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햇볕에 불어오는 바람은 겨우내 잠들어 있던 나무를 깨우고 봄이 왔음을 알려줍니다. 잠에서 깬 나무들은 저마다 기지개를 켜고 앞을 다투어 꽃망울을 터트리며 봄 맞을 준비를 합니다.
하지만 일기예보에선 하루가 멀다하고 미세먼지 얘기를 하니 환절기에 감기도 조심해야 하고 이젠 미세먼지까지도 걱정하게 만드네요. 그래서 실내에서 볼거리를 찾던 중에 올해 3월 1일, 3·1 운동 100주년을 맞아 옛 충남도청사 본관 1층에서 뜻깊은 '1919 대전감옥소'라는 특별전을 하고 있다고 해서 찾아가 보았습니다.
대전의 3·1만세운동은 1919년 3월 3일로 기록되어 있다고 하는데요. 그러나 대규모 집회로 이여진 것은 3월 16일 인동장터에서였으며 지금의 인동시장이 된 인동장은 5일장으로 그날도 많은 사람이 모인 장날이였답니다. 주도자는 양사길이란 인물로, 정오 무렵 가마니 더미위에 올라가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운동을 외쳤고 그 외 장운심, 권학도 등이 군중에게 태극기를 나눠주며 만세운동을 독려했다고 합니다. 그때의 사진과 기록이 문서로 남아있습니다.
'1919 대전 감옥소' 특별전은 기획전시실에서 오는 6월 30일까지 열립니다.
안에 들어서면 앞에 대전형무소에 수감되어 있던 수감자의 수형기록카드에 있는 사진이 영상으로 나오고 그 앞에 대전형무소의 모형을 본뜬 조형물이 있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종이로 만든 것 같았는데요. 이 모형은 실제 대전형무소의 1/77의 비율로 제작되었다고 하네요. 작업방식은 '아이소핑크'로 덩어리작업과 함께 입면의 세부를 표현한 다음 석고로 틀을 뜨고 마지막으로 신문지로 만든 종이죽을 부어 완성하였다고 합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예전에 탈을 만들때랑 비슷한 신문지 모양이 보이네요.
'건축도면으로 보는 대전형무소'는 대전형무소를 분석하여 구조에 대한 내용이 자세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대전형무소의 흔적들'에서는 항공사진으로 본 대전형무소 사진과 망루, 우물, 관사에 대한 위치 사진, 그리고 그것에 관한 내용들이 상세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지금은 선병원앞에 중촌동 현대아파트가 들어서고 망루와 우물만 남아있네요.
'대전형무소 연혁'은 1919~1945년까지의 대전형무소의 역사적인 기록들이 자세하게 나와 있어 그때 당시의 형무소에 있었던 일들을 알 수 있게 되어있습니다.
'대전형무소 수형기록카드'에선 대전형무소에 수감된 수감자들의 수형기록카드가 빼곡히 전시되어 있습니다. 대부분이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구속되었음을 알 수 있는데요. 수형기록카드에 기록되지 않은 아니 분실된 카드의 주인들은 또 얼마나 많았을까요?
대전형무소 직원 사진첩과 일제강점기 대전형무소 문서들도 같이 전시되어 있네요. 대전형무소 직원 대부분은 일본인이며 이 사람들이 수감자들을 얼마나 괴롭혔을지 짐작이 되네요.
지금은 없어진 대전형무소 발굴조사에선 2018년 8월 대전광역시의 '옛 대전형무소 역사관광 자원화 조성사업' 공사 중 대전형무소의 유구가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이에 9월초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 긴급한 구제발굴조사가 이루어졌는데요. 단시간의 조사였지만 의미있는 조사 결과를 얻었다고 하네요.
대전형무소 기록 영상은 '원재:전쟁포로'라는 영상(7분 47초)입니다. 1950년 10월 30~31일 대전형무소의 미군 25사단 기지에서 민간인과 북한인민군 포로들이 수용되는 장면, 포로들을 심문하는 미군, 사복을 입은 민간인들을 몸수색하는 장면, 형무소 내 감방을 순찰하는 군인 모습등이 섞여 있습니다.
의자에 앉아 조용히 흑백영상을 보며 그때 당시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대전형무소는 없어졌지만 지도상으로 남아있는 기록으로 대전형무소가 어느 정도의 규모로 어디쯤에 있었는지 알 수 있으며 그 대전형무소에 있던 망루(수감자들의 탈옥과 외부의 동향등을 감시하기 위해 설치)와 우물(형무소에 있었던 총 4기의 우물 중 하나)이 남아있어 그 위치를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대전형무소 독방 '구치감'이란 공간은 일제강점기 건축도면을 토대로 재현, 주로 사상범들을 수감했던 대전형무소의 구치감이였는데요. 다른 재소자들과의 격리를 위해 독방으로 설계되었고 방안에 화장실이 있고 1.5평정도의 크기였다고 합니다. 특징으로는 바깥쪽 벽면을 사선의 톱니모양으로 만들었는데 이는 창문을 통해 옆방의 수감자와 대화를 나누는 것 방지하기 위한 조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일제강점기에 핍박받던 우리 독립운동가들이 많이 수감되었던 대전형무소의 흔적을 찾아 그 역사적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것을 이렇게 전시를 하는 목적은 과거의 역사를 잊지 말고 사실의 증거로 남겨놓기 위함이였다고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자꾸 안일해지고 나태해지며, 잊기 쉬운 우리에게 다시한번 나라사랑에 대한 애국심을 일깨워주기에 충분한 공간이었습니다. 3월이 지나도 3.1운동이 100년이나 되었지만 그때의 간절했던 만세운동을 잊지 말고 그 많은 분들의 희생으로 지켜낸 지금 우리나라를 잘 가꾸고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