대전일상/대전사람들

대전청춘톡톡(3)사회적 시간에 쫓기지 않는 청년 3인방을 만나다

 

 

"대화에서 완전히 새로운 것, 전적으로 놀라운 것이 나오는 일은 드물었다. 그러나 모두가, 가장 진부한 대화도, 나직하고 꾸준한 망치질로 내 마음속의 한 점을 계속 두드렸다. 모든 대화가, 나의 형성에 도움이 되었다. 모든 대화가 내 허물을 벗는 일에, 알껍데기를 부수는 일에 도움이 되었던 것이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헤르만 헤세 '데미안'中에서-



공간 속 이야기 ⓒ 그림 권순지
▲ 함께 하는 공간 그리고 이야기 ⓒ 그림 권순지


 

그와 그의 공간을 찾은 이들과 나눴던 이야기를 정리하다 보니, 헤르만헤세의 작품<데미안>의 몇 구절이 내내 뇌의 상공을 빙글빙글 맴돌았습니다. 마음을 두드렸습니다. 어느 한 단어도 놓치고 싶지 않은 심정으로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치열하게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사는 일이 힘든 시대죠. 스스로의 의문에 충실하며 소중한 꿈을 간직한 이들을 향해 지나치게 ‘이상적이다, 낭만적이다, 현실을 모른다’고 비판하는 의견도 드물지 않을 것이라 여겨집니다.

 

그러나 지나간 시대를 관통하는 성찰과 그 고전은, 끊임없이 단 한번뿐인 인생을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따라 주도해 나가는 청년들의 움직임에 반기를 들 수 없게 만듭니다. 헤세는 작품 <데미안>을 통해 ‘자기 내면을 통한 비극적 현실세계의 극복’을 절실히 소망했죠. 다시 지금 현실로 돌아와 헤세의 전언에 어울리는 삶을 사는 대전 청년의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청년창업가 김창헌의 꿈 공장

 

“서로 꿈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좋아요. 요즘 너무 재밌어요. 하루하루가.”

 

은은한 빛으로 온 신경을 집중하게 만드는 조명과, 말하는이의 나직한 음성을 조용히 감싸는 음악이 공간을 채우던 그 날. 규정되지 않은 형식의 언어가 자유로이 부유하던 시간. 여전히 불안과 혼란 속에 살고 있는 30대 청년이 작심하고 찾은 곳은 또 다른 청년들의 공간입니다.


한 청년창업가의 개인 거주공간이자 사무실이며, 비슷하게 꿈을 꾸는 청년들의 양심과 철학이 공존하는 공유 공간인데요. 조금 특별하게 여겨지는 공간의 주인장인 김창헌 씨는 지난 2월 초, 대전시가 주최한 <청춘소통 밤새토론> 현장에서 만난 열혈청년입니다.

 

봄기운이 슬며시 고개를 들던 어느 일요일 오후. 특유의 반짝이는 눈빛과 환한 웃음으로 맞이해주던 청년 김창헌 씨. 호기심이 동하여 찾은 공간에서 차곡차곡 쌓이던 말들은, 멈출 수 없는 엔진을 단 자동차가 질주하듯 이어졌습니다.


"사람에 대한 이해, 창업의 중요 요소중 하나에요."

 

부모님도 걱정 하셨을 만큼 그 규모가 젊은 청년 혼자 살기에는 비교적 큰 집. 창헌씨 본인도 고민을 많이 했답니다. 이 공간을 찾기 전, 원래 그는 초창기 꾸렸던 창업팀의 팀원들과 공동으로 월세를 부담하며 지냈었다고 하네요. 그러다가 휴학, 유학, 교환학생 등 팀원들의 사정으로 인해 함께 거주할 수 없게 되며 새로운 공간을 오래도록 찾아다니다가 지금의 공간을 찾게 된 건데요. 

