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대전문화/전시ㆍ강연

대전전시 | 혁신의 거장 운보 김기창-작고작가 회고전

혁신의 거장 운보 김기창-작고작가 회고전

대전시립미술관 1, 2 전시실

2015.3.7~4.19




 

2015년의 새봄을 맞아 대전시립미술관에서는 굵직굵직한 새 전시들이 속속 선을 보이고 있습니다.

2월 중순에는 2014년 신소장품전이 개막하였고, 2월 말, 대전 미술의 지평 김동유 전의 개막에 이어

지난 주 3월 6일에는 작고작가 회고전으로

대전시립미술관 로비에서 혁신의 거장 운보 김기창전의 개막식이 있었습니다. 





대전시립미술관 1전시실부터 5전시실까지 현재 알찬 전시와 작품이 가득한데요,

지금 대전시립미술관을 방문하시면 미술관 입장료 500원(어른)에

운보 김기창, 김동유, 그리고 2014년 신소장품전까지 많은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대전시립미술관 2층 로비로 들어서면, 정면에 설치된 1관~4관까지의 기획전 안내입니다.

운보 김기창 화백의 작품과 김동유 작가가 그린 이중섭의 얼굴 작품이 관람객의 시선을 끌어 당깁니다.

일단 이 그림을 배경으로 먼저 인증 샷을 가볍게 찍으면 좋겠죠? ~^^





운보 김기창은1913년 출생 후, 8세 때 장티푸스로 청력을 잃고 말이 어눌해졌고,

재능을 알아본 어머니의 추천으로 1930년에 이당 김은호 문화생으로 미술계에 입문하여

일제 강점기의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연 5회 입선과 연 4회 특선으로 추천작가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해방 후인 1946년에 우향 박래현과 결혼하였는데,

우향 박래현은 일본에서 일본화를 전공하고(1944년 도쿄여자미술전문학교 졸업) 

동양의 전통적인 재료로 서구적인 공간 구성을 조합하여 새로운 동양화의 방향을 제시했다고 평가받고 있고,

운보 김기창과는 1943년부터 3년 간의 필담 연애 끝에 결혼했다고 합니다.





전시를 개막하던 날은 많은 분들이 참석하여 대전시립미술관에서 개막하는

혁신의 거장 운보 김기창-작고작가 회고전을 축하하였습니다.

 





리플렛의 설명 말미에도 나와 있긴 하지만,

운보 김기창 호적 상으로는 공주로 되어 있었지만 서울 운니동 출생이라고 합니다. 


운니동은 서울 안국역 근처 현재 주한일본공보문화원의 주변 일대로,

입학하기 전까지 유년기에 잠시 공주에 머물렀다는 기록은 있는데,

경성승동보통학교(현 서울매동초등학교)에서 입학과 졸업을 하였습니다.


부친이 당시 일제강점기 서슬 퍼런 총독부 토지관리국의 직원이었다고 하니...

여러가지로 어렵고 힘들었던 시절이지만 본인이 농아가 된 것 외에는 어려움을 모르고 자랐을 것 같습니다...  









혁신의 거장 운보 김기창-작고작가 회고전은,

1930년부터 1990년대까지 제작된 작품을 연도 순으로 나열하여

운보 김기창의 예술 세계와 삶 전체를 조망하고 있다고 합니다.


개인의 일대기를 보는 것과 같은 작품 전시와 함께

영상물가 작가 연보를 설치하여 전시를 이해를 돕고 있습니다.

위 그림 왼쪽은 1930년대에 그린 [동자]라는 작품입니다.


현재 서울시립미술관 소장품인데... 그림을 잘 모르는 제 눈에도 이그림은 완연한 왜색풍으로 보입니다.

하긴 1930년대의 작품이라 일제강점기에 누리고 살던 시대의 작품이니 그렇겠지만서도...





운보 김기창 일제강점기 친일 행적으로 인하여,

2008년 친일인명사전에 미술 분야 수록 예정자로 선정되었고,

2009년 친일반민족 행위 704인 명단에도 오른 인물입니다.

어떤 변명으로도 오명을 피할 수 없는 마음 편치 않은 상황인데요...

그런 면을 떠나면 위의 작품은 당시로서는 세련됨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보입니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일본 색채풍을 벗어던지고

반추상화적인 입체화풍의 국제적 경향과 추상주의 동양화를 지향한 부인인 우향 박래현의 영향도 있었다고 하네요.


 해방 후에도 강력한 군사 정권 아래서 초상화나 기록화를 도맡아 제작하여

국가 표준 영정으로 지정된 작품도 여러 가지 있고,

해방 후, 대학 교단에서 교수로 활동하며 여러 가지 훈장과 상도 다양하게 받았으니

다른 작가와 비교해도 생전에 부를 누리고 산 화가라는 것은 확실합니다.






운보 김기창의 작품의 시기는 대략 다음과 같은 단계로 볼 수 있습니다.

 

1. 1930년대 사실적인 작품을 그린 정통 채색 인물화 시기-이당 김은호 화풍, 일본 화풍

2. 예수의 일생을 한국인의 모습으로 그린 신앙화, 군중 인물상-반추상 입체파적 표현 시기

3. 시장 풍경, 농악 소재 등 활달한 필치의 구상미술 시기

4. 1960년대 완정 추상 시기, 청록 산수 시도

5. 1970년대 민화풍 작품 시기-일명 바보산수 계열

6. 1980년대 문자화 시도, 1990년대 봉걸레붓 추상회화








2전시실에서는 청록산수, 바보산수를 비롯한 1980~90년대 문자도와

봉걸레붓의 호방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작품을 작품만으로 감상할 수 있는 시절이 오려면 철저한 과거 청산이 바탕이 되어야 할텐데,

앞으로 얼마나 더 세월이 흘러야 우리는 역사적인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혹시 충북 청원에 있는 '운보의 집'에 가보셨습니까?

운보의 집은 운보 김기창 1984년에 완공하여 말년을 지낸 멋들어진 기와집과 정원으로 되어 있습니다.

저는 1990년대 중반 쯤 가보고, 그리고 몇 년 전에 다시 가보았는데요, 

1990년대에 아무것도 모르고 보았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다른 것이 눈에 들어와서 

기분이 좀 나빴던 기억이 납니다.




다른 것보다도...하나만 예를 들자면, 정원 한쪽에 전시되어 있던 대형 종유석인데요...

운보 김기창은 당시에 그런 오랜 자연역사의 산물을 떼어다 자신의 정원을 장식 할만한 '힘'이 있었나 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당시 운보의 집 설명인의 말에 의하면

자녀들이 모두 이 집과 작품 돌보는 것을 거부하고 외국으로 나가 버려서

재단에서 관리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지금도 그런 지는 모르겠습니다.


대한민국 미술사에서 여러가지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인물인

운보 김기창의 일생, 개인의 역사를 아우르는 전시니 만큼

그의 공이나 잘못까지도 수용하면서 비평적인 시각으로 감상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도슨트 분들은 어떻게 설명할 지 궁금하군요~


도슨트 설명은 주중(화~금) 오후 3시 1회, 주말(토,일)은 오후 2시와 4시 2회 씩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먼저 작품을 둘러보시며 나름대로 생각하는 감상의 시간을 갖고

그 다음에 도슨트의 설명과 함께 한 번 더 감상하시면 책을 한 권 읽은 것처럼

훨씬 좋은 감상의 시간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