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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일상/일상다반사

대전을 처음 만난날(2)절박했던 청춘, 구원의 도시 '대전'

 

 

‘너희들을 만나러 가던 길은 까맣고 추운 밤에도 망설여지지 않았고, 왕복 차비가 아깝지도 않았지. 그저 무수히 많은 이야기를 나눌 우리의 시간에도 끝이 있다는 것이 아쉽기만 했을 뿐.’


불과 이십대의 허리를 지나고 있었을 뿐인데도 가득 차 있던 고민과 번뇌는 왜 그리 혼자 감당하기가 힘들었던 걸까요. 낯선 도시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주말마다 친구들이 있는 또 다른 낯선 도시를 찾았던 때가 있었습니다. 


반짝이던 낯선 도시의 섬 하나


도시의 낮과 밤은 짧기만 했죠. 끝도 없이 이어질 것 같은 이야기가 주위의 공기를 에워싸면, 우정공작소 같았던 대학가 근처 친구의 자취방은 어둠과 빛에 의존하지 않는 스스로 반짝이는 ‘별섬’이 되었어요.

 

주말의 낮과 밤은 정말로 구분되어 있는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어둠과 빛에 관계없이 우리는 끊임없이 대화를 했죠. 그게 전부였어요. 특별한 건 필요 없었어요. 치열하고 고된 주중의 일상을 보내다가 당연한 듯 향했던 그 곳. 지금도 마찬가지 이지만, 당시의 우리는 소박한 이야기와 일상을 나눌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족했습니다. 



별섬-권순지

▲그 밤들을 기억하니. 빛나는 별섬에서 웃고 울던 날들 ⓒ 그림 권순지



소박하다고 했지만 실로 우리가 나눴던 이야기는 이제 막 제대로 독립하려는 청춘의 몸부림 이었어요. 모두가 혼자서는 감당하기 힘들었던 삶의 고충을 ‘별섬’에 모인 서로를 통해 덜어 내었던 거죠.


취업시험이 닥쳐 있지만 당장 생활비를 알바로 벌어야 하는 궁핍한 청춘, 부모와의 채워지지 않는 관계로 인한 불안이 온 삶에 가득 차 갈피를 잡지 못하는 청춘, 전부를 내걸고 한 불같은 연애에 데여 상처만 남은 빈털터리 마음을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허기진 청춘. 


어디로 향할지 모르는 조바심은 주변에서 몰아치는 폭풍에 비하면 어쩜 아무것도 아닌 일이라고 여길 수도 있었지만, 그 때의 우리 모두는 지금보다 많이 여렸고, 사랑이 필요했고, 혼자여서는 안 되는 존재였죠.


‘과연 우리 지금은 그 때보다 더 행복한 걸까?’

‘우리가 그 때 나누었던 수 만 가지의 걱정과 불안이 지금은 사라졌을까?’


전부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초보사회인으로 여전히 불안한 삶을 지탱하고 있는 건 마찬가지이지만. 그래도 그 때가 그리운 건 이젠 예전처럼 무수히 많은 밤을 함께 의지할 수 없는, 각자의 생업에 절박한 어른이 되었기 때문일 거예요. 


제 일기장을 들춰보면 ‘별섬’으로 향했던 기간 동안엔 펜을 쥐고 끄적인 날들이 없더군요.


카프카가 그랬죠.

 

"내면을 사랑한 사람에게 있어 고뇌는 그의 일상이었고, 글쓰기는 구원을 향한 기도의 한 형식이었다."


끊임없이 고뇌하고 구원을 청했던 일기장 기도는 친구들과의 자발적인 주말 합숙으로 인해 잠시 휴업했던 것.  


높낮이도 형식도 다른 언어들이 만나 부드럽게 반짝이던 ‘별섬’은 제 ‘대나무숲’ 이었습니다. 어디에도 말하지 못했던 비밀을 웃고 울며 털어낸 낯선 도시의 대나무 숲은 그 때의 제겐 구원이었던 것 같아요. 구원을 찾아 습관적으로 떠났던 날들을 쓰고 있노라니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청춘-권순지

▲네온사인 아래 거리의 청춘 ⓒ 그림 권순지



도시의 대학가는 전부 ‘대나무숲’이 되어


친구들과 주말을 보낸 나의 ‘대나무숲’이자 자체발광 우리 ‘별섬’은 충남대학교 앞 원룸가들이 밀집해 있는 곳의 작은 방 한 칸. 그곳에서 대학을 다녔던 친구들에게 익숙한 충대 거리가 제겐 모두 눈에 설익은 풍경이었죠. 


그러나 대학가는 어디든 대체로 비슷합니다. 충남대 역시 술집과 까페, 각종 로드샵들이 점령한 대학로의 일반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진 못했죠.

 

주말이 지나고 닥친 새벽, 출근을 위해 친구들과 함께 있던 별섬을 나와 유성고속버스터미널로 가는 길은 전쟁 직후의 혼란이나 마찬가지 였어요. 네온사인이 꺼진 간판들은 헐벗은 듯 초라하기 짝이 없었고, 전단지가 흩뿌려진 거리의 바닥엔 취객의 토사물들이 치워지지 못한 채 엎어져 있기도 했죠. 혼란의 거리와 불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밤을 보내고 나왔다는 사실이 불가사의할 정도였습니다. 


분명한 것은, 충남대 대학가에서 친구들과 함께 공유했던 우정과 고독과 낭만이 바깥 거리의 번뜩이는 네온사인과는 분명히 다른 빛 안에 존재했다는 것입니다. 우리 별섬 대나무숲은 그토록 철저히 고립된 청춘들의 것이었단 말이죠.

 

어쩌면 사실 네온사인 아래 웃고 울던 또 다른 청춘들과, 스스로를 별섬에 고립시킨 저 같은 청춘들의 당시 감정은 비슷했을 거예요. 그들에게도 대나무숲이 필요하지 않았을까요? 구원의 방식이 달랐을 뿐이죠. 대학생들의 자유 섞인 조바심, 그리고 더 이상 대학생이 아니어야만 하는 취업시장에 내몰린 젊은이들이 막 겪는 사회의 불안은 대학가 전체를 구원이 절박한 장소로 만들어냈습니다. 


술집의 네온사인은 밤새 오래도록 반짝였고, 작은 별섬 대나무숲의 불도 새벽녘까지 꺼지지 않았었죠. 


‘대학가의 같은 시간을 공유한 모두는 지금쯤 어떻게 변했고, 어떤 행복을 꿈꾸며 살고 있을까요.’

‘대전이라는 도시는 고뇌하는 청춘들이 구원받기에 적합한 도시일까요.’


젊은이들이 어렵지 않게 행복을 안고 살 수 있는 곳이 ‘대전’이었으면 합니다.


가열차게 이십대를 고민하던 때에 깊이 마음을 나눌 친구들이 있었기에 낯설지만 아름답기만 했던 이 도시. 몇 년이 지나 지금은 이곳에 새 가정의 뿌리를 내려 살고 있습니다. 공기마저도 날 서 있던 서울에 비하면 아직까지는 여전히 대전이 편하고 좋습니다. 처음 이 도시를 만난 그 때의 추억이 지금도 가슴에서 온기를 품고 있네요. 

 

 

2017/01/24 - [대전일상생활/일상다반사] - 대전을 처음만난 날(1)청재킷과 대전엑스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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