 

 

▲ 활짝 웃는 김창헌 씨와 그의 공간을 찾은 이들. 이재민 씨(왼쪽)와 나재성 씨(오른쪽)



“공간을 단순히 나만의 공간으로 쓰지 않고… 주변에 꼭 우리 팀이 아니더라도 되게 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었거든요. 어떻게 보면 제 성격도 작용한 거겠죠. 남을 돌보고 그런 것에 대해서 거부감도 적은 편이고, 기본적으로 제 자신이 만남에 대한 욕구가 있었어요.”

지금의 이 공간을 찾기 위해 썼던 오랜 시간. 그에 뒤지지 않는 노력으로 좀 더 머물고 싶은 공간의 재탄생이 이뤄졌습니다. 낡은 주택 2층 공간은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전혀 다른 세계로의 진입을 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창헌씨의 공간은 그야말로, 뜻 맞는 친구들이 ‘놀러오는 것’을 꺼리지 않고 환영하는 집주인의 애정이 깃든 곳인 셈이죠.

“이런 이야기가 되는지 모르겠네요. 학창시절부터 얘기를 하자면 고등학교때 나름 공부도 잘 한다고 생각해서 카이스트에 왔어요. 그 때만 해도 자기주장도 강하고 나만있으면 돼! 이런 생각을 했는데 오히려 전 카이스트에 와서 적응을 못했어요. 학사경고를 두 번 받고. 짧은 시간에. 그러고 나서 되게 충격을 받았죠."

 

"제가 정말 공부를 잘하는 부류라고 생각을 했는데. 카이스트에 오니까 공부를 못하는 부류가 된 거에요. 즐기면서 공부를 할 수가 없어지니 많이 힘들었어요. 그리고 십대 때 다른 애들이 나를 보던 시선이 내가 지금 쟤네들(카이스트 학생들)을 보는 시선일까. 생각 되면서 문득 제 자신에 대해 돌아보게 된 거죠.”

 

카이스트 산업디자인과에 재학 중인 창헌씨는 현재 앱 개발을 하며 활발히 활동 중인 대전의 청년창업가입니다. 카이스트 학생의 입장에서 겪던 경험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주변인들을 둘러보게 되었다는 창헌씨의 이야기는 낯설지 않습니다.

“나에게 공부가 아닌 어떤 자질이 있을까. 또 옆에 있는 친구에겐 어떤 자질이 있는 것일까. 내가 너무나도 세상을 둘러보지 않았구나 싶더라고요.”

창헌씨의 자신을 이해하고자 한 노력은 주변사람에 대한 이해로 뻗치게 되었습니다. 사방을 둘러보지 않고 책상 앞에 앉아만 있던 시간, ‘무엇 때문에 이렇게 공부를 하고 있나.’ 자기 질문을 끊임없이 하며 공부 말고도 할 수 있는 것, 진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놓지 않은 청년. 지금은 그 고민의 해결점을 찾아나가는 시작인 셈이죠. 어쩌면 모든 일의 시작은 ‘사람을 이해’하는 것에서 비롯되는 것 아닐까요.

“그 사람에 대해서 이해를 하고 그 사람만이 가진 특징이 무엇이고 나와 다른 점이 무엇이고… . 그런 차이점을 아는 것이 사실 창업을 할 때도 굉장히 도움이 되요. 예를 들어 제품은 하나지만 수 만 명의 사람을 만족시켜야 할 때, 어떤 합리적 기준에 맞춰서 만들 것이냐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게 되요. 이 합리적이라는 게 나의 주관이 아니라 굉장히 객관적이지만 사실 주관들이 모인 객관적인 것. 그게 합리적인 것이거든요. 이 합리성에 대해서 고민하다 보니까 사람을 만나는 게 더 즐겁게 느껴질 수가 있었어요.”


공간 속 이야기 ⓒ 그림 권순지
▲ 공간 속 이야기 ⓒ 그림 권순지



공간에서 만난 또 다른 청년들

그 날 창헌씨의 공간에는 마침 비슷한 꿈을 지닌 청년들이 작업도 하고 대화를 나누기 위해 모여 있었습니다. 굵직한 조명이 내리쬐는 탁자에 둘러앉은 그들의 인연과 사연이 궁금한 눈빛을 하고 있으니 척하면 척인 창헌씨가 먼저 말을 꺼냅니다.


