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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일상/대전사람들

대전청춘톡톡(1)희피(喜披) 이예나, 한복 치마폭에 남미를 품다

청춘 이예나

 

'음…. 두 달? 길어야 서너 달?'

 

이렇게 예상하고 떠났던 여행이었답니다. 그런데 2주 만에 강도를 당하고 빈털터리가 됐답니다. 그야말로 망연자실, 꼬박 일곱 시간동안 어둠이 가시고 동틀  때까지 공원에 앉아있었답니다. 그 곳에서 맞이한  눈 부신 아침 풍경. 스페인과 아프리카, 인디언…. 다양한 문화가 하나로 녹아든  도시에 순간 매료 되었답니다.

 

 

[하회마을, 안동] 참 예쁜 젊음입니다.

 

 

440 여일이 넘는 남미 여행은 그렇게 시작됐다네요. 그리고 다시 동해바다 울릉도까지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꼭꼭 새기며 누볐답니다. 작가의 가슴을 가득 채웠던 그 따뜻한 느낌들은, 인화지가 아닌 캔버스 안에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카르타헤나, 콜롬비아] 이 곳의 아침 풍경에 매료되어 남미여행을 포기하지 않았답니다.

 

 

이예나 작가는 자타공인 '지극히 평범한, 또 지극히 소심한 대한민국 청춘'이었다네요. 이 시대 여느 대학생처럼, 용돈부터 학비까지 스스로 벌어야했답니다. 어학연수를 위해 미국에 머물던 차에, 카메라와 배낭을 메고 훌쩍 떠났더랍니다. 한복입고 세계를 여행하는 스무 일곱, 나이도 삶도 열정도 부럽기 그지없는 아름다운 자유인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희피(喜披) 이예나, 한복 치마폭에 남미를 품다

 

 

Q. 한복을 입고 여행을 해야겠다는 계기가 있었나요? ‘한국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하신 건가요?

"(웃음) 아, 그렇다고 하기에는 오글거리죠. 저는 평소에 한복을 좋아했어요. 그런데 다들 한복이 불편하다고 하죠. 그래서 '왜 불편하다고만 할까? 정말 불편할까? 그럼, 내가 직접 입어보고 다녀야겠다'고 생각한 거죠. 저고리 세 벌과 치마 세 벌, 잘 접어서 돌돌 말면 다른 옷들만큼 부피가 작아져요. 실은 한복을 입고 다니는 그 매일매일이, 저를 특이하게 바라보는 시선들과의 싸움이기도 했어요."

 

Q. 남미를 여행지로 정한 이유가 있나요? 게다가 446일동안 머물렀다는데, 처음부터 그렇게 계획하셨나요?

"남미에 가기 전에 미국에 머물렀었어요. 그래서 남미에도 두어 달 다녀와야지 했던 것이, 그렇게 길어졌어요. 처음 계획은 길어야 네 달을 예정했는데, 2주만에 강도를 당하게 됐어요. 강도를 당한 날, 밤새 공원에 앉아있는데 현지인들이 그냥 지나치지 않는 거예요. 외국인 여행객인데  딱 보기에도 불쌍하게 앉아있으니, 돈도 주고 먹을 것도 주고 가더라고요. 자기가 먹던 빵을 바로 떼어 주시기도 하고요. 인심좋은 현지인들을 만나면서, 한 나라 혹은 한 마을마다 적어도 한 달동안은 머물러보기로 한 거죠."

 

Q. 400여 일 동안 남미를 다니면서 그 여행동선은 어떻게 짰나요?

"처음 짧은 여행을 계획하면서 대략적인 동선을 짰었죠. 여건이 된다면 꼭 들러보려고 여행지들을 정하고 출발했는데, 그게 2주만에 틀어진거죠. 그래서 한 곳에 머물면서 친해진 친구들에게 물어봤어요. “여기 근처에 어디가 좋아?” 그렇게 가까운 다른 도시를 소개받고 머물고 또 소개받아 머물면서 다녔어요. 어떨 때는 현지인 친구들과 함께 그들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신 곳으로 여행가기도 했어요. 낡은 시골버스에 몸을 실으면 “네가 이 버스를 탄 최초의 외국인이야!”라고 하더군요.(웃음)"

 

희피 이예나

 

 

Q. 페루 마추픽추를 바라보는 사진이 가장 인상 깊습니다. 그야말로 자유로움이 오롯히 담겨있는, 이 사진에서는 한복에 남미 전통문양이 있네요. 일부러 만든 건가요?

"예, 다림질 실수로 우연히 만들게 됐어요. 페루의 다리미는 온도조절이 안되더라고요. 그래서 저고리에 구멍이 났고, 어떡하나 고민하다가, 페루의 전통문양 보자기를 오려서 꿰맸어요. 평소에도 한복에 접목하고 싶었고요. 페루 분들이 이 한복을 참 좋아하시더라고요."

