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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여행/역사유적

대전 역사문화탐방 | 우리 고장 대전의 역사 탐방



현재 우리나라는 본격적인 지방화시대를 맞아, 풀뿌리 민주주의의 상징인

지방자치제(1991년)가 도입된지도 벌써 4반세기(25년)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지방자치제가 정착단계에 접어들면서 각 지방의 역사 인물과 문화에 대한 적극적인

연구를 바탕으로 지역의 정신적 뿌리를 찾고, 이를 지역의 정체성 확립의 발판을

삼는 노력들이 많이 이루어 지고 있는데요.


오늘은 그 연장선에서 우리 대전의 정체성을 찾고 그 뿌리를 찾아서 답사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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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의 정체성 >


그러면 우리 대전의 정체성이라 할 수 있는 그 뿌리는 무엇일까요?


일부사람들은 대전의 역사가 극히 짧고, 문화전통이 빈약하다고 하는데요... 과연 그럴까요?

아무래도 근대이전에는 "대전"이라는 고유명사 자체가 없었고, 지금과 같은 독립적인 행정구역도

없어서 그런 인식이 생긴것 같습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볼때 "대전"이라는 이름이 문헌에 처음 등장한 것은 조선초기의 인문지리서인 

"동국여지승람"" 인데요


이 책은 1482년에 편찬하여 1486(성종 17)에 간행된 것인데, 그 충청도 공주목 "산천조"를 보면

우리가 지금도 사용하고 있는 "대전천"이라는 지명이 적혀있습니다


따라서 대전의 역사는 아주 오래 된 것을 알수가 있습니다...


자~ 그럼 이제 본격적인 역사문화탐방을 떠나보겠습니다




< 김반, 김익겸의 묘>





김반, 김익겸의 묘소로 이동하는 장면입니다

김반은 김익겸의 아버지로 선산에 모셔져 있습니다




선산 앞에는 이렇게 현대식 건물이 많이 들어와있습니다.

맞은편으로는 한남대학교 유성캠퍼스가 보입니다





김반, 김익겸 선조분들에 대한 설명입니다

굳이 다른 설명이 필요없겠죠???




살아 계셨을때... 문신이었으면 문신상을... 무인이었으면 무인상이 놓여지게 되는데요

두분다 문신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무신상이 양쪽에 나란히 배치되어 있습니다




묘소의 네귀퉁이에 버섯모양의 석물이 있는데요.

이건 바로 "차일석"이라고 합니다

바로 제사를 지내거나 행사를 할때 천막을 고정하기 위해서 설치한 돌을 뜻합니다





묘소앞 제단인데요

오른편 제단 뒷쪽으로 작은 돌판이 있는데요..

이걸 "혼유석"이라고 합니다.


제사를 지낼때 제사음식을 제단위에 올려놓는데...

그때.. 영혼이 앉아서 노는 자리라고 해서 그렇게 불린다고 합니다




잠시 아랫쪽을 바라보니.. 공기도 맑고 풍광이 아주 좋습니다.

이곳 묘소는 학이 양날개를 뻗어서 감싸고 있는 모양새라고 하는데요

바로 이 위치가 그 중심점 자리라고 합니다..





앞에 있는 묘소가 김반 선조 묘소이며, 뒤에는 김익겸 선조님의 묘소입니다

그런데 앞전에도 이야기했지만... 김익겸 선조님의 부친이 김반 선조님인데요..

묘소의 위치가.. 김익겸 선조님이 더 높은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상하죠??


역사학자들이 해석하시기를 아들이 큰공을 세우거나, 삶을 아주 충실히 살았을때

죽어서도 아버지가 아들을 업고 다닌다고 해서 이렇게 순서를 바꾸어 놓았다고 합니다






< 서포 김만중 선생님의 문학비 >



서포 김만중선생님께서 유배지에서 어머님을 그리워하면서 지은 시입니다..

가슴이 뭉클합니다.




김만중 선생님의 석조좌상입니다~



< 숭현서원지 >


서원이라는 명칭은 당나라 현종때 궁중에 있던 여정전서원, 집현전서원에서 유래한 건데요

일명 학교와 같은 개념으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오늘 제가 찾은 숭현서원은 그 시기를 정확히 알수는 없으나

대략 16세기 후반에 창건된 것로 추정되는 곳입니다







숭현서원지 입구의 모습입니다.

고풍스러운 모습에서 옛정취를 느낄수 있습니다






양쪽에 나란히 서 있는 두개의 건물은 공부를 하는 사당입니다.

위치에 따라 동재, 서재로 불립니다.





오늘 설명을 해주실 문화해설사님...







숭현서원의 내력을 적은 비인데요..

여기에 우암 송시열선생님의 글도 있습니다




바로 뒷쪽에 보면 되는데..

원래 비석에 써진 글씨는 오른쪽에서 6번째 세로줄까지 적혀있는데

이후에 송시열 선생님께서 추가로 글을 쓰셨습니다.


그런데... 그냥 같은 줄에 글을 쓰면 혼동이 되니깐 추가로 쓰는 글씨는 두칸정도 내려서 쓴겁니다

참고로 이곳 서원에서 배출된 인물중 한분이 바로 우암 송시열 선생님입니다




한참 설명을 듣고... 정말 좋은 말씀도 많이 들었습니다.

시간되실때 한번 가보세요

해설사님의 친절한 설명이 너무 좋습니다






< 쌍청당 >


쌍청당은 조선 전기의 쌍청당 송유 선생님이 지은 별장인데요.

아주 특이한 별장으로 유명합니다





쌍청당은 은진송씨 가문에서 관리하고 있는데요.

사유지이기 때문에 미리 사전에 양해를 해야하며, 본관건물 등은 함부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은진 송씨 가문의 아주 오래된 건물입니다.

정말 아름다운 우리나라의 건축과 조경의 미를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쌍청당 별장인데.. 좀 독특한 부분을 발견하셨나요?

바로 채색(단청)입니다.

조선시대에는 궁궐이나 절에서만 화려한 문양의 채색을 할수 있었는데... 

쌍청당은 왜 이럴까요??




오늘 안내를 맡아주신 한남대학교 한기범 교수님의 말씀인데요.

조선초기에는 일반인들도 처음에는 이렇게 별장에 채색이 가능한걸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조선 중기로 넘어와서 일반건물에 채색을 하게되면

곤장80대의 태형에 처해졌다고 하니...

같은 조선시대라고 하더라도.. 임진왜란등 환경적인 요인과 정치적인 변화에 따라 많이 다른것 같습니다







< 은진송씨 대종가 >


대전에서 가장 화려한 가문 꽃피웠던 은진송씨 대종가입니다









이곳 역시 은진송씨 종가에서 관리를 하고 있는데요.

사유지이기 때문에 함부로 들어갈 수 없으며 사전에 필히 예약을 해야 들어갈 수 있습니다






아주 오래된 옛건물이지만

옛조상의 정취를 느끼는데에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오늘 강의를 열심히 해주신 한남대학교 한기범 교수님입니다.




오늘 하루 뜻하지 않게 좋은 현장학습을 다녀왔는데요.

우리 고장 대전에 이렇게 뜻깊고 유서 깊은곳이 많은지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바로 우리들이 사는 동네이거나 인근인데요.

대전의 역사적 전통성과 자부심을 느끼는데는 부족함이 없을듯 합니다


앞으로 대한민국의 대전이라는 도시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도시가 되길 바라면서

오늘 함께한 모든 분들...특히 한기범 교수님께 이자리를 빌어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