“제 스스로도 일부러 초대를 많이 해요. 여기 재성군도 자주 오고, 같이 일하는 프로그래밍 하는 저 친구도 작업을 하며 자주 와서 머물고 있어요.”


창헌씨와 재성씨는 동갑내기입니다. 재성씨가 다니는 충남대의 한 교육프로그램 강사로 찾았던 창헌 씨. 그 때의 만남 이후로 최근 청춘밤새토론 현장에서 또 만나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고 하는데요. 최근 충남대와 카이스트가 연합하여 창업활동조직을 꾸리고 있는 상황에서 둘의 만남은 서로에게 도움도 주고 자극도 되는 건강한 관계입니다. 


사람과의 만남이 주는 충만함을 잊고 살 수 밖에 없는 현실에 처한 시대의 젊은이들. 조금만 옆을 둘러보면 어깨를 도닥여줄 친구가 있는데 말이죠. 


어린 시절, 학원강사로 활동하셨던 부모님 덕분에 공부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는 재성 씨는 이후 외국에 나가 학창시절을 보내며 조금은 자유롭게 사고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네요.

 

“나름의 방황 아닌 방황을 하면서 시간을 많이 쏟았죠. 내면의 저에게 많이 질문 했어요. 내가 하고 싶은 게 뭐지? 내가 어떤 가치관을 가진 사람인가 고민을 많이 했어요.”

성적으로 1등을 하지 않아도 행복한 곳에서 다양한 흥미로운 활동(가구공예, 요리 등)을 하며 자신을 쌓는 시간을 보낸 재성씨. 그리고 지금 다시 한국의 대학생 신분이 되어 살고 있는 그는, 여전히 ‘줄 세우기’ 문화인 학교시스템에 기가 질리지만 그 안에서 해보고 싶은 것을 향해 집중하며 청춘을 보내는 중입니다.



▲ 끝날줄 모르고 이어진 청년들의 수다



끝날 것 같지 않은 이야기의 흐름 안에 다른 방에서 혼자 프로그래밍을 하던 대학생 재민 씨가 나와 합류했습니다. 창헌씨와 재민 씨는 아이템 공유를 통해 찾아낸 새로운 방향 속에서 현재 같이 작업하고 있는 관계입니다. 기획자와 개발자의 만남인 셈이죠. 


재밌어서 파고들다가 이전 금융정보 유출사건의 문제를 처음 발견해 경찰에 제보까지 할 수 있었다는 재민 씨. 정작 본인은 그 것이 대단한 건 줄 모르고 단순히 재밌어서 얻은 결과지만, 결국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냥 호기심이 있었으니까 눈에 보였던 것 같아요. 어려운 건 아니었어요.”

이제 대학생이 된지 얼마 안 되었거나, 대학 졸업을 얼마 남기지 않았거나… 이들의 공통점은 ‘하고 싶은 것’에 대하여 이야기 하는 일이 어색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꿈이란 것은 그리 거창한 건 아니죠. 하고 싶은 일을 가까이 두고 그 것에 푹 빠져 사는 청년들. 그들은 꿈꾸는 단계를 벗어나 이미 꿈 안에서 살고 있습니다.



나재성
▲ 충남대 창업동아리 대표 나재성



‘사회적 시간’에 쫓기지 않는 삶

“여태껏 살면서 제가 하기 싫은 일은 절대 하지 않았어요. 그렇게 살다보니 남이 시키는 일은 너무 하기 싫은 거예요. 내가 납득이 되고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면, 온몸에 공황장애 오는 느낌도 오고. 남이 시키는 일은 싫으니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겠다 싶어서 창업을 생각 한 거죠. 어렸을 때부터 프로그래밍을 하기도 했고요.”

