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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일상/일상다반사

[공간을놀다 #6] 봄의 흔적이 담긴 대전 아트 시네마






 그녀가 머무는 곳. 나는 대전의 많은 장소를 사랑하지만, 그중에서도 단연 사랑하는 장소가 있습니다. 너무나 사랑해 차마 발걸음을 하기가 어려운 곳, 멀찌감치서 지켜보고 홀연히 떠나는 곳, 바로 그녀가 머무는 대전 아트시네마입니다. 기실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난 건 작년 시월 이십구 일의 이른 밤이었습니다. 나는 대흥동 국민은행 앞에 서 자판기 커피숍의 적당한 여행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고, 그녀는 자판기 커피숍 옆에 앉아 손뼉을 치고 있었습니다. 자판기 커피숍은 이별송과 대동 산 1번지를 연달아 연주했고, 흥겨운 분위기에 우리는 음악에 도취했습니다. 조그만 공간을 지배하는 음의 배열 앞에 모두는 친구와 다름없었습니다. 마주 보며 미소를 나누고, 손뼉을 치고, 노래를 따라 부르고, 앙코르를 외치고. 아마 그때일 겁니다. 내가 그녀의 존재를 처음으로 인식한 것은.










그녀가 대전 아트시네마에서 일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한참이 지난 십일월 말의 이야기입니다. 시월의 어느 밤, 배꼽 인사로 나와 친구를 배웅했던 그녀는 강렬한 인상을 남긴 채 내 기억 어딘가로 침잠해 있었습니다. 나는 당시에도 바쁜 일상에 치여 살고 있었고, 지난한 일상 속에서 아트 시네마에 들른 건 순전히 우연이었습니다. 사실 대전에 이런 독립영화관이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는걸요.

  '한규야 나는 그래, 대전에서 놀면 가는 공간은 한정적이잖아. 그래도 여긴 그 어떤 남자친구도 데려오지 않았어. 내 제일 소중한 공간에 남자친구가 발을 디디고, 함께 영화를 보고, 추억을 나누고… 하지만 언젠가 헤어지게 되면. 난 이 좋은 곳에 올 때마다 슬픈 기억을 떠올려야 하는 거잖아. 끝을 바라보고 연애를 하는 건 아니지만, 아무튼 그런 느낌, 그런 장소야 내겐. 그 무엇보다 소중한 장소. 그러니까 너 데려오는 거 영광인 줄 알아.' 따위의 말을 건넨 구보씨 덕분이었습니다. 나는 그녀 덕에 아트시네마에 발을 디뎠고, 마침 상영하던 고양이 춤을 봤습니다. 이용한 작가의 '안녕 고양이는 고마웠어요.' 라는 책을 즐겁게 - 혹은 슬프게 - 읽었던 기억이 있는데, 그 저작이 영화화된다니 신기할 따름이었습니다만.

  그리고 며칠 뒤 그녀와 문자를 하게 되었더랍니다. 그래서 어디서 일하세요? 아, 대전에 조그만 독립영화관이 있는데, 대전 아트시네마라고, 거기서 일해요.

 









 허클베리 핀의 대전 공연 이후 나는 그녀와 삼일 밤낮을 문자 했고 삼일 밤낮을 전화로 지샜습니다. 그녀가 언급한 영화들.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 키사라기 미키짱,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 로커는 내가 즐겁게 봤거나, 연극으로 접했거나, 격하게 사랑하는 영화들이었습니다. 그녀가 언급한 이상과 카프카는 멀고도 어려운 내 문학적 이상향이었고, 그녀가 듣는 음악들은 내 일상의 다른 면이었습니다. 나는 그녀가 일하는 곳이 궁금했습니다. 구보 씨가 뽑아준 아메리카노, 라떼 류 4잔과 - 또한 구보 씨가 선물해 준 - 빵을 바리바리 싸들고 아트시네마를 무작정 찾아간 건, 아마 순전한 궁금증 때문일 겁니다. 딸랑이는 풍경이 소리를 내는 극장 문을 열고 넓게 펼쳐진 대기실 한편에서 커피를 드립하는 그녀의 뒷모습을 발견했습니다. 물론 나는 그녀에게 빵과 아메리카노를 건넸고 뒤도 안 돌아보고 극장을 나섰고요. 그래서 어떻게 되었느냐고요? 잘 못되었으면 내가 이렇게 길게 글을 쓰겠습니까.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은 그녀가 아트시네마에 나오는 요일입니다. 나는 엊그제 몰래 서울발 대전행 무궁화에 몸을 실었습니다. 기차가 대전으로 향하는 두 시간 동안 그녀에게 말을 둘러대느라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봄 나 중요한 미팅이라 두 시간 연락 못 해요.' 라고 해놨어도 그녀의 전화가 오면 받아야지요. 그런데 왜 이리도 그녀는 기차가 역에 설 때만 전화를 해대는지. 무궁화 열차 가득 들리는 '우리 열차는 잠시 후 조치원 역에 도착합니다.' 소리 때문에, 몰래 가는 게 걸릴까봐 받을 수가 있어야지요. 그녀의 문자를 그렇게 사뿐히 무시해주고 나는 대전역에 내렸습니다. 그녀에게 주려고 중앙시장에서 장미꽃을 찾았지만, 시간이 촉박해 딸기 한 소쿠리로 대체하고 헐레벌떡 아트시네마의 문을 열어젖혔습니다. 딸랑,

 봄, 나왔어.








 그래요. 내 이야기는 지극히 또는 온전히 그녀와 나만이 담긴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내가 대전 아트시네마에 관해 할 수 있는 말은 이게 전부입니다. '그냥 커피'와 루이보스를 천 원에 판매하고, 음식물 반입은 금지되어 있으며, 너른 대기실이 있고, 하나의 상영관에서 주구장창 예술 영화를 틀어대며, 대전에 있는 유일한 독립 영화관이고, 대전역에서 걸어서 오 분 거리에 있으며, 고양이 린이 머무는 극장이라는 이야기도 할 수 있겠지만, 그런 세세한 말을 늘어놓다 보면 그녀의 향이 옅어진 글이 나올까 봐 두렵기 때문이죠. 뭐 정말로 대전 아트시네마에 대해 궁금하다면 직접 찾아보시는 수고 정도는 하셔야겠죠? 

 대전 아트시네마는 네이버 카페에서 홈페이지(http://cafe.naver.com/artcinema/)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홈페이지에서 상영 일정을 확인하실 수 있고, 이벤트, 상영 영화 정보를 확인하실 수 있으니 직접 홈페이지에 방문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대전블로그기자단 이한규 대전시청홈페이지 대전시청공식블로그 대전시 공식트위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