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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문화/스포츠

"2011년 한화이글스를 말하다" <16> - "류현진"의 진화는 아직도 진행중이다



 

"퍼팩트 게임"이라는 흥미로운 영화가 얼마전 개봉을 했다. 선동열과 최동원 전설의 두 투수의 운명적인 대결을 그린 영화 "퍼팩트 게임" 사실 그 시절 기억은 가물가물 하지만 두 투수의 대결을 지켜보았던 세대로서의 감흥은 뭐라 말해야 할까? 하여튼 친구들과 내기로 누가 더 센지를 이야기했던 기억은 지금도 내 기억속에 남아 있다. 그런데 얼마전 조카녀석이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어린시절 나의 기억이 오버랩이 되는 순간이 생겼다. 삼촌 류현진, 김광현, 윤석민중에 누가 한국야구 최고야! 정말 난감하기 짝이없는 질문? 글쎄!로 망설이며 넘어갔던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그냥 그렇게 넘어갔지만 내가 생각하는 현존하는 국내 최고의 투수는 누가 뭐래도 류현진 이다.

미완의 류뚱다른 선수들처럼 역경과 고난의 이야기를 하기에 류현진은 너무나 다른 클래스의 선수다. 필자가 류현진에 대해서 언급을 자제해 온 이유도 그에 대한 오마주같은 믿음이 있기에 더욱 그런 것 처럼 그는 단점을 찍어내기가 무색할 정도로 완벽에 가까운 선수인 것 이다. 2011년 시즌 4월 2일 개막전에서 최악의 개막전 패전의 멍에를 안고 무너진 패배속에 4월에만 4패를 안고서도 당당히 6년 연속 10승을 만들고 최연소, 최소경기 1000K의 기록은 그의 저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보여주는 것 처럼 말이다. 사실 류현진의 역경은 어쩌면 프로데뷔전인 고등학교 시절일지도 모른다. 인천 동산고 투수로 주가를 올리던 시절 투수들에게 최악일 수도 있다는 토미존 수술을 2004년에 받았기 때문이다. 토미존 수술 정확히 말하면 토미존 서저리 수술이 정확한 용어로 투수들이 공을 많이 던지므로 해서 팔의 인대의 손상된 부분을 새 인대로 교체하는 수술로 지금은 많은 선수들이 수술을 받고 재활을 통해서 다시 제모습을 찾고 있지만 그 당시만해도 투수인생이 끝날수도 있는 수술이기에 더욱 심각했던 것 이다. 특히나 고교시절 가장 중요한 시기에 수술후 재활의 시간만 1년여가 걸리는 시기는 아마도 류현진 야구인생의 전환점과도 같은 시기가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인 것 이다. (여담이지만 우리나라의 고교야구 시스템, 한명의 에이스가 팀을 우승까지 책임지던 시절이기에 연투는 기본이고 그렇게 혹사를 당해서 프로에 입단후 망가졌던 투수들이 얼마인지는 우리는 수없이 보아서 알고 있다. 실례로 김광현이 안산공고시절 15이닝 226개의 공을 던졌다고 하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나! ) 하지만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그 어린시절의 큰 수술이 류현진의 지금의 모습을 만들수 있게 했던 계기는 아니었는지 그런 생각이 들게 할때가 있다.


☞ 류현진의 드래프트 그 비하인드 스토리
지금은 많은 분들이 알고 있는 이야기 이지만 류현진이 2006년 한화로 드래프트된 것은 너무나 기적같은 일이 아닐수 없다. 당시 인천지역의 뛰어난 Big3중에 한명이었던 류현진의 우선지명권은 SK에 있었던 것, 그렇기에 SK는 우선순위로 류현진을 잡을 수도 있었지만 포수자원이 부족하다고 생각했기에 당대 최고의 포수였던 이재원을 지명한 것 이다. 이런 내막에는 다음년도 안산공고 김광현이라는 거물투수를 잡을 공산이 있었기 때문이었다지만 천추의 한이 될 실수 거기에 다음의 지명권을 갖고 있던 롯데 또한 결정의 순간 나승현을 지목한 것 이다. ㅎㅎㅎ 이런 웃지못할 상황에 어부지리로 류현진을 잡게 된 것이 한화였던 것 이다. 물론 그 당시의 스카우트 리포팅에도 나와있지만 "토미존 수술"을 한 젊은 투수에게 가능성을 걸기에 다른 팀들은 망설였던 것 이다. 그런데 그 선택이 야구판을 들었다 놀 일이 될줄 누가 알았을까? 한화의 1순위의 축복은 아마도 류현진이 처음이니 더욱더 아이러니한 하늘의 게시인 것 이다.


