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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문화/축제ㆍ행사

정월대보름 3대가 함께하는 2013대전 연 축제!!

 

 

 

 

3대가 함께하는 2013대전 연 축제!!

바람을 이용하여 하늘에 띄우는 놀이이구 연(鳶)은
겨우내 연놀이를 즐기다가 이듬해 추위가 가시기 전까지 행하여진 놀이문화입니다.
주로 겨울철에 사랑을 받는 이유는 아마도 바람 때문일것입니다.


어린 시절 추억을 떠나봅니다.
겨울 방학이 시작되면 얼레를 돌리는 손등이 찬바람에 갈라지고 터져

피가 삐죽삐죽 나오는 상황에도 그 짜릿한 맛을 잊을 수 없는

중독성 강한 놀이문화로 사랑을 받아온 것이 사실입니다.

 

막바지로 접어든 시기는 음력으로 새해를 맞이하고

보름날 겨우내 날리던 연은 공중으로 날려 보내거나 달집 불에

다 태워 묵은 액운을 말끔히 없애는 것으로 끝을 맺게 됩니다.

 

연의 유래를 알아보면 언제부터 사용한 것인지

왜 처음으로 만들어졌는지 그 정확한 기록이 없다는 것입니다.
다만 역사적 기록에 등장되는 연을 미루어 짐작할 뿐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연에 대한 기록으로는 <삼국사기> ‘열전’입니다. 

내용을 보면 신라 선덕여왕이 돌아가시고 진덕여왕이 즉위한 서기 647년,

대신 비담과 염종이 “여왕은 정사를 잘 다스릴 수 없다”며 군사를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명활성에 주둔하면서 월성에 주둔하고 있는 왕의 군사와 대치했습니다.
그러나 10여 일이 지나도 승부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병진날 밤 큰 별이 월성에 떨어졌습니다.

 

하늘에서 일어나는 일에 의미를 부여했던 옛날에 이를 본 비담은

 “내가 듣건대 별이 떨어지는 곳에는 반드시 유혈이 있다고 하니 이는 틀림없이

월성에 있는 왕의 군사가 패망할 징조”라며 군사들의 사기를 높였습니다.

그러나 김유신 장군은 이에 흔들리지 않고

 “길하고 흉한 것은 무상한 것으로 오직 사람이 그렇게 여길 따름”이라고 말하고

 허수아비를 만들어 불을 붙인 후 연에 매달아 하늘에 띄웠습니다.

 

 마치 불덩이가 하늘로 날아올라가는 형상이었습니다.

다음날 “어제 떨어졌던 별이 간밤에 다시 하늘로 날아올라갔다”며

군사들을 안심시킨 후 혼란에 빠진 비담 군사들을 물리쳤다는 기록으로

남아있다는 내용을 인용합니다.


그리고 고려시대는 고려 말 최영장군이 탐라 목호의 난을 평정할 때

연을 사용했다는 기록이 <동국세시기>에 간단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조선시대는 세종대왕(1455년) 때 남이장군이 강화도에서

연을 즐겨 날렸다는 기록과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전쟁터에서 통신수단으로 활용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리고 근대에 와서는 조선시대 이후에는 일제의 민족말살 정책으로 연날리기가 중단됐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6.25한국전쟁으로 연날리기가 사라지는 듯했으나

1954년 자유당 때 민족정신을 계승하자는 의미에서 연날리기를 장려하기 시작했습니다.

현대에 들어서면서 무형문화재로서 한국전통 연의 맥을 잇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연의 종류에는 형태와 문양, 색깔 등에 따라 다양하게 나뉩니다.

우선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종류는 형태에 따른 ‘방패연’, ‘가오리연’, ‘창작연’입니다.

 

2013년 2월24일 음력으로 보름날 12:00-19:00까지 갑천 둔치에서

3대가 함께하는 2013 대전 연 축제를 많은 시민이 함께 참석한 가운데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어린 아이들보다 부모세대들이 더 즐거워하는 놀이문화가 되기도 한 듯합니다.
이제는 대전을 대표하는 겨울축제로 자리매김하길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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