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랫만에 일요일 오후를 계룡문고에서 보냈습니다. 누구라도 편하게 책을 볼 수 있도록 넓은 공간을 마련해 주신 이 곳에 늘 감사하지요.
그런데 시간을 보내다보니 슬슬 출출해지더군요. 하지만 읽던 책을 끝내 다 보고 가고 싶다는 아이들 성화에 얼른 저녁을 먹고 와서 읽자고 대타협을 했지요.
그럼, 뭐 먹지? 그래서 처음으로 계룡문고 근처의 식당을 탐색하게 되었죠. 서점 나들이할 때마다 늘 보는 간판이지만, 단 한 번도 이 '선화동 값 착한거리'에서 밥을 먹지 않았죠.
몇 해 전, '칼국수 맛집'이라고 일부러 찾아왔는데 '주말 휴업' 푯말에 맘 상한 뒤로 두번 걸음하게 되지 않더군요. 그 곳 말고도 이 골목에 자리잡은 식당의 반 이상은 휴일에 쉽니다. 아마도 인접한 사무실 직원들을 주 고객으로 삼아서 그렇겠죠?
그래도 이번에는 아이들과 약속했기에 꼭 '후딱 먹을 수 있는' 가까운 곳을 찾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여기저기 기웃기웃, 동네 한 바퀴 돌다가 발견한 이 곳!
"호로록호로록 호로록호로록 맛좋은 국수~" 절로 노래가 떠오르는 호로록생면 국수·족발집입니다.
음 먼저 맘에 드는 가게 이름과 간판에 끌렸고요. 공사 중이라 어수선한 골목 안에서도 반짝반짝 빛이 나게 깨끗한 외관도 맘에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국수를 무지무지 사랑하는 저희 가족에게는 딱이었죠. 매장 안 벽면에는 메뉴판과 좋은 문구가 깔끔하게 게시되었네요.
짠~
메뉴판 보시겠어요?
메뉴도 다양하지만, 정말 착한 가격이죠? 잔치국수를 단돈 3,000원에 맛볼 수 있다니, 게다가 손으로 직접 뽑은 생면이라니 정말 기대만발이었습니다.
"오늘은 짜장면 먹을래!" 다짐하고 중국집에 가도 짬뽕이냐 짜장면이냐로 늘 고뇌하게 되는데, 여기의 메뉴판을 보고 어찌 고민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아는 건 잔치국수 뿐이니! 결정장애는 불치병이라 10여 분동안 갈등하다, 결국 '션~한 냉국수'를 주문했지요.
보세요. 먼저 밑반찬으로 나온 생김치와 묵은지입니다.
국수에는 김치가 찰떡궁합인데, 요즘 배추가 어마무시하게 비싼데도 넉넉하게 담아주셨습니다. 아주 맛좋게 새콤한 묵은지는 잔치국수와 짝꿍이래요.
그리고 기대하시라, 개봉박두! 두구두구두구!! 요거이 소고기카레국수!
카레비빔국수입니다. 카레가 무지 순하고 부드러워요. 요거이 잔치국수!!
보자마자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감히 흐트러뜨리기 미안한 고명들을 살살 풀어보니, 가늘게 채친 계란지단과 맛깔나게 찢은 맛살, 풍미를 더해주는 쑥갓과 김까지.
이제껏 어느 잔치국수에서도 볼 수 없었던 편육이 어서 먹어주기를 기다립니다. 작은 옹기에 준비된 양념을 넣지 않아도 김치와 먹으니 정말 맛있습니다. 요거이 션~한 냉국수!
아~문득 떠올리기만 해도 식욕이 마구 샘 솟습니다. 육수가 끝내주기에, 일하는 분께 여쭤보니 사장님만 아신다네요. 역시 맛집스럽습니다.
계란지단과 맛살, 김, 오이에 편육. 여기까지는 잔치국수와 흡사지만, 달콤아삭 배 한 조각도 들어있답니다. 여느 물냉면 못지 않은 비주얼과 맛입니다.
그리고 모든 국수가 아주 넉넉하게 나옵니다. 라면과 잔치국수를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막내는 9살 밖에 안되었지만, 1인분이 모자르거든요. 항상 추가로 주문해야 했는데, 한 그릇 뚝딱하더니 미련없이 일어납니다.
또한 생면의 쫀득하고 탱탱한 면발이 예술입니다. 건조 소면보다 약간 반투명하고 납작한데요, 제가 설명하면 무엇하리오. 역시 백문이 불여일견(百聞 不如一見)이요, 백견이 불여일행(百見 不如一行)이라는 옛말처럼 직접 맛보실 추천합니다.
참, 함께 주문한 미니족발입니다.
막 삶아진 듯 따뜻하고 쫀득쫀득한 콜라겐의 향연입니다. 뼈만 남기고 다 훑어먹었네요. 배는 부른데 호기심을 멈출 수 없어 맛만 보자고 또 주문한 꼬마김밥!
꼭 밥이 먹고 싶은데 한 공기는 좀 부담된다면, 1줄만 시켜서 나눠먹어도 좋겠어요. 요거이 단돈 오백냥입니다.
국수에 반해서 이번 주말에 또 서점나들이 가렵니다. 얼큰이칼국수처럼 매운국물에 먹는 얼큰이국수와 비벼먹는 고추장비빔국수에 도전해 봐야겠네요. 호로록호로록 국수드시러 오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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