더이상 말이 필요없다

미완의 류현진은 2006년 입단과 동시에 괴물이 되어버린 것 이다. 입단 첫해 15년만에 트리플 크라운 달성부터 프로야구 최초 신인상, MVP 동시 석권등 그 이후부터 류현진의 활약은 해를 거듭할 수록 눈부시게 빛났다. 통산 30승을 2007년에 채웠고 2년연속 탈삼진왕에 2008년 500탈삼진완성, 2010년 한경기 최다 탈삼진(17개 탈삼진) 29경기 연속 퀄리티스타트 기록에 2011년 최연소, 최소경기 1000탈삼진 기록까지 거기에 각종 국제대회의 수상들까지 열거하기에도 벅찰 정도의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의 선수로 자리매김을 한 것 이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만일 류현진이 암흑기의 한화가 아닌 잘나가는 다른 구단의 선수였다면 지금의 기록은 어떻게 됐을지 생각해볼때가 있다. 아마도 다른 것은 몰라도 개인통산 100승의 기록정도는 쉽게 넘어서지 않았을까 하고 말이다)

그럼 무엇이 이토록 잘나가는 류현진을 만든 것 일까?류현진을 알고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의 성격을 우선 순위로 꼽고 있다. 소탈하고 툭툭 시원스럽게 털어버리는 성격과 긍정적인 모습에서 이런 모습들이 나온다는 것이다. 어떻게보면 다른 투수들이 극심한 슬럼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무너지는 경우들을 보면 투수의 얼굴에서 모든 것이 보인다고 해도 좋을 만큼 심한 압박감을 느끼게 하지만 류현진은 정말이지 연타와 연패의 순간을 맞더라도 전날의 기억들은 잊어버린듯이 어떠한 상황에서도 당당하게 타자를 대한다는 것 이다. 물론 이런 긍정적인 모습을 보이기에는 확실한 주무기가 있기에 그렇겠지만 멘탈적인 부분이 일단은 다른 선수들에 비해 우위에 있는 것은 확실한 부분이다. 그리고 역시나 확실한 주무기가 있다는 것 이다. 150km를 웃도는 빠른 직구는 기본이고, 절묘한 슬라이더와 커브, 포심패스트볼은 상대선수들이 알면서도 당할정도 거기다 구대성에게서 전수를 받았다는 서클체인지업은 류현진의 가치를 더없이 높여주었던 것 이다. (류현진의 서클체인지업은 구대성에게 배운 정도에 그치지 않고 변형적인 모습으로 현재는 또 다른 서클체인지업으로 타자들을 상대하고 있다, 그야말로 습득을 넘어선 투구의 달인의 모습인 것 이다) 마지막으로변화무쌍한 운영의 묘가 있다는 것도 그의 뛰어난 모습중에 하나인 것, 매 이닝 볼배합이 다르고 주자 출루시의 투구의 모습은 마운드에서 야구를 즐기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것 이다. 


2012년 등번호 99번을 기억하게 만든다

2012년은 2006년 입단후에 맞는 류뚱 류현진 인생의 최고의 해일 확률이 어느때 보다 높아보인다. 위에서도 언급한 최연소, 최단 기간 개인통산 100승과 입단후 한번도 이루지 못했던 챔피언의 꿈 말이다. 그도 그럴것이 자의던 타이던 그동안 그를 뒷받침해주지 못했던 불펜과 타선의 보강뿐만 아니라 젊은 영건들의 성장세는 팀의 에이스로서의 지켜왔던 부담을 나눌수도 있기에 더욱더 큰 꿈을 꾸게 만들고 있는 것 이다. 또한 올시즌의 활약 여부는 해외진출이라는 목표에도 한발짝 다가갈수 있는 시기이기에 더욱더 인생 최고의 해로 다가온다는 점이다. 

류현진이 입단해서 받은 등번호 15번 그 15번을 메이져리그에서 복귀하는 구대성에게 돌려주고 다시받은 등번호 99번, 그 이후 99번을 고수하고 있는 류현진은 99번의 의미를 Again1999년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 이다. 한화이글스의 전설에서 이제는 프로야구의 전설로 남을 류현진 그의 인생의 화려한 정점의 순간이 2012년이기를 한화의 팬들은 그렇게 2012년을 기약하고 있는 것 이다.

                                                                                                                                                                                                  @ 한화이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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