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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여행/공원ㆍ마을

가을노목과 이사동에서 만난 500년 조선 장묘문화

 





가을노목과 이사동에서 만난 500년 조선 장묘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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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아름드리 나무가 마을 길 중간에 있는거 보셨나요?

농촌 분위기가 나는 마을이 아니라 대전시 중구 옥계동의

동네 길 중앙에 서있는 나무입니다.

 

 

 

 

동네길 중앙에 버티고 선 나무는 처음 보았어요.

사실 동네길 중앙이라고 말하면 잘못된 표현이 되겠죠.

이 동네에 저런 집들이 세워지기 훨씬 전부터

이 나무는 이 자리를 먼저 지키고 있었을테니까요.

 

 

 

나무 옆의 집은 분명 도시의 가정집인데

아파트에서 보던 것과는 사뭇 다른 정감이 있습니다.

동네 할머니들이 한 집 앞에 서너 분 모여서

따뜻한 햇볕도 쬐면서 정담을 나누시는데요,

대문도 활짝 열려있고, 대문앞에 가지런하게 말리고 있는

땔감용 감나무 가지도 예술입니다~^^

 

 

 

 

 

와~~이 나무 둥치 좀 보세요~!

나무 바로 옆의 집은 개인집을 사서 동네 경로당으로 만들었나봅니다.

무더위 쉼터라는 예쁜 문패를 달고 있고

"어서 오세요~"하는듯 문이 활짝 열려 있군요.

 

 

 

 

 

이 동네는 옥계동 인데 행정동으로는 석교동으로 구분된답니다.

이 마을을 지킨 나무는 200년 된 느티나무고,

높이는 20m, 둘레는 5m에 이른답니다.

대전의 오랜 나무들이 보통 마을 어귀에서 마을의 수호신처럼

수백년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요,

아마 이 동네에 현대식 집이 생기기 전부터 이 느티나무가 있던 곳도

혹시 마을 입구쯤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옥계동의 느티나무를 탄성과 함께 감상하고

가까운 금산의 노거수 은행나무를 보러 갔습니다.

와~~~~~~~~!

천연기념물48호로 지정되어 있는

무려 1,000년 되었다고 추정되는 은행나무입니다.

 

 

 

 

 

 

나무 줄기가 썩어서 동굴처럼 비어있고

그 자리를 썩지않도록 외과수술로 처리했다고 하는데도

겉으로 보기에는 잎의 무성함이나 열매로 맺은 은행의 양이 어마어마하여

속이 빈 아픔을 겪은 나무로는 보이지 않을 정도입니다~!

 

 

 

 

이 나무 한 그루가 만드는 그늘을 담아보려고 했는데

아무리 뒤로 뒤로 가도 나무 그늘이 한 화면에 다 들어오지를 않습니다.

저~~기 중앙 부근에 사람이 쬐그만하게 서있는 것 보이시죠?

바닥에 떨어진 은행의 양도  엄청나고~^^

특유한 은행냄새 또한 진동을 하니

냄새를 발밑에 달고오지 않으려면 발밑을 조심하면서 걸어야 합니다~~

 

 

 

1000년 된 은행나무가 바라보는 도로 위에서는

2014년에 수확한 벼를 말리고 있습니다.

1000살 먹은 나무의 눈으로 보면 겨우 1살짜리 벼가 되겠네요~

 

 

 

 

도로는 인간의 편리를 위하여 내는 것이지만

주변을 고려하지 않고 도로가 생기다보니

이 곳에도 나무 근처로 바로 고가가 지나갑니다.

연세도 잔뜩 드신 나무가 그렇잖아도 몸통도 수술하고 살아내기도 만만찮은데

지금의 세상에서는 더욱 견뎌내기가 쉽지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오래오래 자리를 지켜주소~~

이 나무는 사람들이 자주 방문하는 음식점 겸 찜질방 '하늘정원' 근처에 있습니다.

오며가며 이 나무도 감상해보시면 좋겠어요~

 

 

 

 

 

다음으로 간 곳은 대전시 동구 이사동의

500년 동안 유지되어 온 은진 송씨 집안의 집장촌입니다.

무려 1100기가 넘는 무덤이 이 곳에 자리하고 있는데요~

무덤이 같이 모여있는 '공동묘지'이긴 하지만

을씨년스런 분위기라든지 그런 건 전혀 없습니다.

 

 

 

 

그 많은 묘 중에서 오늘은 한줄로 늘어서 있는

송남수 묘역을 방문하였습니다.

연구 자료를 펴낸 책에서 보듯 시기가 다른 9기의 묘가 나란히 있네요~

 

 

 

 

 

 

 

은진 송씨의 재실 절우당인데, 우리가 찾아가는 묘지의 주인인

 송담 송남수가 인수하여 자신의 친구인

소나무, 대나무, 매화. 국화를 심어 자신의 절우라 하여 이름지었다고 합니다.

잘 보이지는 않지만 왼편에 있는 것이 송담 시비라고 하네요.

 

 

 

 

 

설명을 해주시는 분은 대전문화유산 울림의 안여종대표십니다.

송남수 묘역은 기념물 제46호로 지정이 되어있는데요,

송남수 선생(1537-1626)은 조선 중기 임진왜란의 격동기를 사시고

정묘호란(1627)이 일어나기 전에 돌아가신 분이네요.

그래도 와~~!

당시에 아흔까지 사셨으니~~조선 시대 남자의 평균연령이 50도 안된다던데

정말 대단한 장수가 아닐 수 없습니다

 

 

 

 

 

 

 

왕의 무덤도 아니고 무려 400년에 이르는 무덤이

이처럼 잘 보존되고 정비되어 있으니

조선시대 묘제와 석조예술품 연구에도 가지가 높다고 합니다.

 

 

 

 

비문도 우리가 국사책에서 이름을 들어 본 신흠(당시 우의정),

김상용(1636년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서 순절) 등이 등장하는데요,

감상용은 병자호란 당시 끝까지 싸울 것을 주장하였다가

청의 심양으로 끌려가며 시조를 남긴 김상헌의 형입니다.

김상헌이 남긴 시조는 다음과 같죠.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보자 한강수야

고국 산천을 떠나고자 하랴마는

세월이 하수상하니 올동말동 하여라.

 

 

 

 

무덤이 한 줄로 있긴 하지만 모두 차렷 하고 있는 것은 아니고,

방향이 살짝살짝 비껴가면서 있습니다.

먼저 돌아가셨다고 제일 위에 있는 것도 아니라는 군요.

 

 

 

 

 

 

 

석물 문인상과 넉넉한 인상이 닮은 것 같아

비슷한 표정으로 안여종 대표의 시진을 찍어보며

맑은 가을 날 화사하게 웃기도 하였습니다. 

 

 

 

 

절우당문 앞에 예쁘게 피어오른 버섯을 포착했는데,

색으로 봐선 독버섯은 아닌 듯 합니다만, 이게 무슨 버섯일까요?

크기도 주먹 반개 정도로 꽤 큽이다.

아래 사진처럼 오글오글 모여 피어오른 것도 있네요.

 

 

 

 

대전문화유산울림의 안여종 대표는 '보름달 아래 장묘문화 산책' 같은

프로그램도 기획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으흠~~ 구미가 당기는데요~

잠시 두어 시간으로 즐긴 대전의 가을 오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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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노목과 이사동에서 만난 500년 조선 장묘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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