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을 둘러싸고 있는 나지막한 산을 따라 전선을 구축하듯 점점이 늘어선 산성들,
그들 중에서 최고를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갈현성을 꼽게 된다.
갈현성은 용운동에서 세천동으로 넘어가는 갈고개 북쪽에 있는
해발 263m의 산 정상부에 축조된 테뫼식 석축산성으로
성 둘레는 350m 정도 된다.
대전에서도 그다지 규모가 큰 산성은 아니다.
그렇다면 원형이 잘 남아 있는 것일까? 그것은 더더욱 아니다.
갈현성은 오히려 성벽이 1,500여년 세월에 거의 대부분 무너져 버렸다.
갈현성의 매력은 바로 그 무너짐의 미학에 있다.
어느 누가 그처럼 자연스럽게 무너뜨릴 수 있겠는가.
그것은 하늘과 바람, 햇살과 구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새롭게 축조되는 수많은 성벽들 속에서
갈현성의 자연스런 세월은 더욱 빛을 발할 수밖에 없다.
이 봄,
갈현성에는 또 다시 백제 병사의 숨결을 담은
생강나무와 참꽃이 뭉클뭉클 피어나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