현재 한밭대학교에 재학 중인 재민 씨의 말입니다. 온순한 얼굴에서 느껴지지 않는 하고 싶은 일을 향한 그의 집념은, 곁에 앉아 있는 형들인 창헌씨나 재성씨와 무척 닮아 있었습니다.


생각을 많이 나눌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하고 싶다는 재성씨. 옆에서 조용히 듣던 창헌씨는 이런 말을 덧붙입니다.

“너무 즐거워요. 이런 친구들 만나면 전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얘기하니까요. 해야 되는 것에 대해서 논의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시간에 쫓기는 대한민국에서의 청년들의 노력에 대해서도 이야기 합니다. 


일정한 시기가 되면 대학에 가야하고, 어느 시기가 지나면 졸업을 해야 하고, 군대를 가야  하고 결혼도 해야 하고 애도 낳아야 하는 정해져 있는 사회적 시간. 많은 사람들이 자연스레 스스로 그렇게 되길 바라고, 주변에서도 당연히 여기는 그런 삶에 대해서 달리 생각해 보고자 한다는 창헌 씨는 학교공부 보다는 현재 하고 있는 일에 집중하고자 올해도 휴학신청서를 냈습니다.


“그런 삶에서 과연 얼마나 많은 창의적 생각들이 나타날 것이며, 그런 사회에서 개개인의 꿈을 펼칠 수 있을지가 아주 의문이 드는 거죠. 사회적 시간에 쫓기지 않고 자신의 시간을 찾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봐요.” 


 


▲ 청년창업가 김창헌 



대청넷, 청춘

과연 공간이라는 것이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인지, 아님 반대로 그 공간이 사람으로 인해 채워질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궁금했다는 창헌씨. 이곳에서 사람들을 만나며 공간의 구성과 시스템마저도 결국 ‘사람’이 해야 할 일이라고 절감했다고 합니다. 결국 사람이 공간의 문화를 형성하는 것.


그 날, 세 명의 청년들이 채우고 있던 공간엔 ‘하고 싶은 일’을 더 잘 하기 위해 모인 이들의 설레는 공기가 가득했습니다. 한 개인의 공간은, 비슷한 가치관을 지닌 청년들이 자주 모여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만남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현재, 그 내용은 개인의 문제에서 더 확장된 지역사회의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범위까지 확대되었습니다.



이재민

▲ 한밭대학교 학생 이재민



대청넷 위원으로 발족되어 ‘설자리’분야의 분과에서 활동하게 된 이들. 

“권선택 대전시장님께서 청년들 이야기를 많이 들으려고 하시는 건 맞아요. 그리고 나라에서도 그런 분들이 윗분들 중에 많이 있어요. 그런데 아랫사람 이야기가 윗사람에게 들리기 어려운 구조라는 게 현실이죠. 그리고 사실 윗분들도 문제가 있지만 청년들도 문제라고 생각해요.”


“사실 밑에 있는 사람들도 뭔가 요구를 하려면 그만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거죠. 그러니까 들을 자리를 마련해주면 말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고, 반대로 청년들이 말할 준비가 언제든 될 수도 있으니 언제든 윗분들은 들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고요.”


“그런 청년들의 생각을 정리해주는 역할을 대청넷이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발적인 청년의 힘이 지역의 청년문제를 해소시킬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이 지나치진 않습니다. 그러나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 있습니다. 그런 청년들을 끌어줄 수 있는 힘을 먼저 보여주는 것이 대청넷을 주관한 대전시의 역할이라는 것이죠. 이들의 주장처럼 말하는 자와 들어주는 자의 조합이 균형 있게 이뤄져야 한다는 것. 


실제 활동에 나선 청년위원이 전한 대청넷의 방향이 순조롭게 흘러가기를 염원합니다. 또 이미 꿈을 살고 있는 청년들이 곳곳에 더 많이 있어주기를. 대전 청년들의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기자단의 SNS로 연결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