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대전여행/공원ㆍ마을

대전 동구 문충사 춘계 제향봉행! 대전시문화재자료

'문충사 춘계 제향봉행' 행사가 3월 31() 오전 10시 동구 용운동 문충사에서 열렸습니다. 

<문충사 입구 홍살문과 충신 정려각>
<외삼문 >

문충사는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4(1989318)로 지정됐는데요. 우암 송시열의 9대손이자 우국지사인 송병선·송병순 형제의 위패와 영정을 봉안한 한말의 사당입니다. 송병선·송병순 형제는 일제에 의해 강제로 체결된 을사조약과 한일합방을 통탄했습니다.

이곳에는 자결한 문충공 연재 송병선(18361905)과 그의 아우로서 한일합병의 울분을 못 이겨 순절한 심석 송병순(18391912) 형제의 위패와 영정이 있습니다.

<제례를 준비하시는 모습>

문충사 입구에는 홍살문과 충신 정려각이 있습니다. 철제로 된 홍살문이 세워져 있고 그 옆에 정면 1, 측면 1칸에 겹처마 맞배지붕으로 된 송병선의 충신 정려각이 있습니다. 

전면 잔디광장 좌측에는 연재 송병선, 심석재 송변순 선생의 기념조형물이 있는데, 2014 3월에 준공됐습니다.

외삼문을 통과하면 좌측에는 살림집, 우측에는 창고와 방, 화장실이 있는 건축물이 있습니다. '용동서원'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 강당은 정면 5, 측면 3칸 평면으로 지어졌습니다.

강당 뒤쪽 사당 입구에는 '성인문'이라는 현판이 걸린 전면 3, 측면 1칸에 홑처마 맞배지붕 '내삼문'이 있습니다.

<연재 송병선 선생 영정>

송병선은 학문이 뛰어나 천거되었으나 관직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19세기말 외세가 물밀듯이 들어와 나라의 앞날이 어려워지자 근사속록을 간행하였습니다. 1905년 불법적인 을사조약이 체결되었을 때는 고종에게 조약 파기와 을사 5적을 처단할 것을 진언하기도 하였습니다. 다시 고종을 만나려다가 일본 헌병들에게 체포되었는데 상소문을 올리고 음독 자결하였습니다.

<송병순 선생 영정>

송병순은 고종 25(1888) 의금부도사가 되었으나, 사퇴하고 학문 연구에만 몰두하다가 불법적인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일본을 성토하는 글을 지어 전국에 배포하였습니다. 1910년 한일합방의 슬픈 소식을 듣고 두문불출하다가 끝내 형과 같이 음독 자결하였습니다.

<춘계 제향 봉행 전경>

이 사당은 충북 영동군 학산면 범화리에 세워졌었으나, 1966년 송병선 선생의 추모 60주년을 맞아 선생이 태어나고 순국한 이곳으로 옮겼습니다. 그리고 1970년 강당인 용동서원을 세워 서원 건축 양식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제례를 시작하는 모습>

송병선, 송병순 두 형제분의 위패와 영정이 모셔져 있는 사당에서 매년 봄과 가을에 제사를 올리고 있습니다춘계 제향봉행에는 유림과 후손 등 70여명이 참석하였습니다.

<분주히 준비하시는 접수대 전경>

초헌관은 황인호 동구청장, 아헌관과 종헌관 등은 유림들께서 하셨습니다.

춘계 제향봉행이 시행되기 전에 일찍 도착하여 홍살문과 충신 정려각, 연재 송병선, 심석재 송변순 선생의 기념조형물을 둘러보았습니다. 넓은 잔디에는 제법 푸른색으로 변해가고 있었으며, 후손 몇 분들은 기념 조형물을 둘러보고 계셨습니다.

<<연재 송병선선생과 심석재 송변순 선생 기념 조형물>

외삼문을 통과하니 접수처에는 막 준비를 하고 계셨을 때, 저번에 찾아뵙고 인사를 드린 분과 인사를 하였습니다.

때마침 마당에서는 점심때 식사를 위하여 천막을 설치 할 때 촬영을 잠시 미루고 함께 하였습니다. 설치를 마치고 강당으로 가보니 어르신 분들은 강당 내부 방에서 담소를 나누고 계셨으며, 강당에서는 행사 준비를 하고 계셨습니다.

<담소를 나누고 계시는 유림 어르신분들>

제향에 각자 맡은 내용을 파악하시고 제례 복을 입고 계셨습니다.

사당에서는 두 분이 제향봉행에 놓이는 음식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전면 중앙계단 아래에는 양쪽 천막아래에는 바닥에 돗자리 깔려 있었으며, 그 곳에는 자리를 표시하는 표지판을 있었습니다. 우측에는 세면대와 수건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돗자리에 서계실분의 위치표지판>

사당 안에는 목기제기와 술잔과 술잔받침이 있었으며, 송병선, 송병순 두 형제분의 위패와 영정이 모셔져 있는 곳에 제상위에 음식을 놓고 계셨습니다.

1열에는 양쪽에는 놋쇠 촛대, 2열에는 편대, 3열에는 작고 길게 썰어 묶은 무우, 미나리 줄기 묶음, 고기, , 대추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4열에는 조기, 마른 생선, 육포가 놓여 있었고, 그 뒤에 위패가 놓여 있었습니다.

<제상 전경>

제향봉행을 위해 강당 옆에는 행사준비를 위해 도열하고 있었으며, 그 외 유림과 후손들이 뒤에서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행사는 법도에 의하여 장시간 진행이 되었습니다. 행사가 끝날 무렵 사당 옆에서 소각한 후 모든 행사가 종료가 되었습니다.

강당 앞에 설치된 천막에서 참석하신 모든 분들이 식사를 하면서 담소를 하셨습니다. 식사를 마칠 무렵 제사를 지내 포, 대추, 밤을 조금씩 나누워 담아 참석하신 모든 분들에게 나누워 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