 

Q. 여성 혼자 여행다니면 무섭지 않으세요? 뉴스를 보면, 국내외로 워낙 흉흉한 소식이 많아서 겁이 나던데, 실제 강도도 당하셨잖아요?

"무서웠죠. 저도 전에는 국내여행도 혼자 다니지 못할 만큼 소심했어요. 4년 만에 만난 친구들이 바뀐 제 모습과 성격에 깜짝 놀라죠. 뉴스에서 나쁜 소식을 많이 전한다는 건, 아직 세상에 좋은 이야기가 더 많기 때문이 아닐까요? 우리나라에서 히치하이킹하면 얼마 만에 차를 얻어탈 것 같으세요? 5분이 채 안걸렸어요. 제가 무서운 만큼, 태워주는 분도 마찬가지거든요. 처음부터 흔쾌히 태워주는 분도 있고 그냥 지나쳤다가 다시 돌아오는 분들도 많았어요. 남미 여행지에서 강도를 당하는 건 여행객 탓도 있어요. 한 달 열심히 일해도 20만원 겨우 되는 월급을 받으니, 그 이상되는 여행객의 값비싼 카메라와 휴대전화, 여행가방, 옷은 표적이 되죠. 저도 소소한 강도를 계속 당했지만, 가족처럼 반겨주고 안전한 거처를 마련해 주신 분들도 현지인들이셨어요."

 

Q. 돈을 잃어버렸으면 어떻게 사셨어요?

"일자리를 계속 구했어요. 현지인들께서 기꺼이 재워주시기도 하고, 버려진 1인용 텐트를 고쳐 쓰기도 했어요. 한국에서도 1인용 텐트를 메고 다녔는 걸요. 브라질에서는 뼈대만 남아, 비가 오면 고스란히 다 맞아야하는 건물에서 히피친구들과 함께 지냈는데, 행복했어요. 저는 그 친구들에게 팔찌만드는 법을 가르쳐주고, 그 친구들은 제게 간단한 마술을 가르쳐줘서 서로 길거리 장사하는데 도움을 줬어요."

 

Q. 뼈대만 남은 폐건물에서 지냈다고요?

"스페인 지배를 받은 다른 나라와 달리, 포루투칼 지배를 받은 브라질은 우리나라와 정서가 비슷해요. 폐쇄적이죠. 이 곳에서는 현지인 집보다 제 텐트에서 주로 머물렀는데, 이 곳에서 히피 친구들을 만나 같이 지내게 됐죠. 이 친구들은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제가 하나도 못 번 날, 자기가 번 돈을 반이나 나눠줘요. 또 제 생일날에는, 하루벌이를 포기하고 하루종일 파티하면서 즐겁게 보내자는 거예요. "그럼, 오늘 굶잖아?" 했더니, "괜찮아. 내일 벌지, 뭐!"라는 거예요. 가진 것이 없기에, 지킬 것이 없고 오히려 기꺼이 나누려하고 자유롭다는 걸 그 친구들에게 배웠어요."

 

Q. 사진에 작가님을 찍은 사진도 있던데, 타이머를 설정하고 촬영하셨나요?

"아니요. 여행지에서 만난 친구와 동행이 되곤 하는데, 그 친구가 찍어줬어요."

 

 

희피 이예나

 

 

Q. 안동 하회마을과 울릉도 사진도 있던데요?

"남미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서는 100일동안 무전여행을 다녔어요. 전시장 가운데 있는 텐트와 배낭이 당시 제 장비였죠. 그 때 안동과 울릉도도 여행했습니다. 남미 여행하면서 동행이 된 친구가 울릉도 사람이라 초대받았거든요. 그 친구를 남미에서 처음 만났을 때는 검은 피부에 긴 수염까지, 지금 한국에서 봐도 딱 남미 현지인같이 생겨서 전혀 한국인일거라고 예상하지 못했어요."

