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공간을 놀다 세 번째. 대전에서 가장 오랫동안 사랑한 공간을 소개해드리고 싶었습니다. 자판기 커피숍이 불렀던 대동 산 1번지에 위치한 조그마한 달동네. 이젠 하늘동네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대동의 하늘동네입니다. 나는 울적한 날이면 혼자 카메라를 들고 하늘동네에 오르곤 했습니다. 사실, 내가 처음 이곳을 찾은 것은 이천구 년의 여름 날, 아직 하늘동네가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전입니다. 당시 나는 관광공사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핀란드에 사는 친구 녀석이 네 고향에 대해 소개해줘라고 물었을 때 할 말이 없어 여기 저기를 둘러보다 발걸음을 한 게 계기가 되었습니다. 공구년의 하늘동네는 풍차도 없고 벽화도 그리다말았고, 조금 황량한 편이었지만 그 나름대로 아름다웠습니다. 우리네의 삶이 여기저기 묻어있었기 때문이지요.
하늘동네를 사진기에 잔뜩 찍어 그녀에게 소개했을 무렵인가, 스웨덴에서 온 저널리스트를 만났습니다. 그녀는 현재 홍대에서 음악을 하고 있는데, 그녀와 맥주를 기울이며 나는 여행에 대한 담론은 이랬습니다. '한규, 나는 한국 사람들이 여행이라 칭하는 행위가 관광일 뿐이라고 생각해.' '왜?' '그들의 여행엔 일상이 없잖아.' '스웨덴 사람들에게 여행은 뭔데?' '한 곳을 오랫동안 머물며 그곳의 저변을 살아가는 것.' 따위의 대화였습니다. 사실 그녀가 한국어로 말을 한 건 아니고, 영어로 비슷한 대화를 나눴는데, 나는 대화를 마치고 며칠간은 고민에 빠졌더랍니다. 여행이란 뭘까. 사실 여행은, 일상을 낯선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에서 시작되지 않을까요.
사실 그래서 시작되었습니다. 대전을 여행하는 것 말이지요. 공간을 놀다도 비슷한 개념입니다. 여행이라는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일차원적인 담론에서 해석할 것이 아니라 조금 더 깊게 보는 겁니다. 우리가 흔히 지나치는 소소한 일상을 여행하면 어떨까? 여행을 일상을 낯선 시선에서 바라보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그 순간 내 일상이 달라보였습니다. 하늘동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가슴 어딘가에 스러진 달동네의 추억, 우리들의 일상이 깃든 지난한 골목길을 낯선 시선으로 바라봤습니다. 동네 어귀에 나온 할머니의 푸근한 미소, 그 위에 내려 앉은 빨주노초파남보 빨래와 하이얀 구름, 높디 높은 하늘 위로 우리 일상은 아름다웠습니다.
하늘동네에도 영역은 있었습니다. 여기저기 거미가 제 집을 짓고 있었고 동네를 어슬렁 거리는 집 잃은 강아지와 고양이는 영역 다툼하랴 아이들의 손길에서 벗어나랴 말썽이었습니다. 그중 단연 압권은 호식이 치킨이었습니다. 무려 100%의 점령률을 보이는 호식이 치킨에게 경의를. 하늘동네엔 이런 소소한 것들이 있어 좋습니다. 사실 대전 여행이래봐야 별 거 아닙니다. 대전역에서 내려 시내를 보고 둔산에 갔다가 엑스포에 가는 시덥지 않은 루트는 버릴 때가 됐습니다. 우리의 일상이 깃들 하늘동네에 쳐들어가 호식이 치킨을 무찌르는 겁니다.
오늘도 나는 길을 나섭니다. 딱히 우울해서라든가 외로워서는 아닙니다. 나는 여자친구도 있고, 바쁘디 바쁜 - 행복하디 행복한 - 일상을 보내고 있으니까요. 다만 나는 지난 세월에서 나를 되돌아 보고 싶을 뿐입니다. 한적한 달동네를 걷고, 풍경은 렌즈에 담고, 그녀에게 문자를 보내고, 높디 높은 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일상의 저변을 멀리 있지 않습니다.
대전에 처음 오시나요, 대전을 여행하고 싶으신가요. 간단합니다. 대전역에서 한 정거장 대동역 바로 옆에 위치한 하늘 동네를 오르세요. 대전의 변천사를 바라보며 높디 높은 대전 하늘을 느끼세요. 여기가 바로, 대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