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대흥동에는 ‘집 잃은 집’이 있습니다. 빽빽하고 여유 없는 골목의 좁은 한 자리를 간신히 붙잡고 서있는 집.
대전 중구 대흥동 37-5번지의 그 집을 찾아 골목을 누비며 헤맸습니다. ‘집 잃은 집’이라는 가엾은 사연이 안타까워 찾아 나선 그 집이 주변 환경과 함께 자아내는 모순과 부조화는 눈 뜨고 보기 어렵더군요. 원룸과 모텔들이 즐비한 골목을 돌고 돌다 겨우 찾을 수 있었기에 더욱 그런 심경이었을까요.
‘집 잃은 집’은 사람냄새도 잃은 듯 했습니다. 아니 어쩌면 집이 사람을 잃은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이 집을 잊었다고 해야 맞을까요. 낯선 곳으로 내몰아 어울리지도 않는 곳에서 숨어 있는 것처럼 지내게 하더니 이젠 집의 입(入)을 막아버리기까지 했죠.
답답하게 늘어선 건물들 사이에서 간신히 빼꼼 내밀고 있는 집의 머리를 보고 반갑게 달려가 대문 앞에 섰으나 굳게 닫혀 있는 집의 입(入). 반가운 기색에도 꿈쩍없이 닫혀 있는 집을 보자니, 사람이 걸어둔 자물쇠 때문이 아니라 마치 마음이 동하지 않아 집이 자신의 열린 입을 스스로 닫아버린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차디찬 골목에 들어서 시린 눈을 부비며 더듬더듬 찾을 수 있는 이곳을 만나러 오는 이도 그간 별로 없었을 텐데. 얼마나 외로웠을까요.
좁은 골목까지 밀고 들어온 자동차들도 기막힐 정도로 각자 공간을 차지하고 맹추위를 떨궈 내며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가뜩이나 꽉 막힌 골목은 차들이 점령한 분위기로 인해 더욱이 삭막했죠. 차량들까지도 숨통을 조이는 골목을 빠져나와 큰 길만 건너면 옛 추억이 있을 원래의 ‘집’에 갈 수 있을 텐데. 애석하게도 지금은 큰 길을 건너 원래의 주소로 찾아가도 ‘집’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름은 그대로인데 처음의 것을 다 잃어버린 집. 원래의 ‘집’을 잃고 특유의 첨예하게 솟은 지붕의 특징만을 알아볼 수 있는 이 집의 이름은 ‘뾰족집’입니다.
▲기억해줘 '뾰족집'
무단철거 전, 빈티지스런 대전 대흥동 '뾰족집' ⓒ 일러스트 권순지
대전 중구 대흥동 ‘뾰족집’은 앙증맞은 그 이름에 반전의 역사를 찍듯, 과거 사연이 기구하기 짝이 없습니다. 본래 대흥동 429-4번지에 자리 잡았던 이 집은, 지붕 끝에 박공을 달아 경사가 급하고, 평면상 원형으로 돌출된 거실부분의 원뿔형 지붕 때문에 ‘뾰족집’으로 불려왔죠.
1920년대 일본 가옥의 특징에 따라 다다미방과 도코노마(일본의 건축양식-방에 어떤 공간을 마련하여 인형이나 꽃꽂이로 장식하거나 붓글씨를 걸어놓는 곳)가 구성되어 있으나 세부적인 건축디자인은 일부 서양의 양식을 절충하여 지어졌습니다. ‘동서양의 건축’이 혼합되어 있어 그 의미가 더 특별하게 여겨진다고 하네요.
1929년에 철도국장 관사로 건립된 후 2008년 등록문화재 제377호로 지정되고 ‘대전에서 가장 오래된 주택’이라는 역사적 특징을 지닌 별칭도 지니게 되지만, 그 맥은 2010년 대흥동 일대 ‘재개발’ 사업에 의해 무단 철거되는 참변을 당하면서 끊기고 맙니다. 철거된 후 다시 현재의 주소지에 복원되었지만 그 오래된 건물이 역사의 굴곡 속에서 버텨왔던 시간과 공간의 의미는 퇴색하고 말았습니다. 그야말로 ‘집 잃은 집’이 아니면 무엇일까요.