 

Q. 예? 보통 외국에서 친구를 사귀면 서로 출생지를 포함해서 자기소개를 하지 않나요?

"이상하게도 그 친구와는 그렇지 않았네요. 그 친구도 제가 한국인일거라 생각하지 않았대요. 서너 시간동안 외국어로 대화를 나눴는데, 한국인만이 제대로 낼 수 있는 발음을 듣고 그 친구가 “너 한국인이야?” 물어봐서 알게 되었죠. "

 

Q. 작가님 이야기를 들으며 작품을 보니, 현장에 있는 것 같아 더 좋네요. 혹시 사진을 따로 배우셨어요?

"아니요. 사진을 따로 배우지 않았고, 항상 자동모드로 사진을 찍어요. 그래서 막상 여행 사진전을 열 때, 전문가 분들께 혼나지 않을까 걱정이 됐어요. 여기 옛충남도청사에서 전시회를 열 때도 대전시민대학에서 사진을 가르치고 배우는 분들이 많이 오셨어요. 헌데, 사진반 선생님께서 나쁘지 않다고, 참 많이 찍어봤겠다고 하셨어요. 정말 많이 찍어보면서, 구도나 색감 등을 배운 것 같아요."

 

Q. 사진을 보니 강연도 하셨나봐요?

"예, 한복을 입고 남미를 여행하는 사진이 국내 언론사에 들어갔나봐요. 그래서 인터뷰도 하고 청소년들 대상으로 강연도 하게 되었어요. 이번 전시회에도 대안학교 친구들이 단체로 왔었는데, ‘사진을 배운 적이 없다’, ‘좋은 장비가 없다’, ‘전시회를 열 돈이 없다’가 고민거리더군요. 저 역시 사진을 배우질 않았고, 중학교 때부터 쓰던 오래된 똑딱이와 아르바이트비로 산 35만원짜리 카메라로 찍었거든요. 지금 이 사진들과 전시회도 제 자비로 연 것이 아니에요. 그래서 그 친구들에게 이야기해 줍니다. 저를 보라고, 다 할 수 있다고, 길이 열린다고."

 

Q.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지가 있으세요?

"세 대의 카메라를 챙겨서 여행을 떠났는데, 결국 다 도둑 맞았어요. 1100일동안 여행했으니, 하루에 한 장씩만 골라도 1100장의 사진이 나올텐데 30여 점 밖에 걸지 못한 건 그래서네요. 그래도 제 여행은 계속되었고, 가슴에 담아왔습니다. 누군가는 제 최고의 여행지가 페루 마추픽추가 아니냐고 하시던데, 아니에요. 남미, 이름없는 시골 마을에서 맞이한 아침 풍경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Q. 이 전시회는 다른 곳에서도 열렸나요? 또 작가님의 이후 계획이 궁금합니다.

"서울에서 먼저 열렸고, 이곳에서 두번째로 하고 있어요. 13일까지 이곳에서 열고 대구에 갈 계획이었는데, 대전의 다른 곳에서도 섭외 요청이 와서 협의 중입니다."

 

사십 평생, 단 하룻밤도 혼자 여행 다녀본 적이 없는 제게 이예나 작가의 이야기는 부러움과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같이 전시를 둘러본 제 딸아이가 작가처럼 자유롭게 세계를 여행다녔으면 좋겠다니까 “정말 보내주실 수 있으세요?”라고 반문하며 웃네요. 말하지 않아도 젊은 여성 혼자, 이국에서 여행을 한다는 것이 그저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지요.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겪어냈을까요.

 

이예나 작가는 희피(喜기쁠 희, 披나눌 피)라는 호를 지었습니다. 남미 여행에서의 기쁨과 그 곳에서 배운 나눔의 소중함, 또 자유로운 히피의 정신까지 세 가지 뜻을 담아 지었답니다.

 

아쉬울 뻔 했는데, 2월 13일 옛충남도청사 전시로 끝나지 않고, 조만간 다른 곳에서 또 만날 수 있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작가에게 직접 전해듣는 가슴뛰는 여행기는 15일 수요일 정오, 대덕밸리 라디오 페이스북 라이브방송에서도 들을 수 있다네요.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대덕밸리라디오'를 검색하시면 생생하게 만날 수 있고요, 이 기특한 청춘을 직접 응원하고 싶으시다면, 도룡동 대덕테크비즈센터 1층 이노스타트업으로 방청하러 오시와요. 고고!!

 

 

▶ 관련기사 : http://daejeonstory.com/7996 대전청춘 이예나, 한복입고 1100일 간 국내외 여행 떠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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