이츠대전TV 방송캡쳐
재개발이 부른 참극 ‘성냥갑아파트’
대전시 중구 대흥동에 위치한 센트럴자이아파트는 대흥동 재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지어진 성냥갑주거단지 입니다. 무단 철거된 대흥동 뾰족집이 본래 붙박혀 있던 자리이기도 하죠. 재개발로 인한 슬픈 양극화는 어느 지역이나 두드러지는 현상이지만, 뾰족집이 철거되던 이곳의 재개발 사연도 유쾌하진 않습니다.
어떤 공간에 대한 의미는 그 공간을 어떻게 활용하는 가에 따라 달라집니다. 가장 오랜 세월 대전을 지키며 아픈 시대를 기억하는 건축물이 헐어진 자리에 생긴 아파트. 그 곳이 입주민들에게는 새 공간에서 시작하는 설렘의 의미로 다가올 수 있겠지만, 전혀 관계없는 시민들에게는 살며 그저 지나칠 또 하나의 보통 아파트군락일 뿐이죠.
대도시 주거양식의 형태가 지나치게 규격화 되는 것에 대한 우려에서조차 이미 건축물의 ‘아름다움’에 관한 중요성은 배제되고 없습니다. 주택난을 해소하기 위한 방법임에는 반할 여지가 없으나 점점 집의 ‘재미’가 줄어든다는 것은 아쉬움으로 다가옵니다.
재개발은 뾰족집을 잃게 하고, 도시의 아름다움에도 찬물을 끼얹은 셈이죠.
아픈 역사를 되짚는 역사적 배움터와 문화 공간으로의 성장
다행히도 어설프게나마 복원되었지만 여전히 역사 문화적 공간으로 재생되지 않아 안타까운 대전의 등록문화재 뾰족집.
근대문화유산을 제대로 보존하여 훌륭하게 도시재생의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는 타 도시의 사례를 통해 변화를 도모해야 하지 않을까요?
일제시대 포목상이었던 히로쓰가 건축한 군산 신흥동의 정통 일본식 저택인 ‘히로쓰 가옥’은 기다란 복도와 아기자기한 정원이 인상적인 곳이며 영화 ‘장군의 아들’과 ‘타짜’에 나왔던 집이기도 합니다.
전라남도 벌교에는 1935년에 지어진 일본식 2층 목조건물이자 당시의 5성급 호텔이었으며 등록문화재 132호인 ‘보성여관’이 있습니다..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에서 ‘남도여관’으로 등장했던 이곳은 쓰라린 일제강점기의 역사를 상징시키는 건축물인데요.
문화유산국민신탁과 문화재청, 보성군의 힘을 모아 2012년 복원되어 새롭게 공간을 활용하고 있는 ‘보성여관’은 1층엔 차를 마실 수 있는 까페와 벌교 전체의 역사를 관람할 수 있는 전시관, 체험형 숙박을 할 수 있는 숙박동이 있고 2층은 다목적실로 활용될 다다미방이 있습니다. 이미 ‘보성여관’은 벌교의 역사문화적 핫플레이스가 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외에도 울산의 ‘학성여관’과 해방 후 유실되지 않은 건물들이 즐비한 대구의 근대골목도 근대문화유산을 보존하고 활용하여 역사적 의미가 깊은 문화공간으로 탈바꿈 했다는 공통점을 동시에 지니고 있습니다.
대전 대흥동 ‘뾰족집’은 지금의 상태로는 시민들과 타지역민들의 발길을 돌리기만 할 뿐, 등록문화재의 가치를 발휘하지 못하고 고이다 썩는 물처럼 되고 말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시급한 변화가 필요합니다.
이츠대전TV 방송캡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